툰베리에게.."더 넓은 집과 좋은 차를 바라는 제가 기후위기 공범"

오승훈 2021. 6. 16.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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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 툰베리에게.

무엇보다 더 넓은 집에 살길 바라고 더 좋은 차를 사고 싶어 하는 제가 기후위기의 숨은 공범일 수도 있다는 서늘한 자각까지.

육식하지 않고 앞으로 옷도 사지 않겠다면서 뉴욕 회의조차 무동력 요트를 타고 14일 만에 갔지만, 당신은 개인적 실천뿐만 아니라 거시적 변화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일상적 실천에 안주하지 말고 더 근본적인 행동을 촉구하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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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레타 툰베리' 본 40대 아재가
영화 <그레타 툰베리>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그레타 툰베리에게.

안녕하세요. 먼저 제 소개를 해야겠군요. 전 한국의 한 신문사에 다니고 있는 40대 가장입니다. 17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그레타 툰베리>를 보고 이렇게 편지를 띄웁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당신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습니다. 2018년 8월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스웨덴 스톡홀름 의회 앞에서 기후위기 법안 마련을 위한 결석시위를 벌였고, 이것이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는 정도의 정보가 전부였어요. 영화를 보고 나서 그동안 당신에게 무심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쓰레기 분리배출에 공을 들이고 물을 아껴 쓰며 안 쓰는 전기 코드를 부지런히 빼는 일로 환경을 위한 일상적 실천을 갈음하던 제게 당신의 삶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영화 <그레타 툰베리>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결석시위 시작부터 이후 세계적 환경운동가가 되는 13개월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그려낸 영화 속에서, 당신은 기성세대의 무책임과 선진국의 위선을 준엄하게 비판하며 기후위기가 미래의 기우가 아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라는 사실을 환기시켰습니다. 당신의 표현대로 ‘집 안에 불이 났는데 불을 끄지 않고 있다’는 거죠. 당신의 모든 연설이 어른들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었지만, 전 2019년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기후행동 정상회의 연설을 되새기고 싶어요. 당신은 미래세대의 일원으로서 권력자들을 향해 기후위기를 위한 행동에 나서달라고 ‘호소’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경고’했죠. 탄소 배출을 절반으로 줄여나가자는 빈말로 미래세대의 꿈을 앗아갔다며 앞으로도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면 자신들은 권력자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죠.

영화 <그레타 툰베리>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다음 말에 뜨끔했던 건 저만이 아닐 겁니다. “생태계 전체가 무너지고, 대규모 멸종의 시작을 앞두고 있는데, 당신들은 돈과 영원한 경제성장이라는 꾸며낸 이야기만 늘어놓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이 말은 어리석은 어른들에게 영원한 성장은 없다는 자명한 진실을 일깨워줬습니다. 지구는 하나뿐임에도 마치 여러개가 있는 것처럼 쓰고 버리며 살고 있다는 거죠. 무엇보다 더 넓은 집에 살길 바라고 더 좋은 차를 사고 싶어 하는 제가 기후위기의 숨은 공범일 수도 있다는 서늘한 자각까지.

육식하지 않고 앞으로 옷도 사지 않겠다면서 뉴욕 회의조차 무동력 요트를 타고 14일 만에 갔지만, 당신은 개인적 실천뿐만 아니라 거시적 변화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일상적 실천에 안주하지 말고 더 근본적인 행동을 촉구하라는 것이죠. 그 외침에 더 많은 이가 함께할 것입니다.

유명세가 없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기후위기는 조작됐다’는 어른들의 의도적 몰이해가 당신을 힘들게 하진 않았습니다. 영화에서 당신은 자폐증을 앓고 있다고 스스럼없이 밝히며 자신을 향한 ‘악플’들을 웃어넘겼더랬죠. 당신의 이러한 조숙함은 어른들의 미숙함과 대비돼 더 또렷하게 다가옵니다.

영화 <그레타 툰베리>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물론 항상 의연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당신은 세상의 과도한 관심과 늘어나는 책임감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죠. 당신 또한 가족과 반려견의 품이 그리운 평범한 10대였다는 것을 우리는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그레타 툰베리에게서 명민하고 지혜로운 환경운동가를 걷어내고 스무살 무렵의 싱그러운 청춘만 남겨질 날이 올까요. 부디 그때까지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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