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공부 안 막히게 사진으로 나무 차이 콕 보여줬죠"

강성만 2021. 6. 16. 18:2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짬][짬] 나무도감 낸 박승철씨
박승철씨가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 사진을 찍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나무 사진을 찍을 때마다 ‘정말 행운이다’는 말을 수도 없이 합니다. 나무에 달린 꽃과 열매를 처음 볼 때 가슴이 두근거리고 너무 기뻐요. 나무 공부는 너무 재밌어요. 파고들수록 식물의 세계는 무궁무진합니다.”

나무 공부를 하려고 정년을 11년 남기고 1998년에 공무원 생활을 그만둔 박승철(70·사진)씨는 최근 나무도감 <한눈에 알아보는 우리 나무>(전 2권, 글항아리)를 펴냈다. 내년 말까지 모두 8권으로 완간할 계획이다. 도감에는 한국에서 자라는 자생종과 원예종 나무 약 1500종을 찍은 사진 4만장이 실린다. 권당 5천장꼴이다. 저자가 은퇴 이후 찍은 나무 사진 150만장(약 2700종) 가운데 간추렸다.

“나무 공부하다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요. 막히는 게 많은 데 그걸 풀어줄 책이 없었어요.”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만난 저자에게 도감 출간을 결심한 이유를 묻자 돌아온 말이다.

<한눈에 알아보는 우리 나무> 1권 표지.

도감의 부제는 ‘차이점을 비교하는 신개념 나무도감’이다. 이 말처럼 도감은 비슷비슷한 형태의 나무들이 왜 이름이 다른지를 콕 집어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한 도구는 각 수종마다 15매씩 실린 사진이다. 마주 보는 지면 오른쪽에는 꽃과 잎, 줄기 사진을 각각 3매씩 넣었고, 왼쪽에는 종의 가장 특징적인 모습과 열매를 보여주는 사진 6매를 실었다. 어느 종을 봐도 각기 다른 특성의 열매와 꽃이 지면의 같은 위치에 나오니 쉽게 차이를 알 수 있다. 사진을 키우고 가독성을 높이려고 글은 모두 사진 안에 넣었다.

자생종 위주인 기존 도감과 달리 이번 도감에는 외국에서 들어와 우리 땅에 뿌리를 내린 원예종도 나온다. “제 도감에서 원예종 비중이 3분의 1이죠. 수입 소도 국내에서 6개월 이상 키우면 한우 대접을 받잖아요. 수십 년 동안 우리 땅에 뿌리내린 원예종도 마땅히 우리 자원으로 인정해야죠.”

도감 1권을 보니 버드나뭇과 수종만 29개나 된다. 능수버들과 수양버들은 꽃싸개 끝에 털이 있는지로 구분된단다. 있으면 능수버들이고 없으면 수양버들이다. 개수양버들과 수양버들은 초봄 가지의 색깔로 갈린다. 황록색은 개수양버들이고 수양버들은 적록색이다. 책에는 종의 이런 특성을 보여주는 근접 사진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꽃과 잎의 크기 등 종의 고유 특성을 보여주는 정보도 세밀하다. “식물도감의 교과서로 인정받는 이창복 교수 도감에 나오는 내용을 토대로 제가 현장에서 일일이 자로 재면서 확인했어요.” 이전 도감과 일치하지 않은 내용을 찾은 사례도 10~20건이나 된단다. “책에는 참죽나무 열매 양쪽에 날개가 있다고 나오는데 직접 보니 한쪽만 있더군요.”

박승철씨가 출간한 도감 왼쪽 면에는 나무의 특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과 열매 사진 3장을 담았고, 오른쪽에는 꽃과 잎, 줄기 사진을 각각 3장씩 실었다. 이 사진은 유럽개암나무의 왼쪽 면이다. 글항아리 제공
유럽개암나무 오른쪽 면이다. 글항아리 제공

그가 퇴임 10년 뒤인 2008년부터 “나무들의 다른 점을 꼭 집어 보여주는 도감을 만들겠다”고 나선 이유는 기존 나무도감의 한계를 절감해서란다. “처음엔 인터넷 동호회에 가입해 공부했고 헌책방도 뒤져 나무 책을 사 모았어요. 그런데 책에 없는 나무가 너무 많아요. 나무와 식물에 대한 우리나라 책을 조금만 파 보면 깊이가 얕다는 것을 금방 압니다. 새 나무 품종이 매일매일 생겨나고 수입돼 우리 땅에 뿌리내리는 데 이 나무들을 알고 싶어도 알 수가 없어요. 도감에는 없고 조경업자들이나 조금 아는 형편이죠.” 나무의 세부 사진이 주인공인 도감을 만든 이유는 이렇단다. “사진으로 보여주면 이해가 쉬워요. ‘어린 가지에 개출모가 있다’고 책에 나와도 사진이 없으면 이해가 어려워요. 개출모는 털이 직각으로 났다는 말이죠. 개암나무와 유럽개암나무도 열매 싸개가 열매를 어느 정도 감싸는지에 따라 구분됩니다. 이런 특징을 아무도 보여주지 않으니 저라도 하자고 생각했죠. 나무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어렵다고 도중에 포기하지 않도록요.”

나무공부 하러 47살에 공직 퇴직 “답답한 공무원 생활에 나무가 위안”

2008년부터 도감 제작 준비 최근 2권 내고 내년까지 8권 완간 자생·원예 1500종 사진 4만장에 종마다 꽃 열매 잎 등 15장씩 실어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주민인 그는 도감 제작을 위해 2008년 이후 해마다 4~5개월은 지방 산야를 헤집고 다녔단다. “지리산은 10번, 한라산도 5~6번 간 것 같아요.” 키 작은 참죽나무를 2010년에 한 수목원에서 발견하고 느낀 짜릿한 희열을 지금도 잊지 못한단다. “도감을 보니 참죽나무 꽃에는 헛수술 5개가 달렸다고 해요. 그래서 직접 확인하려고 2006년부터 해마다 6월이면 찾아 헤맸지만, 참죽나무 키가 20m나 돼 가까이 꽃을 찍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4년 만에 3m도 안 되는 아담한 참죽나무를 찾아 찍을 수 있었죠.” 나무 촬영의 때를 맞추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단다. “나무에 꽃이 피고 지는 게 보통 일주일입니다. 하지만 산사나무는 오전 10시면 분홍색으로 화려한 수술대 끝 꽃밥이 터져 까맣게 변하죠. 뽕나무도 먼저 꽃이 피고 달리는 오디 열매가 처음은 초록색이지만 시간을 두고 하얀, 노랑, 빨강, 검은색으로 변해요. 촬영 시간을 잘 맞춰 이 모든 색의 열매를 한 컷 프레임 속에 담을 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요.”

박승철씨가 4년 동안 찾아 헤매다 찍은 참죽나무 꽃 사진이 위에 보인다. 박승철씨 제공
박승철씨가 사진을 찍고 무척 기뻤다는 뽕나무 오디 열매다. “오디 열매가 처음은 초록색이지만 시간을 두고 하얀, 노랑, 빨강, 검은색으로 변해요. 촬영 시간을 잘 맞춰 이 모든 색의 열매를 한 컷 프레임 속에 담을 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요.” 박승철씨 제공

그를 나무와 밀착시킨 ‘접착제’는 23년 공직 생활을 하며 느낀 답답함이었단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앙대 법대를 중퇴한 그는 9급으로 서울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공무원은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나 지시를 따라야 하고 법과 규정을 벗어날 수 없잖아요. 일하면서 많이 답답했어요. 그럴 때 나무를 보면 마음이 풀렸죠. 언제나 좋았어요. 마침 김대중 정부 들어 명퇴할 수 있는 재직 기간이 줄어들어 만 47살에 그만뒀어요. 아내와 하나뿐인 딸도 저의 나무 공부 뜻을 흔쾌히 응원해주었죠. 저한테는 행운입니다.”

그는 “나무 이름을 알면 나무가 친구가 된다”고 했다. “이름을 아는 나무를 보면, 지금 열매가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꽃이 필 때의 아름다운 색상도 떠올라요. 멀리서 봐도 친구처럼 반갑죠.”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자신이 발로 기록한 ‘한국 나무 보고서’가 숲 해설가나 공원관리인, 원예학과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국내 공원의 나무 명칭을 보면 틀린 게 너무 많아요. 어떤 공원은 털음나무를 음나무라고 적었더군요. 공원 직원이나 숲 해설가들이 제 책을 좋아할 것 같아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