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회담, 시작도 하기전에 '바이든의 패배' 평가.. 왜?

이은택 기자 2021. 6. 16.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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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제네바에 도착한 바이든. 뉴시스
16일(현지 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미국과 러시아의 정상회담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입지만 더욱 강화시켜줄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이번 회담에서는 전통적인 주제였던 ‘핵무기’보다 ‘사이버 안보’가 핵심적으로 다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전 미국 국방정보국(DIA) 정보요원 레베카 코플러는 15일 미 정치전문매체 더힐에 기고한 글에서 이번 회담이 이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패배’라고 평가했다. 소련 출신인 코플라는 러시아 문제 전문가다.

코플러는 바이든이 이번 회담을 통해 러시아와의 관계를 개선하길 원하지만 러시아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 소련은 데탕트(화해) 시기에도 미국을 위협했다”며 “소련이 그랬던 것처럼 러시아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은 미-러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러시아에 ‘리셋 버튼’을 건네고, 러시아는 이를 무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은 바이든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의 이번 회담을 1961년 이뤄진 첫 미국-소련 정상회담과 비교했다.

1961년 6월 존 F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니키타 흐루쇼프 당시 소련 공산당 제1서기를 만났다. 흐루쇼프는 1960년 유엔(UN)총회에서 필리핀 대표가 소련을 비판하자 연설 도중 자신의 신발을 벗어 연단을 ‘쾅쾅’ 내리치며 “총 한 발 안 쏘고 미국을 점령할 것”이라고 소리 지른 인물이다

케네디는 회담 직전까지만 해도 “민주주의가 이길 것”이라며 성공을 자신했지만 이틀간 진행 된 회담 분위기는 매우 싸늘했다. 이듬해(1962년) 소련은 미국의 턱 앞인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해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발했다.

영국 BBC는 “이 회담은 아무 성과를 내지 못했고 오히려 양국을 핵전쟁 문턱까지 몰고 갔다”며 “최악의 외교 참사”라고 혹평했다. 케네디 자신도 흐루쇼프를 만난 뒤 “이런 사람은 처음”이라며 당시 회담을 “인생의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꼽았다.

코플러는 미국을 사이버 공격하기 위해 해커 집단을 고용하는 것은 ‘크렘린의 흔한 전술’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푸틴 대통령이 미 NBC방송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다채로운 사람’, ‘특별한 재능이 있는 자’라고 평가하고, 바이든 대통령을 ‘평생 직업정치인’이라고 지칭한 것은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모욕”이라고 했다.

미국은 이번 회담에서 핵안보, 군비 감축, 사이버 공격,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갈등, 러시아에 수감 중인 반(反) 푸틴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 문제 등을 제기할 예정이다. 코플러는 “러시아는 이런 의제들에 관심이 없고, 때문에 미국이 이룰 수 있는 것도 거의 없다”고 했다. 그는 “대신 러시아는 이번 정상회담을 미국에 대한 좋은 정보수집 기회로 활용할 것”이라고 했다. 또 “러시아는 초강대국 미국과 테이블에 마주앉는다는 것만으로도 대내적인 선전 쿠데타를 위한 목표를 달성했다”고 분석했다.

세르게이 라첸코 영국 카디프대 법경제학 교수도 15일 러시아 매체 더모스크바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이번 미-러 정상회담이 푸틴 대통령의 입지만 강화시켜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독재 정권’이라고 비판 받는 푸틴 정권이 미국과의 외교를 대외적으로 과시함으로써 ‘국제적인 정통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 맞서고 논쟁하는 모습을 러시아 국민들에게 보여줌으로써 푸틴 대통령은 국내의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문제 때문에 과거 미국 지도자들은 독재정권 지도자를 직접 만나는 것을 꺼렸다.

일례로 1989년 중국에서 톈안먼 광장 학살 사건이 일어나자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베이징 방문을 거부했다. 자칫 공산당의 탄압과 학살에 대해 미국이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과거 미-러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주로 핵무기 등이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사이버 공격이 주 의제로 다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5일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70년 간 미국과 러시아(또는 소련)는 가장 지배적인 위협으로 핵을 꼽았지만 이제 ‘사이버 무기’가 최대 문제로 떠올랐다”고 전했다.

최근 미국 최대 송유관 운영사 콜로니얼 파이프라인, 미국 내 소고기 공급의 4분의 1을 담당하는 JBS SA의 미국 자회사는 잇달아 해커 집단의 사이버 공격을 받았다. 미 정부는 러시아 기반 해커조직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NYT는 “푸틴 대통령은 핵 탑재 어뢰, 극초음파 무기 등에 막대한 투자를 했다고 자랑하지만, 동시에 그는 그것들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며 “반면 그의 사이버 무기들은 매일 작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원자력발전소, 핵무기 지휘통제 시스템까지도 사이버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은택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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