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언니 같은 동네 형님이 석달 만에 떠났다, 어떻게..

한겨레 2021. 6. 16.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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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들 귀농서신]감기 기운을 이야기하면서, 귀가 먹먹한 것을 한번 봐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의사는 기구가 고장 났단다. 읍내 병원으로 가보라는 말을 친절하게 덧붙였다. 보건지소에는 혈압약을 타는 할머니들만 가야 하는 걸까? 병은 사람을 가리지 않지만, 병원은 사람이 많은 곳에서만 존재할 수 있나 보다.

[엄마아들 귀농서신] 조금숙ㅣ괴산서 농사짓는 엄마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을 보았다. 너희 결혼 앨범이 나왔다고 들고 왔을 때, 올림머리의 뒷모습을. 흰머리가 제법 많이 보여 그날 두어명에게 얘기를 들었던 것이 퍼뜩 떠올랐다. 문득 자신조차도 모르는 다른 모습을 지닌 채 살아가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칼럼 연재 뒤 아들이 멋지다는 전화를 연이어 받았다. 멋있는 건 분명 맞는데, 흔쾌하지 못하고 엉거주춤 얼버무리고 화제를 돌렸단다. 전화한 지인은 진심이었을 게다만 엄마도 남의 아들이었으면 멋있다고 전화해주었을까. 생각이 많아졌다. 특히나 학원에 안 가겠다던 속사정을 헤아리지 않고 등 떠밀던 그 모습 그대로 오늘까지 살고 있구나 돌아보았다. 그나마 이제라도 속내를 들을 기회가 있다는 게 고맙구나. 너에게는 사람을 설득하는 신묘한 능력이 있다는 것도 새삼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선배님~ 청주 다녀오느라 늦었어요!” 요 며칠 전 모임에 늦게 온 후배의 말이다. 아이의 이빨 치료를 위해 청주에 있는 치과로 다닌다고 했다. 읍내에도 치과는 많이 있건만 청주까지 병원을 다니고 있단다. 치과만이 아니야. 우연히 만난 지인의 얼굴에 붉은 반점이 퍼져 있었어. 치료를 위해 청주 피부과로 다닌다고 했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례란다. 병은 나이 든 사람과 젊은 사람을 구별하지 않지. 평생 밭일을 하면서 무릎의 연골이 다 닳아 인공관절 수술을 해야 했던 할머니도 청주로 나가서 수술을 받으셨다. 동네 형님은 배추 모종을 하고 나서 앓아누우셨어. 감기몸살인 줄 알고 병원에 입원했었다. 피주사도 맞고 특별히 다른 치료가 없어서 퇴원했는데 집에 와서도 영 기운이 되살아나지 않으셨어. 다시 입원하고 급기야는 부천 큰 병원으로 가셨다가 몸져누운 지 딱 석달 만에 하늘의 별이 되셨단다. 귀농해 친자매처럼 지내던 사이라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모른다. 황당했고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따져보고 싶었다. 이런 주변의 사례를 보면서 마음이 아주 많이 불편했다.

지난날의 경험도 떠올랐다. 목에 가래가 낀 듯 답답하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이 감기라고 생각되어 동네 보건지소를 찾아갔다. 보건지소는 면사무소와 인접해 있어 읍내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평소에도 보건지소가 자리하고 있는 만큼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보건지소의 접수 담당이 의아한 듯 쳐다보던 눈빛이 새삼 떠오른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니, 읍내로 안 가고 보건지소에는 왜 와?’ 하는 마음의 소리가 느껴졌던 것이다. 그 마음의 소리는 진료가 끝나고 약을 조제해주면서 여실히 드러났다. “이거 드시고 증상이 계속되면 읍내 병원으로 가세요.” 대기 인원이 한 사람도 없었지만 의사를 만나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의사는 진료실에 있지 않고 다른 방에 있는 듯했다. 감기 기운을 이야기하면서, 귀가 먹먹한 것을 한번 봐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의사는 기구가 고장 났단다. 그 기구라는 것이 배터리만 바꿔 끼면 되는 거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의 귓속을 보는 조명 달린 간단한 기구 아닌가. 보건의는 읍내 병원으로 가보라는 말을 친절하게 덧붙였다. 혹시 오해가 있을까 봐 노파심에 말하자면, 지난날에 있었던 일이다. 보건지소에는 혈압약을 타는 할머니들만 가야 하는 걸까?

병은 사람을 가리지 않지만, 병원은 사람이 많은 곳에서만 존재할 수 있나 보다. 귀농, 귀촌한 사람들에게 절실한 문제의 하나가 의료시설의 부재라고 하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어쩌면 공공의료의 문제는 국가적 차원의 해결 과제라고 치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골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의료혜택의 불평등을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도시와 농촌 지역의 응급의료 편차가 크게 벌어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연구는 많다. 괴산 지역은 응급의료취약 2등급으로 제시되었다. 학교에서 의료는 지역과 계층에 관계없이 누구나 보편적으로 누려야 하는 권리라고 가르치고 있을 텐데, 농촌 주민의 그런 권리가 지켜지는지 생각해볼 일이야.

무릇 육아라는 게 부모의 확고한 교육관이 중요한 건 맞다만, 소아과 하나 없는 시골을 생각하면 교육관과는 관계없이 도시와는 비교 불가하다. 네가 마주해야 할 의료 현실이 이렇단다. 시골에서는 제대로 치료받기가 어려워. 네가 살고 있는 곳은 신도시로 계획되어 도로와 기반시설을 갖춘 후의 아파트로 입주했었지. 그런데 여기 시골, 동네 모든 길은 이웃하고 있는, 길을 사용하고 있는 개개인의 땅을 도로로 사용해도 좋다는 승낙서에 의해 만들어져 있단다. 그러니까 정부에서 만들어준 도로를 사용하는 도시인들은 그 혜택을 받고 있다는 거야. 그만큼의 차이는 아주 크다고 생각해. 그렇게 자신의 땅을 내놓으면서 농사지으며 살고 있지만 소득은 어떻고, 아프면 또 어떻게 되는 거니. 시골에 살다 보면 겪게 되는 어려움은 정말 많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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