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하원 "트럼프 행정부, 법무부에 '대선 음모론' 수사 압박" 문건 공개

박수현 기자 2021. 6. 16.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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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원 감독위원회가 1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전임 행정부가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기 위해 법무부에 부정 투표 의혹을 조사하도록 압박한 정황이 담긴 이메일을 공개했다. 미 의회가 트럼프 전 행정부에 대한 전방위적 조사에 나서는 모습이다. 미 하원 법사위원회는 전날 성명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 시절 야당 의원과 언론인에 대한 법무부 차원의 사찰을 조사한다고 발표했다.

2020년 5월 5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감독위는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이었던 마크 메도스가 지난 1월 1일 법무부에 보낸 이메일을 공개했다. 이 이메일에는 이른바 ‘이탈리아 게이트’를 주장하는 영상 링크가 첨부돼 있었다. 이탈리아 게이트는 이탈리아에 있는 누군가가 군사 기술과 위성을 활용해 미국의 개표기를 원격으로 조작, 표를 바꿔치기했다는 음모론이다.

감독위가 함께 공개한 법무부 내부 이메일을 보면, 당시 연방 검사였던 리처드 도너휴는 메도스의 이메일을 받고 “완전히 미쳤다”는 두 마디를 제프리 로즌 당시 법무부 장관대행에게 보냈다. 로즌은 이에 “그렇다(yes)”며 메도스로부터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이자 최측근인 루디 줄리아니 측 인물과 만나 관련 수사를 진행해 달라는 요청도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밝혔다.

감독위는 메도스가 같은 날 로즌에게 보낸 이메일도 공개했다. 메도스는 이 이메일에서 조지아주 풀턴카운티에서의 선거 사기 의혹을 조사해 달라며 트럼프 캠프 소속 변호사였던 클레타 미첼이 쓴 주장문을 첨부했다. 이를 확인한 로즌은 “이것이 믿겨지는가? 나는 여기에 답하지 않을 생각이다”라는 두 줄을 붙여 도너휴에게 전달(forward)했다.

로즌 등 법무부 관계자들은 메도스의 이메일을 받고 이틀 뒤 백악관에 불려갔다. 이 가운데 한 명은 이후 동료 법무부 직원들에게 “로즌과 법무부의 대의가 승리한 것 같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이에 존 디머스 법무부 국가안보 담당 차관보는 “놀랍다”고 답했다.

2020년 10월 30일 마크 메도스 당시 미국 백악관 비서실장이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로즌은 윌리엄 바 전 법무장관의 경질 이후 취임한 인물이다. 바는 지난해 12월 경질되기 전, ‘대선에서 불법적인 행위가 있었다는 어떠한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로즌이 바와 마찬가지로 대선 과정에 의혹을 제기하는 데 비협조적으로 나오자 그의 경질을 고려했으나, 그 사실을 알게 된 법무부 직원들이 강하게 반발하자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독위는 이날 백악관이 로즌과 제프리 월 당시 법무차관 대행에게 보낸 이메일도 공개했다. 이 이메일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또 다른 개인 변호사인 커트 올슨이 작성한, 대법원에 펜실베이니아·조지아·미시간·애리조나·네바다주의 대선 결과를 뒤집어 달라고 촉구하는 브리핑 초고가 담겨 있었다. 당시 백악관 부보좌관이었던 몰리 마이클은 이메일에서 “대통령께서 첨부된 초안 문건을 공유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메도스와 팻 시폴론 백악관 법률고문에게도 같은 문건의 사본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로즌은 이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올슨은 월에게 이메일을 보내 “로즌과 다른 비슷한 조치를 논의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받았는데 아무리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도 그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이는 긴박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하원의원으로 감독위원장을 맡고 있는 캐롤린 멀로니는 감독위가 이날 공개한 문건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이 패한 선거를 뒤집기 위해 뻔뻔스러운 시도로 미국의 최고 법 집행기관을 부패시키려 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2020년 12월 16일 제프리 로즌 당시 미국 법무부 장관대행이 워싱턴DC 법무부 청사에서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꺼져가던 트럼프 전 행정부 이슈에 다시 불을 붙인 건 뉴욕타임스(NYT)의 폭로였다. NYT는 지난 10일 2016년 대선 과정에서 러시아 정부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개입했다는 ‘러시아 스캔들’ 보도와 관련해 법무부가 정보 유출자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자사 기자들의 통신 기록을 사찰했다고 밝혔다. 지난달엔 조 바이든 사법부가 전임 행정부 시절인 2017년 워싱턴포스트(WP)와 CNN 기자들에 대한 통신기록 열람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곧바로 성명을 발표하고 애덤 시프 하원 정보위원장에 조사를 촉구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사찰 대상 중 한 명으로 확인된 시프는 관련 보도가 나온 직후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법무부에 자신의 정적을 추적하라고 반복해 요구했다”고 비판했다. 제리 내들러 법사위원장은 이후 성명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 시절 하원의원 및 언론 감시에 대한 법사위 차원의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정치인 정보 수집 등에 관한 자체적인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메릭 갤런드 법무장관은 14일 성명을 내고 “입법부에 대한 자료 수집 절차와 방침을 평가하고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며 “문제 요소를 확인하고 강도 높은 검토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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