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탕핑'과 한국의 <기생충> [오늘을 생각한다]

2021. 6. 16.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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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대안이 또렷하지 않은 시대에도 저항은 있다. 오늘날 동아시아가 그렇다. 가령 2019년 홍콩의 청년 시위대 일각은 ‘란차오(攬炒)’와 “네가 불태운다면 넌 우리와 함께 불탈 것이다(If you burn, you burn with us)”라는 구호를 외치며 도시를 멈추려 했다. 란차오는 카드게임에서 유래하는데 ‘끌어안고 같이 죽는다’는 뜻을 갖는다. 화해의 포인트를 찾을 수 없었던 정부 측과 용무파 청년들의 대립은 극심한 국가폭력과 방화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 미얀마 군부쿠데타 이후의 ‘시민 불복종 운동’은 이보다 대중적이고 저항적인 의미를 띤다. 물리적 저항의 측면에서는 수위가 낮고 다양하지만, 모두가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배권력에 위협적이다. 미얀마 군부는 민주 시위를 제압하고 학교나 공공시설을 정상화시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목숨을 건 시민 불복종 운동에 가로막혀 난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극적이고 익명적인 저항도 존재한다. 이를테면 일본의 청년들은 ‘잃어버린 20년’을 경과하며 경제도 사회운동도 모두 오랜 침묵의 시기를 벗어나지 못하자 욕망을 최소화시키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는 사회변화의 대안을 창출해내지는 못하지만, 그곳에서 버티며 살아가는 집단적인 반작용을 반영한다.

최근 중국 인터넷에서 뜨거운 호응을 불러일으킨 인기 검색어는 ‘탕핑’이었다. 중국에서 가장 많은 네티즌이 즐겨찾는 커뮤니티인 바이두의 ‘중국 인구 게시판’에 “탕핑이 곧 정의다”라는 짧은 글이 올라왔다. 필자는 “나는 디오게네스처럼 나무통 안에서 자고 햇볕을 쬐거나 헤라클레이토스처럼 동굴 안에서 로고스를 사유할 수 있다”며 “탕핑은 나의 지식 운동이다. 탕핑만으로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고 적었다.

탕핑은 대륙의 무수한 ‘밈’을 연상시킨다. 바로 방바닥이나 거리에 드러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실업자의 모습이다. 그것은 단순히 쉼이나 권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 뒤에 따라붙은 무수한 논의가 가리키듯 중국공산당이 강조하는 ‘분투’와 ‘노력’에 대한 거부이자 저임금 노동을 강요하는 자본과 기업가들에 대한 암묵적인 파업이다. 그러니 풀어쓰면 ‘눕다’와 ‘평평하다’를 뜻할 뿐인 ‘탕핑’에 관한 글들이 순식간에 검열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우리라고 예외는 아니다. 가령 출로 없는 사회에서 억압된 욕망을 누르며 감추어진 공간에 살아가는 반지하 사람들이 등장하는 영화 〈기생충〉을 통해 비슷한 모순을 감지할 수 있다. 10년 전 ‘헬조선’이나 ‘3포세대’라는 말이 유행했던 것도 노동권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절망을 반영한다. 하지만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조금은 진전된 저항, 조금은 나은 대안을 창출하는 게 필요하다. 동아시아 각국이 민족주의 열풍에 침식되지 않고 연대의 길을 찾기 위한 노력도 절실하다. 어쩌면 동아시아 각국 청년들이 겪는 현실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지 않을까.

10년 전 ‘헬조선’이나 ‘3포세대’라는 말이 유행했던 것도 노동권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절망을 반영한다. 하지만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조금은 진전된 저항, 조금은 나은 대안을 창출하는 게 필요하다.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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