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 잘못 옮겼나' 중소기업 이직 후 아차 싶었던 삼성맨의 반전

진은혜 더비비드 기자 2021. 6. 1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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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취중잡담] 근로계약·근태관리 등 복잡한 인사 관리 대신 해주는 플랫폼 개발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청년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게재합니다. 그들은 어떤 일에 취해 있을까요?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의 미래를 탐색해 보시죠.

이동욱 자버 대표. /더비비드

자버는 채용, 재직관리, 퇴사 등 모든 인사 관리를 처리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은행 홈페이지에 접속해 은행 업무를 처리하는 것처럼, 자버 플랫폼에서 각종 인사관리를 처리할 수 있다.

“자버를 쓰면 내부에 별도 인사관리 시스템을 둘 필요가 없습니다.”

자버를 개발한 이동육 대표는 2001년 서울시립대학교 산업디자인과에 입학해 철학을 복수 전공했다. “창의적이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아서 산업디자인과에 진학했습니다. 예상과는 달리 그림 그리는 것 위주로 공부하더라고요. 평소 인문학에 관심이 많아 철학을 복수 전공으로 택해서 아쉬운 점을 채웠습니다.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시기라 철학에 푹 빠졌지요.”

자버의 인사 관리 화면 예시 /자버

‘철학을 공부한 디자이너’는 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2010년 삼성전자 IT 솔루션 사업부의 UX팀 디자이너로 입사했다. “삼성이 디자이너 중에서 인문학적인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인재를 찾던 시기였습니다. 모바일 클라우드 프린팅 사업부에서 기획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일의 재미에 푹 빠졌다. “소속 사업부가 신사업을 맡게 됐습니다. 유연함 팀이라 상무, 전무 같은 고위 임원들과 한 자리에서 회의하며 즐겁게 일했습니다. 임원들과 아침 식사를 함께 하며 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피드백을 받기도 했어요. 내 가치를 알아주는 조직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됐습니다.

◇스타트업 인사 체계 경험하며 사업 아이디어

이 대표는 삼성전자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자버

하지만 대기업의 경직된 의사결정 구조와 프로젝트 진행 속도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내 아이템을 즉각 실행할 수 있는 스타트업 조직에 관심이 갔다. “지인으로부터 ‘사업을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자신감이 충만할 때라 2015년 4월 퇴사하고 합류했습니다. 첫 사업 아이템은 ‘동기부여 카드뉴스’였어요. 하지만 뚜렷한 비전이 보이지 않았죠. 1년쯤 다니다 2016년 10월 선배가 하는 IT 커머스 스타트업의 기획팀장으로 합류했습니다.”

막상 입사해보니 본업인 웹 페이지 운영 및 기획 업무가 아니라 ‘인사 업무’에 적잖은 시간을 쏟아야 했다. “투자 받으러 다니느라 바쁜 대표님 대신 제가 안살림을 맡았습니다. 15~20명 규모의 회사였는데 인사관리 시스템이 전무했어요. 근로계약서 써 달라, 재직증명서 떼 달라 항의가 들어올 때마다 포털을 검색해서 주먹 구구식으로 해결했어요. 저 스스로도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고요. 팀원들의 연차 소진 상황도 알 수 없었습니다.”

편하게 일을 처리하고 싶어 인사관리 솔루션 시장을 조사했다. 쓸 만한 시스템이 하나도 없었다. “당연히 있는 줄 알았는데 없어서 당혹스러웠습니다. 외국엔 있는데 말이죠. ‘한국에 왜 없을까’ 고민하다가 기회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커머스 회사를 관두고 2017년 4월 인사관리 솔루션을 개발하는 회사 ‘자버’를 설립했습니다. 편한 인사관리를 넘어서서 인사와 관련된 모든 시스템과 데이터까지 아우르겠다는 포부로 시작했습니다.”

◇입사부터 퇴사까지 종합 인사관리 서비스

이 대표는 팀원 간의 협동과 신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은 자버의 구성원들./자버

사업 초반 스타트업의 인사 담당자들의 니즈를 바탕으로 솔루션을 만들어 나갔다. “시스템을 개발하면서 ‘이 중 하나만이라도 인사담당자들의 마음을 잡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서비스를 쏟아냈습니다. 재빨리 실행해서 안되면 접자는 ‘애자일’ 방법론을 차용한 거죠. 2017년 10월 인사 담당자들이 가장 귀찮아 하는 근로계약서 전자서명으로 시작해서 연차관리, 급여관리, 인건비 지원사업 관리, 채용 페이지 개설 등으로 서비스를 확장했습니다.”

자버에 가입하면 우선 기업 별 채용 페이지가 생성된다. 지원자들의 정보가 하나로 취합돼 한눈에 지원자 현황을 볼 수 있다. 채용 절차를 진행해서 합격자를 뽑은 뒤 합격과 불합격 명단을 넣으면, 플랫폼이 알아서 합격자에게는 합격 메일을, 불합격자에게는 불합볍 메일을 보낸다. 합격자에 대해선 근로계약서 양식이 생성된다. 합격자에게 메일을 보내 전자서명을 하면 체결된다.

보조금 신청도 할 수 있다. “정부는 채용에 대해 기업에게 각종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일자리 안정자금, 청년 추가고용 장려금, 두루누리사회보험 등이 대표적이죠. 기업의 업종과 특성, 합격자수에 따라 내용과 금액이 달라지는데요. 어떤 지원금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자동으로 알려줍니다. 확인한 후 플랫폼 내에서 지원금 신청을 하면 됩니다. 플랫폼이 알아서 고객사 이름으로 정부에 지원금 신청을 하죠.”

마지막으로 합격자를 플랫폼에서 직원으로 등록하면 인사기록카드가 생성되고 이후 직원에 대한 모든 인사정보를 카드에 관리할 수 있다. “매년 연봉 협상 결과 같은 히스토리를 남길 수 있습니다.”

자버에서 이용할 수 있는 프리랜서 계약서 양식 예시. 자버

직원 퇴사 후 처리도 할 수 있다. 인사기록카드에서 퇴사했다고 입력하면, 그 정보가 자동으로 세무 대리나 노무 대리에 전달돼서 각종 처리가 이뤄진다. “간편합니다. 인사담당자 없이 누구라도 인사관리를 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3년간 다양한 서비스로 테스트한 결과 가장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영역은 ‘전자 근로계약서 작성’ 서비스로 나타났다. “서비스 이용 추이를 분석해보니 2만여 곳 고객사 중 70~80%가 이 서비스를 쓰고 있었습니다. 배경을 알아보니 계약의 양은 많아졌는데 주기는 짧아졌더라고요. 단기 계약직 일자리가 많이 늘어난 탓이었습니다. 단기 일자리라 하더라도 계약서를 쓰지 않으면 안됩니다. 덕분에 간편한 전자 계약서를 찾는 회사가 많아졌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비대면 계약 수요까지 겹치면서 전자 근로계약서 수요가 크게 늘었습니다.”

이 대표는 애자일 방법론으로 자버를 키워나갔다. /자버

자버의 가장 큰 경쟁력은 문서 속 데이터와 호환이 된다는 데 있다. “기존의 전자서명은 문서 이미지 위에 서명만 전자로 하는 방식입니다. 이미지 위에 텍스트가 들어가야 하는 방식이라 데이터 검수가 불가능하죠. 반면 자버는 데이터 기반의 전자 문서라 검수가 가능합니다. 회사 주소, 사업자 번호, 생년월일 등의 정보가 업데이트될 때마다 계약서에 모두 반영되고요.”

전자계약 범위를 단계별로 확대할 계획이다. “전자 근로계약서 성공 이후 재직증명서, 사직서, 무급휴가확인서, 경력증명서 등으로 서비스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덕분에 퇴사자도 마음 편하게 경력증명서를 뽑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회사와 직원뿐만 아니라 법인 대 법인, 개인 대 개인 등 모든 형태의 계약에 전자서류를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를 구현할 계획입니다.”

◇2년 만에 매출 10배로 신장, 대기업도 고객사로 유치

자버를 통해 쌓인 데이터를 활용해 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더비비드

이 대표는 인사 관리 시스템을 만들면서 본인의 인재관도 바뀌었다고 고백했다. “빨리 투자를 받아서 고급 인력을 뽑아야겠다는 생각에 사로 잡힌 적이 있습니다. 창업 초기, 사회 초년생 팀원들과 서비스 개발하는 과정이 힘들었거든요. 불만도 많았죠. 그런데 지나고 보니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구성원들이 편견 없고 회사 체제를 모르던 신입인 덕분에 혁신적인 서비스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S급 인재 한 명을 유치하는 것 보다, 모든 팀원이 적극적으로 협업하고 신뢰하는 회사 분위기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16명의 자버 구성원들이 분투해준 덕에 파죽지세로 성장하고 있다. “KB국민은행, 브랜디, 인크루트, 집토스, 당근마켓 등 대기업이 자버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2018년 4000만원에 불과했던 연 매출은 2020년 4억 1000만원, 10배로 뛰었죠. 서비스의 가치를 인정받아 2019년 11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이 창업경진대회(디데이)에서 우승도 했습니다. 지난 3월엔 스트롱벤처스, 하나은행, 디캠프 등으로부터 프리시리즈A 투자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쌓은 데이터를 채용 서비스에 연계하는 게 목표다. “근로계약서에는 계약 내용 뿐 아니라 학력, 경력, 수상내역, 자격증 등의 정보가 담겨있습니다. 기업의 계약 패턴과 계약 형태 역시 누적된 데이터로 파악할 수 있지요. 저희가 개인정보에 접근할 권한은 없지만, 구직자와 어울리는 기업을 매칭하는 형태로 데이터 ‘전처리’는 할 수 있습니다. SNS 타깃 광고처럼요. 수집한 인사 데이터를 활용해 구직자, 직원, 기업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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