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3000년만에 부활한 악마'에 호주가 열광하다

정지섭 기자 2021. 6. 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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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토서 사라졌던 '태스메이니아 데빌' 호주 본토서 번식 성공
초미숙아 상태로 태어나는 '캥거루 먼 친척'
유대류중에는 먹이 사냥하는 맹수들도 있어
포효하는 태스메이니아 데빌. 가슴팍의 흰털이 반달가슴곰과 비슷한 모습이다. /Aussie Ark 페이스북

검은 털에 가슴팍에 난 흰 털 때문에 작은 반달가슴곰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동물의 첫 인상이 썩 좋지는 않습니다. 칙칙한 털빛깔에 날카로운 눈매와 이빨에, 산동물뿐만 아니라 시체까지 즐겨먹는 먹성까지도 일단 께름직하지요. 으르렁대는 소리는 또 얼마나 섬뜩한지 모릅니다. 악마(devil)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이해가 갈 정도예요. 그런데 이 ‘악마’가 ‘부활’하자 호주인들이 두팔벌려 반기고 있습니다. 이 ‘악마’의 정체는 바로 ‘태스메이니아 데빌(Tasmanian Devil)’입니다. 호주 동남쪽에 따로 떨어진 태스메이니아섬에만 살던 특산종이었습니다만, 3000년여만에 호주 본토에서 번식에 성공했거든요.

◇ 30세기만의 본토 귀환

태스메이니아 데빌 두 마리가 서로 교감하는 모습. /Aussie Ark 페이스북

오시 아크(Aussie Ark·호주의 방주)라는 환경보호단체에서 작년 10월 태스메이니아에 살던 ‘악마’ 26마리를 들여다 시드니 북쪽 자연보호구역에 풀었습니다. 모두 성체였고, 그 중 일곱마리가 암컷이었는데 임신에 이어 출산까지 성공한 것입니다. 호주 본토에서 자취를 감춘 것이 대략 3000년전이니 약간의 의미를 부여하자면 근 30세기만의 귀환이네요. 태스메이니안 데빌은 너구리 정도 크기의 비교적 작은 육식동물입니다. 그래도 새끼니까 예쁠 것 같죠?

그런데, 사람 엄지손톱보다도 훨씬 작고, 아직 털도 없고 눈도 보이지 않은 초미숙아 같은 모습으로 자기 몸뚱이보다 더 큰 어미 젖을 빠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이쯤되면 한 동물이 생각나지 않으시나요. 캥거루 말이죠. 태스메이니아데빌 역시 캥거루처럼 초미숙 상태로 일단 태어나 육아주머니에서 어미 젖을 먹으며 자라는 유대류입니다.

3000년만에 호주 본토에서 태어난 태스메이니아 데빌의 새끼들. 캥거루 새끼처럼 미숙아 상태로 태어나 육아낭에서 어미 젖을 빨며 성장한다. /Aussie Ark 페이스북

유대류하면 떠오르는 동물들이 있죠. 권투 잘하는 호주의 상징 캥거루, 캥거루보다 좀 작은 왈라비, 귀염둥이 동물을 말할 때 첫손에 꼽히는 코알라, 코알라 못지 않게 깜찍하고 동글동글한 웜뱃 등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순둥순둥한 초식동물만 있는게 아닙니다. 같은 유대류인데도 풀이 아닌 살·뼈·고기를 먹어야 살 수 있는 사냥꾼들도 있습니다. 그 대표주자가 태스메이니아 데빌이죠. 용맹한 사냥꾼이지 어떻게 해서 3000년 전에 호주 본토에서 사라졌을까요. 들개 ‘딩고’ 때문으로 추측됩니다. 딩고는 외래종이지만 또 외래종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있는 동물입니다. 유럽인들이 정착하기 훨씬 전인 3500여년전에 원주민이 데려온 뒤 야생화한 개거든요. 개들에게 태스메이니안 데빌은 경쟁자가 아니라 식사거리였고 순식간에 씨가 말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 호주 들개 딩고 ‘먹잇감’으로 씨 말라

다행히 딩고는 바다건너 태스메이니아섬까지 도달하지는 않았기에 데빌들은 이곳에서 대대손손 번성했습니다. 유라시아·아메리카 대륙과 뚝 떨어져있는 호주는 유대류 뿐 아니라 가장 원시적이고 신비로운 포유동물인 단공류(오리너구리·가시두더지 등) 등 기이한 동물들의 낙원입니다. 그런데 호주에서도 외딴 섬인 태스메이니아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데빌들은 터전인 태스메이니아에서도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인간에 의한 서식지 파괴 문제 말고도, 최근 데빌들 사이에서는 얼굴에 종양이 생기는 피부암이 급속도로 전파됐습니다. 태스메이니아에 남은 데빌들은 현재 2만5000여마리까지 줄어든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호주의 야생개 딩고. 본토에서 태즈메이니아 데빌들을 절멸시킨 천적으로 알려졌다. /AP.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본토로 다시 옮겨와 번식을 시도하는 프로젝트도 이런 고민에서 시작됐죠. 이 동물은 사실 만화캐릭터로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답니다. 워너브러더스의 고전 만화영화 시리즈 ‘루니툰(Looney Tunes)’에서 벅스(토끼), 대피(오리), 포키(돼지), 실베스타(고양이), 트위티(카나리아) 등과 함께 주요 캐릭터로 회오리바람처럼 다니면서 주변을 모두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놓는 정체불명의 갈색 괴물의 이름이 ‘태즈메이니아 데빌’입니다. 모처럼 존재감을 드러낸 데빌들이 선조들이 쫓겨났던 고향에서 재안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럽인들 이주 당시 함께 온 고양이·쥐 등 외래종 동물들의 폭발적 번식으로 병들어가는 호주 생태계를 예전처럼 되돌리는 ‘천사’의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동명의 짐승을 만화캐릭터로 만든 루니툰의 '태스메이니아데빌'. /인터넷 캡처.

◇ 이 참에 ‘태즈메이니아 호랑이’도 돌아왔으면

육식을 하는 유대류는 태즈메이니안 데빌만 있는게 아닙니다. 사실 호주인을 비롯해 전세계인들이 혹시나 하며 귀환을 기다리는 멸종 동물이 있답니다. 바로 태즈메이니아 호랑이(Tasmanian Tiger)입니다. 호랑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역시 육아낭에 새끼를 키우는 유대류입니다. 늑대처럼 생긴 몸뚱아리에 등에 난 줄무늬 때문에 호랑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또는 태스메이니아 늑대라고도 해요.

1936년 멸종된 태스메이니아 호랑이. 유대류 중 최대몸집의 맹수였다.

유대류 중 최대 맹수인 이 짐승은, 가축의 천적이라는 이유로 유럽 이주민들에게 무차별 학살을 당했고, 1936년 동물원에 남아있던 단 한 마리가 죽으면서 지구상에서 멸종됐습니다. 이후 유전자 채취를 통한 복원, 야생 잔존 가능성 탐사 등의 소식이 들려왔지만 구체적인 성과는 없었습니다. 호주인들에게 절멸된 태즈메이니아호랑이는 인간의 탐욕에 의한 생태계 파괴를 상징하는 부끄러움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 ‘악마’의 부활을 더욱 반기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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