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무척 흥미로운 경험"

김용출 2021. 6. 1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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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문명' 펴낸 베르베르 이메일 인터뷰
인류 대신할 새로운 문명 건설 나선
암고양이 '바스테트'의 모험 그려
테러·전쟁으로 황폐해진 세계 배경
인간 문명의 부조리 통렬하게 비판
새로운 문명을 건설하려는 고양이들의 모험을 흥미진진하게 그린 장편 ‘문명’을 펴낸 베르베르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억누르는 족쇄를 푸는 순간 누구든 멋진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늘 카페에서 글을 썼다고 한다. 열린책들 제공
“제가 돌고래를 주인공으로 글을 썼더라면, 아마 독자들이 지금만큼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 거예요. 돌고래는 우리 일상 속 동물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고양이는 다르죠. 고양이를 키우는 많은 독자들이 책을 읽으면서 수시로 자신의 고양이를 떠올렸을 겁니다. 고양이는 관찰력이 무척 뛰어난 신비로운 동물이지요.”

2016년 장편소설 ‘고양이’에 이어 다시 암고양이 바스테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두 권짜리 소설 ‘문명’(열린책들)을 펴냈기에 고양이를 왜 주인공으로 내세웠느냐고 묻자, 베르베르는 친절하게 답했다. 설명은 이어졌고 구구해서 풍성했다, 그의 소설처럼.

“고양이는 인간과 무척 다른 동물입니다. 다른 동물들과도 많이 다르죠. 늘 자기 몸을 핥아 깨끗이 유지하고 수시로 기지개를 켜 몸을 늘이고, 낮에 자고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 동물이에요. 무척 영리한 동물이기도 하죠.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유심히 관찰한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가 지금까지 키운 고양이는 모두 세 마리. 현재는 흰 털에 검은 털이 덕지덕지 붙은, 특히 코 부근을 검은 털로 감싼 고양이 도미노(사진)와 생활 중이다. 고양이에게서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나왔을까.

“지금까지 고양이를 세 마리 키워 봤는데, 세 마리 모두가 저를 항상 관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고양이가 동작을 멈추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걸 의식하는 순간, 과연 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지더군요.”

고양이에게서 부풀어 오른 신작은 매력적인 암고양이 바스테트가 전염병으로 많은 인간들이 죽고 테러와 전쟁으로 황폐한 세계를 배경으로 쥐떼의 공격을 물리치고 인류를 대신할 새 문명을 건설할 도전에 나서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돼지, 소, 개, 비둘기 등 다른 동물들과 서로 돕기도 하고 적이 되기도 하면서 고양이 문명을 세우기 위해 유머와 예술, 사랑을 체득해 나가는 모험은 그야말로 흥미진진.
새로운 고양이 문명이란 역으로 세상이란 인간의 것만이 아니라는 성찰적인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던진다. 한번 들어보시라, 돼지왕 아르튀르의 서늘한 다음 말을. “이거 하나는 명확히 짚고 넘어갑시다. 인간들은 이 세상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오. 세상은 그들 이전에도 존재했고 그들 이후에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니까.”(2권 98쪽)

오지 않는 미래는 물론 인간 세계까지 훌쩍 넘어서는 발칙한 상상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베스트셀러 작가 베르베르와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중간에서 출판사와 번역가 전미연씨가 번다한 수고를 했다.

―2016년작 ‘고양이’의 고양이들과 신작 ‘문명’의 고양이들은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습니까.

“‘고양이’의 바스테트, 피타고라스와 비교하면 이번 ‘문명’의 바스테트, 피타고라스는 각각 다른 방향에서 성장했어요. 바스테트는 제3의 눈을 얻어 인류의 지식에 접근하게 되었고, 피타고라스는 바스테트를 구하기 위해 그동안 피해 왔던 폭력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둘의 관계도 달라졌죠.”
―고양이나 쥐, 개, 돼지 등 동물들이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는데도 전혀 이상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혔습니다. 독자는 즐겁게 읽었지만, 작가 입장에선 어려움이 적지 않았을 텐데요.

“동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무척 흥미로운 경험입니다.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사물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고양이는 딱 인간 무릎 정도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죠. 그렇게 낮은 곳에 존재하다 보니 항상 높은 곳으로 뛰어오르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모양입니다. 고양이들은 모두 높은 곳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걸 아주 좋아하죠. 고양이는 인간보다 세계에 대한 정보를 훨씬 많이 수집합니다. 그러니 이런 동물의 입장이 돼 보는 건 작가로선 흥미진진한 경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작품 속에서 인간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지적은 서늘하면서도 많은 성찰을 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300만 년 전에 지구상에 출현한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신생종이라고 할 수 있지요. 개미만 해도 1억2000만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신생종인 우리는 언제든 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라진다고 해서 다른 동물들까지 사라지는 건 아닐 테고요. 인간이라는 동물은 아마도 자신이 사는 행성을 파괴할 수 있는, 그것도 의식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유일한 종일 겁니다. 번식을 통해 지구에 해를 끼치는 동물 종은 여럿 있지만, 그런 동물들이 의식적으로 그런 선택을 하는 건 아니니까요.”

요컨대, 소설 ‘문명’은 동물을 전면에 등장시켜 오만하기 그지없는 인본주의랄까 인간 문명의 부조리를 통렬하게 비판한 문명비판서로 읽힐 수도 있겠다.

1961년 파리 근교 툴루즈에서 태어난 베르베르는 일곱 살 때부터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한 글쟁이. 대학을 졸업한 뒤 과학부 기자로 일하던 그는 1991년 장편소설 ‘개미’를 발표했다, 무려 120여회나 개작한 끝에.
―‘개미’를 발표한 뒤 전업 작가의 길을 가게 됐는데, 무엇이 기자에서 작가로 이끌었는지요.

“기자일 때는 제가 원하는 대로 쓸 수가 없었어요. 늘 쓰려는 내용을 설명하고 허락을 받아야 했죠. 기자 시절에는 창의력보다는 규범에 맞춰 틀에 맞는 글을 쓰도록 요구받았고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글을 쓰라고 말이에요. 하지만 작가가 된 지금은 오로지 독자들의 기쁨과 독서의 재미만을 위해 글을 쓰면 돼요. 독자들 덕분에 지금의 제가 존재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작가라도 독자가 없다면 오래 버티지 못할 거예요. 그래서 항상 독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죠. 제게 독자들은 가족이나 다름없어요!”

그는 ‘개미’를 출간한 이후 ‘타나토노트’(1994), ‘아버지들의 아버지’(1998), ‘신’(2004), ‘파피용’(2006), ‘카산드라의 거울’(2009), ‘제3인류’(2012), ‘고양이’(2016), ‘기억’(2018) 등 많은 작품을 쏟아냈다.
―당신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상상력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자주, 매번 하게 됩니다. 상상력의 원천은 무엇입니까.

“자신에게 일어나는 생각을 판단하지 않고 바라보는 게 상상력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 상상력이 없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생각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말이 안 된다고, 혹은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지레짐작해 밖으로 꺼내 놓지 않죠. 그런 판단이나 평가 기제를 가동시키지 않는 순간 이야기는 저절로 생겨납니다.”

그는 그러면서 한국인들에게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갇히지 말고 스스로의 내면을 과감히 드러내라고 조언했다.

“제 소설을 읽은 한국 독자들이 자신의 내면을 스스럼없이 드러낼 용기를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실 학교 교육은 우리에게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심어 놓아요. 그런 교육을 받다 보면 진정한 자기 자신을 표출하기 어렵게 되죠. 저는 독자들이 그러한 제약에서 벗어나기를, 남에게 들은 대로가 아니라 자신만이 가진 독창성을 발휘해 생각하고 행동했으면 합니다. 상상력은 우리가 진정한 자아와 접속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에요. 그런 자아와의 접속을 위해서는 남을 의식하지 말고 자신만의 독창성을 찾아 과감히 실험할 줄 알아야 해요. 그래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해 줘야 해요.”

그의 이메일 답신을 읽은 날 저녁, 골목을 지나가다가 한 무리의 고양이떼를 만났다. 혹시 저들 속에 바스테트 같은 고양이가 있을지도. 바스테트와 조우를 꿈꾸며 손을 내밀자, 그들은 금세 흩어지며 경계의 눈초리를 던진다. 무안한 손은 발을 끌고 여름으로 향하고, 세상 역시 다시 부조리로 향할 것이다. 뒤통수를 향해 고양이 한 마리가 앙칼진 소리를 던진다, 야∼웅~.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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