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희의동행] 책 속에서 삶을 찾다

황온중 2021. 6. 15.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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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정리했다.

일정한 주기로 책장을 정리하지 않으면 방안은 어수선하니 난장이 따로 없다.

언제나 그렇듯 책을 정리할 때면 갈등이 인다.

책속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건들을 추체험하고, 그들의 실패와 성공을 반면교사로 삼거나 길라잡이 삼아 삶을 운용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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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정리했다. 일정한 주기로 책장을 정리하지 않으면 방안은 어수선하니 난장이 따로 없다. 서재나 작업실이 따로 없어 방안에 책을 두다 보니 책이 방의 주인이 된 지 오래다. 예전에는 늘어나는 책을 볼 때마다 마치 부자라도 되는 듯 오목가슴이 뻐근하게 차올랐지만 이제는 주쳇덩어리처럼 여겨진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이삿짐센터 직원은 그 책을 보고 또 얼마나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던가. 언제나 그렇듯 책을 정리할 때면 갈등이 인다. 버려야 할까 말까, 가지고 있어야 할까, 말까, 책을 빼들 때마다 결정이 쉽지 않다. 그 책을 완성하기까지 작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뇌하고 불면의 밤을 보냈을까.

한 권의 책은 그러한 고통의 산물인 것이다. 그래서 책을 함부로 할 수 없다. 옛날과 달리 요즘에는 책을 반가워하는 사람도 드물다. 지금이야 즐길거리가 많아 책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여가선용에 독서만 한 것이 없었다. 책속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건들을 추체험하고, 그들의 실패와 성공을 반면교사로 삼거나 길라잡이 삼아 삶을 운용해 나갔다. 책은 그런 것이다. 예행연습을 할 수 없는 인생에 그나마 미리보기 같은 거.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지만 책 속, 인물들의 속삭임과 방황을 통해 우리는 어느 정도 사람들의 형편과 마음을 헤아리고, 나아가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책을 많이 읽었다고 고백한다.

실제로 책을 읽는 사람들의 뇌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활성화되어 있다. 책을 읽는 동안 뇌는 연상과 처리를 통해 화학작용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추리력, 판단력, 이해력이 빨라지고 높아지는 것이다. 아쉽지만 꼭 소장해야 할 책은 남겨두고 웬만한 책은 박스에 챙겨 넣는데, 한 소설책에 눈길이 멈췄다. 열 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그 책은 대학 때 은사님이 고향에 내려와 쓰신 소설들이다. 그분은 고향에서 정갈하고, 소박하게 노년의 삶을 소확행으로 이끌어가고 계신다.

이를테면 계절마다 다섯 가지 버킷리스트를 정해놓고 실천하는데, 그중 하나가 봄이 되면 쑥을 캐서 쑥국을 끓여 먹는 것이었다. 나는 노년의 은사께서 바라보는 세상이 궁금해 책장을 넘겼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정리하는 일도 잊고 소설에 빠져들었다. 절제되고 향기 있는 문장들이 그려내는 노년의 모습과 풍경이 아름답고도 처연하며 애달팠다. 그 글들이 주는 여운으로 한동안 마음이 먹먹해지기까지 했다. 앞으로 다가올 내 노년의 삶도 이와 엇비슷할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처럼 열정의 자리에 스며든 아쉬움과 소박한 소망들로 남은 생을 두량해 나갈 것이다. 사람들이 다시 책을 읽고, 그 속에서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 사람에 대한 이해, 성숙한 인격, 고아한 행위, 그것은 책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으므로. 선생님이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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