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을 제거하면 행복해질까..인간의 위험한 욕망 들여다보고 싶었다"

선명수 기자 2021. 6. 15.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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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완전한 행복'으로 돌아온 소설가 정유정
'악의 3부작' 이어 '욕망 3부작' 포문 열다

[경향신문]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만난 정유정은 신간 을 통해 “인간의 욕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parkyu@kyunghyang.com
자기애 늪에 빠진 주인공으로 인해
결국 파멸에 이르는 타인들의 삶
2만부 예약판매, 베스트셀러 진입
“2부에서는 디스토피아 다룰 듯”

정교한 서사와 세밀한 묘사로 인간 내면의 ‘악(惡)’을 들여다본 소설가 정유정(55)이 돌아왔다. 서늘하고 위태로운 ‘행복’의 이야기로. <7년의 밤> <28> <종의 기원> 등 ‘악의 3부작’으로 악의 기원을 파고든 작가는 신작 장편소설 <완전한 행복>에서 뼛속까지 나르시시스트인 인물의 완전무결한 행복을 향한 욕망을 그린다. ‘악의 3부작’에 이은 ‘욕망 3부작’의 문을 여는 소설이다.

스릴러 소설로는 5년 만의 귀환에 출간 전부터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공식 출간 전에 이미 2만부가 예약 판매되며 베스트셀러 순위에 진입했고, 그의 다른 대표작들도 다시 ‘역주행’했다.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출판사에서 만난 정유정은 “인간의 욕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주인공 신유나는 ‘완전한 행복’을 꿈꾼다. ‘불행의 가능성’을 제거하는 그의 행복관은 비극의 씨앗이 된다. 그에게 작은 불행의 가능성이 된다면 그 무엇이라도, 가족들조차도 ‘뺄셈’의 대상이다. 이렇듯 자기애의 늪에 빠진 나르시시스트의 행복을 향한 욕망이 어떻게 타인의 삶을 하나씩 무너뜨리는지, 작가는 특유의 정교한 설정과 속도감 있는 문장으로 그려보인다.

정유정은 “신유나는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진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전작들을 통해 사이코패스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했고, 이제 일상과 관계 속에 도사리는 위험한 욕망을 들여다보고 싶었어요.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우리 주변에서 주변 사람들을 착취하는 자기중심적인 인물들을 볼 수 있죠. 그런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된다면 그 주제는 행복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SNS만 봐도 ‘나는 행복해’라는 과시가 넘쳐나고, 그걸 보는 사람은 불안과 박탈감을 느끼죠. 온 세상이 강박적으로 행복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과연 행복에 집착하는 삶은 현명한가를 질문하게 됐습니다.”

소설을 읽다 보면 2019년 전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고유정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작가는 이 사건에서 ‘문학적 질문’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소설의 핵심적인 설정 한두개를 가져왔을 뿐, 나머지는 모두 허구입니다. 소설에 많이 들어올까봐 사건에 대해서도 일부러 많이 찾아보지 않았어요. 소설의 모티프가 됐다는 건 사건을 그대로 가져온 게 아니라 거기서 어떤 문학적 질문을 얻었다는 것이죠. 불행의 요소를 제거하면, 과연 우리는 완전하게 행복해질까, 그런 질문에서 출발한 소설입니다.”

소설은 신유나의 딸과 언니, 남편 등 3인의 시점이 교차하며 전개된다. 주인공 신유나는 단 한 번도 이야기의 화자로 전면에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세 사람의 입을 통해 이 강렬한 악인의 캐릭터가 완성된다. “<종의 기원>이 악인의 내면을 보여주는 게 목적이었다면, 이번 소설은 정반대의 지점에 있어요. 유나의 행위로 인해 주변의 삶이 얼마나 황폐해지고 파멸에 이르는지를 보여주는 것에 중점을 둔 소설이니, 세 사람의 내면을 보여주는 게 중요했어요. 주인공을 커튼 뒤에 숨겨놓고 주변인들이 이 사람을 정확하게 축조하는 것이 저에게도 새롭고 쉽지 않은 과제였습니다.”

집필 전 사전조사를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는 이번에도 성격장애와 아동심리에 대한 자료조사를 비롯해 프로파일러, 약리학 교수, 신문사 기자 등 전문가를 취재했다. 신유나와 남편 차은호가 처음 만나는 장소인 바이칼 호수를 그리기 위해 지난해 초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바이칼에도 다녀왔다. 영하 40도의 맹추위, 세상에서 가장 깊다는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눈보라 치는 황폐한 설원 같은 유나의 내면”을 상상했다. 주요 사건이 벌어지는 ‘반달늪’은 유나의 욕망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달이 행복이라면, 유나는 완벽한 ‘풀문’을 꿈꾸는 사람입니다. 반달늪은 이름처럼 ‘하프문’이죠. 영원히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이번 소설에서도 공간에 대한 치밀한 묘사가 돋보인다. 정유정은 “소설에서 공간도 하나의 캐릭터라고 생각한다”며 “공간 자체가 뿜어내는 아우라와 이야기가 있어야 인물의 캐릭터도 세울 수 있다”고 했다.

소설 속 유나는 행복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이 ‘노력’이 엄청난 파멸을 불러온다. “누군가의 행복 추구가 타인의 불행과 만나는 지점을 들여다보고 싶었다”는 정 작가에게 ‘행복의 의미’를 물었다. “행복이 뭐라고 정의할 순 없지만, 불행과 결핍, 불안도 어쩔 수 없는 삶의 요소임을 인정해야 행복의 의미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듯,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면 행복이 뭔지 모르는 거죠.”

‘욕망 3부작’의 두 번째 소설로 내놓을 차기작은 디스토피아를 그린 소설이 될 듯하다. “일단 ‘욕망 3부작’이란 한 사이클을 끝내는 것이 목표예요. 멀리 있는 비전보다 일단 눈앞에 목표를 세우면 그 모퉁이를 돌기 위해 달리는 편입니다(웃음). 물론 이런 단계별 목표 말고 멀리 있는 목표도 있죠. 독자들에게 재미있고 의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으로 불리는 것, 그게 가장 큰 목표입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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