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 무라카미 하루키 [이규탁의 내 인생의 책 ③]
[경향신문]
<노르웨이의 숲>과 같은 소설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수필과 에세이 쓰기에도 강점을 보이는 작가다. 그런데 그의 작품 목록에서 유달리 이채로운 작품이 하나 있다. 바로 1995년 일본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렸던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사건’ 피해자들을 직접 인터뷰하여 써 내려간 기록인 <언더그라운드>다.
옴진리교 사람들은 일부러 수도 도쿄 내 관공서가 밀집된 지역에서 테러를 일으켜 정부를 일시적으로 마비시키고 그들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하철은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이고, 따라서 출근 시간 이들이 행한 테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회사에 일하러 가던 평범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그들의 주변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안겼을 뿐이다.
비교적 담담하게 자신이 겪었던 테러 당시 상황과 그 이후의 후유증 및 테러범들에 대한 감정을 이야기하는 피해자들 인터뷰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임신 중에 테러로 남편을 잃고 그 직후 딸을 출산한 당시 30대 초반에 불과했던 한 여성의 이야기다. 그날 아침 따라 유난히 “회사에 정말 가기 싫다”던 남편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이 기분이 어떠했을까,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우리에게도 이런 사고들이 있었다. 지하철에서 불특정 다수를 향해 일어난 범죄인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인재(人災)였던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사고, 그리고 세월호까지. <언더그라운드>를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이런 무차별적 테러나 큰 사고로 희생되는 사람들은 나와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며,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한 채, 왜 죽어가는지도 모른 채 세상을 등지게 된다는 것, 그리고 나 혹은 내 가족이 희생자가 되지 않은 것은 단지 운이 좋아서였을 뿐이라는 평범한 진리다. 하루하루의 삶에 감사하며 행복을 찾고자 노력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평소 잘하는 것이 내가 받은 이 커다란 행운에 보답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이규탁 | 한국조지메이슨대학교 문화연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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