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입법청원 10만명 넘어선 차별금지법, 더 늦출 이유 없다
[경향신문]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국회 청원이 14일 동의자 10만명을 넘겼다. 지난달 24일 청원이 시작된 지 22일 만이다. 국민동의청원은 ‘30일 내에 10만명 동의’를 얻은 청원을 국회에서 심사하는 제도다. 이 청원은 소관 상임위인 법사위에 회부된다. 15년 전 국가인권위 권고 후 7차례 정부·의원 입법이 발의된 것과 달리 청원이 성사된 것은 처음이다. 8일 앞당겨 청원 조건이 채워진 열망을 반영해 국회 논의도 속도가 붙길 기대한다.
국가인권위가 지난해 국회에 제정 촉구한 ‘평등법’ 시안에는 성별·나이·장애·국적·종교·학력·성적지향·외모·고용형태 등 21가지 사유로, 직간접적 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이번 청원은 석달 전 동아제약에서 성차별 면접을 받은 여성이 제안했다. 최초 청원자 99인에 심종혁 서강대총장 신부가 참여했고, 종교·인권·사회단체들의 지지가 이어졌다. 지난해 6월 인권위 여론조사에선 시민 88.5%가 차별금지 법제화에 찬성했다. 찬성 의견은 1년 전보다 15%포인트나 높아졌다. 유엔사회권위원회가 한국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긴급 권고한 게 벌써 4년 전이다. 일부 기독교단체들이 ‘성적지향이 정상가족을 해체한다’며 의원들을 압박해 17~19대 국회에서 6차례나 입법이 좌절된 흑역사를 끝낼 때가 됐다.
나흘 전 주한 외국대사들이 인권위에 밝힌 차별금지법 체험과 평가도 새길 만하다. 1993년 인권법을 만든 뉴질랜드 대사는 “소수자·소수민족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달라졌고, 법적 구제수단도 생겼다”고 했고, 핀란드 대사는 “모두가 차별없이 참여하자 경제도 발전했다”고 짚었다. 2006년 종교단체·산업계 반대로 평등법 제정에 18개월이나 걸렸다는 영국에서도 “반대론자들이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차별금지 제도화가 인권과 국가 발전을 함께 가져왔다고 실증적으로 전한 것이다.
누구나 차별을 받으면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차별·배제·혐오에 눈물짓고, 삶과 생업이 짓밟힌 채 홀로 벼랑으로 내몰리는 일이 더 이상은 없어야 한다. 국회는 인간의 존엄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차별금지법을 서둘러 제정해야 한다. 종교단체 압박에 번번이 물러섰던 거대여당은 높아지는 입법 여론에 적극 부응해야 한다. ‘변화’를 약속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차별과 혐오를 인권 문제로 접근하는 대승적 자세와 진일보한 리더십을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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