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장벽 디엠제트에 평화 기원 담아 '아트호텔' 열었어요"

박수혁 2021. 6. 15.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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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전시기획자 홍경한 예술감독

국내 첫 아트호텔인 ‘리 메이커’를 총괄 기획한 홍경한 예술감독. 사진 강원문화재단 제공

“이념의 장벽에 가로막힌 채 여전히 대치 중인 한반도의 현실과 화합·평화에 대한 바람을 ‘아트호텔’에 버무렸습니다.”

지난달 20일 동해안 최북단 마을인 강원도 고성군 명파리에 독특한 호텔이 임시 개관했다. ‘리 메이커’라는 이름이 붙은 이 호텔은 국내 첫 아트호텔이자, 영국 작가 뱅크시가 이스라엘 베들레헴에 세운 ‘벽에 가로막힌 호텔’(The Walled Off Hotel)에 이은 세계 두 번째 접경지역 아트호텔이다. 뱅크시는 2017년 팔레스타인 분리장벽에 분쟁을 넘어 인류 평화를 기원하는 호텔을 만들어 주목을 받았다.

아트호텔을 총괄 기획한 홍경한 예술감독을 지난 7일 전화로 만났다.

동쪽 최북단 강원도 고성군 명파리
금강산관광 중단 이후 방치된 건물
작가 19명 참여 ‘작은 미술관’ 변신
‘아트룸 객실’ 등 전체 100여점 꾸며
‘아트호텔 리 메이커’ 6월말 개장 예정

“세계적 역사·생태관광 ‘명소’ 기대”

오는 6월말 정식 개장 예정인 강원도 고성 명파리 ‘아트호텔 리 메이커’의 외관. 사진 강원문화재단 제공
오묘초 작가가 꾸민 아트호텔 ‘리 메이커’의 아트룸 객실 내부. 강원문화재단 제공

월간 <미술세계> 편집장 등을 지낸 홍 감독은 미술평론가이자 전시기획자로 활동하며 2018년 평창겨울올림픽 기념 ‘강원국제비엔날레’의 예술총감독을 맡기도 했다.

홍 감독은 “뉴욕의 에이스 호텔 등 세계 10대 아트호텔과 견줘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예술을 빌려 부분적으로 공간을 장식한 호텔은 있지만 공적 예산으로, 온전히 예술가들이 만든 호텔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의 현실과 디엠제트(DMZ)라는 특수성 덕분에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실제 아트호텔은 2층짜리 2개의 건축물에 모두 8개의 아트룸(객실)과 부대시설을 갖췄다. 관광객이 숙박도 가능한 아트룸은 그 자체로 평화·생태·미래 등을 주제로 한 하나의 작품이다. 호텔 자체가 하나의 작은 미술관인 셈이다. 아트룸으로 꾸민 객실뿐 아니라 로비와 복도 등의 공용 공간에도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들이 가득 차 있다.

홍 감독은 “호텔 전체를 채우고 있는 작품만 100여 점에 이르고, 가격으로 환산하면 김종량 작가의 10억원 상당 나전 작품 등 40억~5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귀띔했다. 모두 15억원이 투입된 이 호텔은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4월까지 오묘초 작가 등 19명의 작가가 참여해 7개월에 걸쳐 완성했다.

‘리 메이커’는 예술을 통해 접경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평화적 이미지로 바꿔 새로운 문화예술관광자원으로 활용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강원도, 경기도, 인천광역시가 추진 중인 ‘한반도 생태평화벨트 광역연계사업’의 하나다.

사업 초기 홍 감독은 명파리를 ‘예술로 지속가능한 마을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했다. 일본의 낙후한 작은 섬을 세계적인 문화예술 관광지로 탈바꿈시킨 ‘나오시마 아트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받았다. 명파리 일대도 2008년 7월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면서 심각한 침체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간인 소유인 빈집을 사들이는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아 인근에 방치된 옛 명파디엠제트 비치하우스로 눈길을 돌렸다. 이곳은 원래 동네 주민들이 해수욕장이 열리는 여름 한 철 횟집을 하거나 통닭집, 저가의 민박시설로 이용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무도 돌보지 않으면서 악취가 나고 녹슬고 곰팡이로 뒤덮인 폐가나 다름없는 시설로 방치된 상태였다.

왼쪽부터 홍경한 예술감독, 이린우 큐레이터, 장민현 큐레이터. 사진 강원문화재단 제공

홍 감독은 “이 호텔 북쪽으로는 민가가 없다. 아직도 명파해변에는 철조망이 있어 출입이 금지되고, 사진도 찍지 못할 만큼 엄중한 분위기다. 자유로운 듯하면서도 긴장감이 감도는 독특한 곳이다. 장소적, 지리적 상황을 고려할 때 평화·생태·미래라는 주제에 딱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사업에 참여한 이린우 큐레이터도 “역사적 정치적으로 비극이 녹아 있지만 실제 풍광은 너무나 아름다운, 역설적인 모순이 존재하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홍 감독은 아트호텔을 만들면서 예술과 일상이 자연스럽게 만나 영구성을 가지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그는 “그동안 정부와 여러 지자체가 디엠제트와 관련한 사업을 추진했지만 대부분 일회성 이벤트로 끝났다. 예술이 개입했지만 단발적이었고, 행사가 끝나면 잊히는 축제의 성격이 강했다”고 지적했다. 장민현 큐레이터는 “불특정 다수가 오가는 아트호텔은 지속성 유지에는 최적의 장소다. 호텔에 설치된 작품은 언제든 누구나 향유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영구히 남아 당대를 복기하고 예술의 가치가 연속될 수 있도록 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아트호텔은 명파리 민통선 검문소 남쪽 300m 지점에 있어 통일전망대와 달리 출입신청 등은 필요 없다. 지난 5월 말로 시범운영 기간이 끝나 잠시 문을 닫은 상태이며, 운영권을 넘겨받은 고성군이 위탁사업자 선정 등의 절차를 거쳐 6월 말께 정식 개장할 계획이다.

홍 감독은 “디엠제트는 전 세계 마지막 금단의 땅이자, 비극과 희망이 교차하는 장소다. 이 호텔은 단순한 숙박시설이 아니라 한국전쟁 이후 70년의 역사와 단단한 이념의 장벽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과 마주할 수 있는 혼돈의 실험실이다. 향후 접경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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