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캐 부자' 개그맨들 유튜브서 코미디의 새 장 열다

정진수 2021. 6. 15. 20: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개그콘서트 폐지 1년, 위기가 기회로
유튜브서 개설한 '빵송국' '피식대학'
일상서 볼 수 있는 웃음 콘셉트 삼아
성형 수준 카메라 필터 '매드몬스터'
느끼한 카페사장 '최준' 오빠 등 등장
지켜보는 유튜버들 '댓글놀이' 공감대
'부캐'의 현실화 과정으로 또다른 재미
방송무대선 불가능했던 시도 잇따르며
개그 새로운 세계관 구축하는 시대로
2020년 6월, KBS가 간판 개그프로그램인 ‘개그 콘서트(개콘)’ 폐지를 선언했다. 한때는 일주일을 마감하는 일요일 저녁 온가족이 모여보는 ‘국민 개그 프로그램’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웃기지 못하는 개그프로그램’이란 오명을 쓰고 사라진 것이다.

개콘 폐지는 ‘개그맨 공채 시스템’ 폐지와도 맞닿아 있다. 앞서 201년 SBS가 ‘웃음을 찾는 사람들’을 폐지하면서 공채 개그맨이 설 자리를 잃기도 했다.

‘개그맨 지망생 희망의 사다리가 끊긴다’, ‘시청료를 받는 공영방송의 무책임한 처사다’ 등 다양한 비판에도 무대 개그는 사라졌다.

그후 1년, 우려와 달리 유튜브로 자리를 옮긴 신인 개그맨들은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모든 개그맨의 성공은 아니지만, 새로운 플랫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개콘 없이 우뚝 선 ‘빵송국’, ‘피식대학’

“나는 KBS 29기 공채개그맨이다. 내 청춘을 받친 개그콘서트가 폐지됐다. 사람들은 유튜브를 해보라지만 난 그들을 좇긴 싫다.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 (그러나) 그동안 못했던 공부, 못하겠습니다. 해외여행, 못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유튜브를 합니다.”

개콘이 사라진 것이 이창호와 곽범에게는 전화위복이 됐다. KBS 공채 개그맨인 이들은 개그콘서트가 폐지되자 유튜브 ‘빵송국’을 개국하고 ‘우리 이제 뭐해먹고 살지?’로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MBC의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를 패러디해서 ‘사람이 쪼다’라는 콘텐츠로 ‘병맛’ 캐릭터를 선보이고 ‘3분 밥상’, ‘마케팅3부’, ‘여친시점’ 등으로 다양한 시도를 했다. ‘사람이 쪼다’ 때만 해도 중국말로 삼합회 조직원 연기 중 ‘현타(현실자각 타임)’가 와서 어색해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는 게 웃음 포인트였는데 어느 순간 ‘부캐(부캐릭터)’에 완벽 몰입하는 뻔뻔함이 매력이 됐다. 이후 시도한 ‘무조건 나오는 장면’과 2인조 아이돌 듀오 매드몬스터의 ‘매드TV’는 빵송국의 흥행 공신이 됐다.

무조건 나오는 장면은 우리나라 드라마와 영화에서 나오는 각 직업군마다 특징을 집어내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매드몬스터의 경우 ‘여친시점’에서 이미 시도했다가 호응을 얻었던 성형 수준의 ‘카메라 필터’로 화사하고 예쁜 아이돌 가수를 만들어내며 부캐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이렇게 무명의 개그맨은 ‘부캐 부자’로 유튜브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가 됐다. ‘사이버 렉카’라고 불리는 수많은 자극적인 소재가 넘치는 유튜브에서 ‘전통적인 개그 시도가 통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날려버린 것이다.
◆본캐보다 사랑받는 현실 고증적 ‘부캐’
‘피식대학’ 역시 김민수와 이용주, 정재형 등 KBS와 SBS 공채 출신 개그맨들이 설립했다. ‘한사랑산악회’, ‘B대면 데이트’, ‘05학번 이즈백’, ‘직업별 성대모사’ 등 다양한 코너가 인기를 얻으면서 구독자수 125만명을 넘었다. 현실에서 만날 법한 소개팅남 최준과 재벌3세인 ‘김갑생할머니김’의 이호창 전략본부장, 무명 래퍼 ‘임플란티드 키드’, 이택조 한사랑산악회 부회장 등 세심한 현실 고증적인 캐릭터 탄생이 인기로 이어졌다. 각각의 코너에서 활약한 부캐들은 한 코너에 머물지 않고 각 코너에 중복 출연하는 것도 웃음을 자아낸다. 사랑을 두고 싸우는 최준과 이호창 본부장의 3자대면 장면도 많은 호응을 얻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시청자들이 선호하는 개그 형식이 계속 바뀌고 있다. 콩트 형식의 코미디에서, ‘일요일 일요일 밤에’식의 버라이어티쇼로 바뀌었다가 이후 개그콘서트라는 무대 개그로 이어졌다. 지금은 관찰카메라 방식의 예능이 주를 이루게 돼 개그맨의 설 자리와 방식이 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변화를 설명했다. 정 평론가는 “이전에는 빵빵 터지는 큰 웃음을 추구했기 때문에 웃음이 약하면 인위적으로 웃음 소리를 삽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공감의 웃음이 많다. 현실의 리얼함에 공감하면서 웃음이 나고, 그런 가운데 큰 웃음도 가끔 난다. 유튜브의 피식대학과 빵송국에서 추구하는 웃음이 이런 것”이라고 말했다.

개콘이 폐지될 당시 KBS는 자체 유튜브 채널 ‘뻔타스틱’을 통해 코미디 명맥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올라온 동영상은 고작 9개. 그나마도 11개월 전 올라온 동영상이 마지막이다. 또 다른 ‘멍석’을 깔았지만 플랫폼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기존 지상파방송과 같은 내용을 유튜브로 옮기다 보니 새로운 시도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평가다.

반면 빵송국과 피식대학은 야외 현장감을 살려서 다양한 부캐를 만들고 이를 현실화하고, 코너와 채널을 뛰어넘어 이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등 풍부한 상상력으로 차별화했다.
◆부캐로 광고, 라디오, 예능까지

‘부캐’의 현실화 과정은 또 다른 재미다. 최근 이창호와 곽범은 매드몬스터 팬들에게 사과의 동영상을 올렸다. 매드몬스터와 매드엔터테인먼트, 그리고 그들의 60억 팬에 대한 사과문이다. 매드몬스터를 사칭한 ‘나이든 무명 개그맨’이 자신들이고, 이를 선처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사과문 동영상 댓글에는 “제발 선을 지켜주세요”, “어차피 시간 지나면 슬금슬금 나오겠지”, “맨몬 오빠들 무서운지 이제 알고 올리는 거 보소”, “선처하면 안 된다” 등으로 격앙된 반응이었다.

이런 ‘자아분열적’ 영상과 댓글은 하나의 놀이다. 상황을 잘 모르고 매드몬스터를 접한 사람들이 댓글로 “얘네 뭐냐”고 혼란스러워하는 반면 이에 참여한 사람들은 “나이든 두 개그맨에 속지 말라”, “내부에서 세포 분열하고 있다”, “나도 이제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등 알쏭달쏭한 댓글로 혼란을 부추기며 이를 즐긴다. 설명하자면, 매드몬스터에게 이창호와 곽범은 홍길동 같은 존재다. 형을 형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이렇게 어느 순간 ‘부캐’가 실존 캐릭터처럼 대우받으면서 댓글은 갈수록 진지해졌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신년사를 패러디하며 대박이 터진 피식대학의 ‘이호창 김갑생할머니김 미래전략본부장’도 마찬가지다. 이 신년사는 ‘원작’인 정 부회장의 동영상 조회수를 뛰어넘자 “정용진을 이겼다”, “우리 본부장님 정말 잘생겨 보인다”, “재벌 3세 아우라” 등 응원 댓글이 이어졌다. 매드몬스터와 최준, 임플란티드 키드(이창호와 곽범, 김해준, 김민수가 아니다) 등은 각종 지상파방송과 광고에 섭외되며 유명해지고 있다. 방탄소년단(BTS)과 피식대학이 광고 업계를 양분한다는 우스개까지 나온다.
매드몬스터는 아예 음악방송까지 출연했다. 이들이 출연한 라디오 공개 방송에서 DJ는 두꺼운 팬층을 확보한 이들을 성공한 아이돌로서 철저히 대접해준다.
정덕현 평론가는 “피식대학과 개그콘서트가 뭐가 다르냐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두 개는 완전히 다르다. 피식대학을 프로그램 안의 코너라는 기존의 관점으로 보면 안 된다. 자기들만의 캐릭터를 가지는 피식대학에서 각각의 코너들이 성공하면서 세계관을 확장하고 있다”며 “전통적인 미디어에서는 불가능했을 수 있는 시도들이 유튜브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제 개그맨에 대한 기사도, 그들이 구축한 세계관과 유니버스에 빠져들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