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의학혁명 촉진하는 腸세포 모델

2021. 6. 15.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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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영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손미영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우리나라에서 의약품, 식품, 화장품 연구·개발을 위한 실험에 지난해에만 371만여 마리의 동물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실험동물의 사용을 줄이거나 대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오가노이드(organoid)가 주목 받고 있다.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이용해서 인간의 장기를 이루는 다양한 세포들로 분화시킨 세포 모델이다. 오가노이드는 기존의 '평평한' 2차원 세포 모델과는 달리 인간 장기처럼 3차원으로 배양되고, 장기가 가지고 있는 구조까지 유사하게 재현하고 있다. 이러한 오가노이드는 신약개발 과정에 이용될 수 있다. 실제 환자에게 적용되기 전 전임상 단계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런 연구에 실험동물을 대신해서 오가노이드를 약물반응 시험 모델로 사용함으로써, 인체 기반의 연구가 가능하고 임상 예측률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연구 편의성을 높여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가노이드 분야에서 가장 먼저 확립된 오가노이드는 장(腸) 오가노이드이다. 2009년 네덜란드 휘브레흐트대 한스 클레버스 교수가 인간 장 조직에서 분리한 장 줄기세포를 이용해 오가노이드를 확립하였다. 2011년에는 미국 신시내티아동병원 제임스 웰스 교수팀이 신체를 이루는 모든 세포로 분화가 가능한 인간 전분화능줄기세포(배아줄기세포와 역분화줄기세포)로부터 장 오가노이드를 만들어 냈다. 가장 먼저 기술 개발이 이루어진 장 오가노이드는 기초 연구, 응용 연구 성과를 주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오가노이드 전체 시장에서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장 오가노이드를 연구하는 연구팀들이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는 이미 2018년에 인간 전분화능줄기세포로부터 만든 장 오가노이드를 성체(成體) 장과 유사한 수준으로 기능성을 가진 장 오가노이드를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 성체와 유사한 장 오가노이드를 다양한 분야에 활용하는 연구들을 수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신약은 환자들의 복용 편리성을 고려하여 경구 투여 형태로 개발되고 있기 때문에 장에서의 약물 흡수도 평가가 매우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이런 평가에 인간과는 종(種)간 차이가 있는 동물 모델이나 정상 장세포가 아닌 암세포주 모델을 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장 오가노이드 기술을 기반으로 인간 소장 조직과 유사한 소장 상피 모델을 개발하였고, 약물 반응을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사이언스 어드밴스(Science Advances) 저널에 최근 발표하였다. 그 외에도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마이크로바이옴, 그중에서도 장내 미생물 연구를 위한 새로운 연구 모델로 장 오가노이드를 활용하는 기술들도 개발하고 있다. 실제로 신생아로부터 분리한 유산균이 장 오가노이드 모델에 생착시키자 오가노이드가 더 빨리 성인의 장처럼 성숙하는 것이 관찰되기도 했다. 또한, 기능성 인간 장 오가노이드를 염증성 장 질환과 같은 손상된 장 부위에 이식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이식용 치료제로 개발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장 오가노이드 기술의 실용화를 위해서 환자 맞춤형 오가노이드 제작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오가노이드 전문 기업인 오가노이드사이언스가 자가유래 세포치료제 개발을 위한 임상 1상을 2022년에 계획하고 있다.

2020년부터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19를 유발하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연구하기 위해서 전세계 과학자들의 관심과 역량이 집중되고 있다. 바이러스가 가지는 '숙주 특이성'으로 인해 실험동물로 널리 사용하는 생쥐 모델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다. 현재 영장류, 페럿(족제비), 햄스터를 이용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오가노이드 분야에서도 주요 표적인 폐를 포함해 장, 뇌, 신장, 간 오가노이드를 이용해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 기전과 치료제 개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인간 장기를 모방하여 제작한 오가노이드가 최선의 대체 모델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오가노이드 기술은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위한 전임상 시험모델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이제는 더 이상 미래유망 기술이 아닌 바이오산업에 실제로 활용되고 있는 기술이다.

현재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는 3차원 장 오가노이드와 2차원 장 상피세포 모델을 비롯한 다양한 인간 장 모델을 구축해 목적에 가장 적합한 모델을 이용한 연구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최고의 품질을 유지하면서도 경제성 있는 오가노이드 및 장세포 생산, 동물 유래 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화학적으로 규명된 오가노이드 배양, 그리고 대량 생산 등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다양한 분야에서의 실용화를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인공지능, 빅데이터와 같은 첨단 기술과의 접목을 통해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업그레이드 된 오가노이드 기술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기술 발전에는 과학기술의 핵심가치인 '혁신, 개방, 공유'가 함께 자리해야 하며, 그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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