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현의 저널리즘책무실] 왜, 이준석을 내려놨나

이봉현 2021. 6. 15.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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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책무실]

최근 이준석의 국민의 힘 대표 당선이 갖는 의미를 분석한 한겨레 티브이 <논썰> 프로그램 화면

이봉현 ㅣ 저널리즘책무실장 (언론학 박사)

30대 당대표 이준석은 한국 정치에 돌풍을 일으켰다. ‘이준석 현상’에 주목하는 언론은 그의 언행에 이전과 다른 무게를 실을 것이다.

이준석이 국민의힘 대표 선거에서 존재감을 키워가던 지난달, <한겨레>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한겨레 티브이>는 5월 하순 개편을 앞둔 ‘공덕포차’ 시즌2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김성회 열린민주당 대변인과 함께 이준석을 고정 출연자로 섭외했고, 5월 초 짤막한 예고편까지 찍었다. 하지만 이준석 섭외는 결국 없던 일이 됐다.

그의 젠더 인식과 발언이 한겨레의 성평등 보도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한겨레는 20대 남성의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여성과 페미니즘 탓으로 돌리는 이른바 ‘이대남’ 정치의 폐해를 4·7 재보궐선거 이후 줄곧 지적해왔다. 그런 정치의 복판에 서 있는 인물이 이준석이었다.

이준석의 고정 출연 소식에 일부 구성원이 편집국 젠더데스크에게 우려를 표시했다. 이를 취합해 젠더데스크는 이준석이 페미니즘에 대한 20대 남성의 ‘백래시’를 정치적 자산으로 동원하는 정치인으로, 한겨레의 성평등 기조에 맞지 않는 인물이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편집국장에게 전달했다.

프로그램 제작진은 일부 구성원의 이런 문제의식에 동의하지만, 이준석 제외는 과도하다고 반론을 폈다. 디지털·영상국의 한 기자는 노동조합이 펴낸 <진보언론>에 “제작진은 사건과 현상 앞에서 저널리즘이 취할 태도는 기록, 관찰, 비평이지 회피, 외면, 배척이 아니라 생각했다”며 “젠더의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겠다고 선언한 한겨레라면 이준석의 문제를 구조의 문제로 넓혀, 훨씬 복잡하게, 더 치열하게 비판하고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저널리즘책무위원회도 회의를 열어 이 사안을 논의했다. 저널리즘 학자인 외부 책무위원 3인의 의견은 엇갈렸다. “인물이나 주장이 ‘합리적 논쟁의 영역’에 있는지 ‘일탈의 영역’에 속하는지를 살핀 뒤 ‘일탈의 영역’에 있으면 배제해야 한다. (…) 이준석의 발언을 보면 사실에 근거해서 다른 가치관을 주장하는 선을 살짝 넘어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거나 “한겨레는 젠더 문제에 대해 진보적인 입장을 계속 취해왔고, 여러 가치 중에서 중요한 가치로 삼아왔다. (…) 한겨레의 기본적인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반면 “공론장에 올라오는 목소리를 너무 협소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논의할 수 있는 관점이 여러 층위가 있을 텐데 (…) 제작 자율성이란 면에서 자꾸 금기를 만들어가는 게 바른 방향일까 의문이다”라는 의견도 있었다.

한겨레 편집인은 5월24일 사내외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준석을 하차시키기로 결정했다. 이후 제작진은 당대표 경선차 대구에 머무는 이준석을 찾아가 결정 내용과 그 배경을 알리고 양해를 구했다. 이번 결정은 신문의 고정 필진에 해당하는 주요 프로그램의 고정 패널에서 하차하도록 한 것이지, 정치인 이준석에 대한 일상적인 보도마저 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한 책무위원 말대로 “간판 프로그램에 중요한 스피커로 출연시켜 발언 기회를 주는 것은 굉장히 적극적인 행위이다. 그런 적극적인 행위를 할 때 한겨레 가치에 부합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의미이다. 실제 한겨레는 지난 3일 이준석을 당대표 주자 가운데 첫번째로 인터뷰해 기사를 내보내는 등 이준석을 비중에 맞게 다루었다.

‘이준석 현상’은 이준석 개인을 뛰어넘는다. 그래서 이번 결정이 지나치게 방어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토론을 붙여 출연자들끼리 반박하도록 하는 게 나았겠다는 의견이 여전히 만만찮다. 전원 남성에 여야 균형도 안 맞는 패널 구성에서부터 단추가 어긋났을 수도 있다. 다만, 사내 여러 제도가 가동돼 토론을 거쳐 결정을 내린 것은 위안 삼을 만하다. 언론의 윤리적 결정이 규범을 ‘대입’하기보다 논의해가는 ‘과정’이라면, 이번 진통이 한겨레가 더 나은 성평등 보도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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