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무대공포증'..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유는?

2021. 6. 15.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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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욱 YD Performance 연구소장
30대 중반인 홍지은씨는 긴 생머리와 뽀얀 얼굴, 다정다감한 성격으로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고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여러 사람들 앞에서 주목을 받으면 얼굴이 빨개진다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친구들 사이에서 이름보다는 '홍당무'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그녀였다. 때로는 얼굴이 붉어지는 모습은 여성스러움으로 해석되는 장점도 있었지만 사회생활에서는 단점이 많았다. 더구나 회사에서 회의를 하거나 남들 앞에서 발표를 할 일이 생길 때마다 얼굴이 붉어지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피부과에 가서 레이저 시술도 해보고, 발표 당일에는 화장도 진하게 해봤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40대 후반의 직장인 김영철 씨는 동료들에 비해 빠르게 승진하고 인정받고 있는, 이른바 잘나가는 회사원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남모를 고민이 있었다. 긴장하거나 주목을 받으면 손을 심하게 떠는 것이다. 가끔 발표를 하거나 회의를 할 때 마이크나 볼펜으로 시선을 돌리거나, 중요한 사람을 만날 때 떨리는 손을 감추기 위해 물 컵을 잡는 등 남모를 노력을 계속했다. 최근 부장으로 승진한 이후에는 중요한 서류에 사인하는 것조차도 어려워 최대한 혼자 있을 때 처리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들은 각자 증상과 이유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떨리는 '신체적인 증상'으로 고민하고 있다. 실제로 발표불안으로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이 "떨리는 신체반응을 없애거나 줄일 수는 없을까?" "도대체 왜 긴장하면 손, 발이 떨리고, 식은 땀이나는 걸까?"하는 고민들을 하고 있고, 자신의 떨리는 증상만 없어진다면, 발표도 문제 없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주목받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일어나는 긴장, 떨림반응이 부끄럽거나 수치스러운 반응이라 생각하며, 티를 내지 않거나 숨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하지만 떨지 않으려고 노력할수록 더욱 긴장하고 떨리는 자신의 모습에 크게 실망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발표나 회의에서 떨리는 신체반응을 줄이고 싶다면 우리의 뇌와 신체에서 일어나는 반응에 대해 좀 더 과학적으로 이해해야한다. 우선 긴장되고 떨리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일상생활에서 회의나, 발표의 상황이 여러분에게 긴장될 수 있겠지만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우선 낯선 골목길에서 무서운 괴한이 여러분에게 칼을 겨누며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막다른 길이고, 괴한은 점점 다가온다. 그때 우리의 몸에서는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 칼에 찔려 다치거나 생명을 위협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두려울 것이다.

동시에 식은 땀이 나고, 가슴이 쿵쾅거리고, 다리도 후들거려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것이다. 심지어 머리카락을 포함한 온몸의 털이 곤두설지도 모른다.

이렇게 우리의 생존이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몸이 떨리고 긴장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러한 위협 상황에서 신체의 긴장 반응을 조금 더 딱딱한 의학용어로 표현하면 자율신경계 중 긴장과 스트레스에 자극되는 교감 신경계(sympathetic system)의 반응이 활성화된 것이다. 다시말해 우리의 뇌가 위협으로 인식하는 순간, 뇌에서는 아드레날린 호르몬을 즉시 분비시키도록 하여 교감 신경계가 활성화된 상태가 된다.

긴장과 스트레스를 받으면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면서 신체적으로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우리의 신체가 생존을 위해 싸우거나 도망가는 선택을 하기위해 우리 몸을 변화시켜야하기 때문이다. 이를 미국의 생리학자 월터 캐넌(Walter B. Cannon)의 투쟁-도피(fight-flight)라고 한다. 자동차가 고속주행을 위해 기어를 변속하는 것처럼 자율신경계의 변화는 인간이나 동물이 생존을 위한 최적의 상태로 바꾸기 위한 과정으로 생각하면 된다. 위협을 느껴 싸우거나 도망을 가야 하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우리의 신체는 선택과 집중의 과정을 통해 한정적인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배분해야한다. 즉, 적을 만나 싸우거나 도망가기 위해서 팔과 다리 등의 대 근육에 혈류와 영양분을 빠르게 공급한다.

잘 이해되지 않는다면 격투기 선수들의 팔 근육과 육상 선수들의 허벅지 근육을 떠올려보자. 팔이나 다리 등의 큰 근육을 잘 사용해야 도망치거나 싸울 수 있다.

그리고 대근육으로 혈류를 잘 공급하기 위해서 심장은 열심히 펌프질해야 한다.

혈류를 공급해야 하는 사명을 가진 심장이 빨리 뛰는 덕분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가쁜 증상을 경험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짧아지는 것은 우리 몸에 이상이 생긴 게 아니라 그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신체가 적응하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리고 위협의 순간에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 뇌에도 혈류가 많이 공급되어야 한다.

단시간에 급격히 공급되는 혈류로 인해 일시적으로 어지럽거나 얼굴이 붉어지는 증상이 생길 수 있는데, 위협이 아니고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소화기관은 어떨까? 적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는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조금 전 먹은 음식을 소화시킬 여유는 사치에 가까워 보인다.

속이 메스껍거나 심하면 구토, 설사 등으로 음식물을 비워내서 몸이 가벼워져야 도망치거나 싸우기 위해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발표 직전에 화장실이 붐비는 이유다.

이런 논리로 보면 침샘도 일시적으로 휴업 상태다. 소화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침샘도 분비될 필요가 없다. 발표를 할 때 입이 바싹 마르고 물을 자주 찾게 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긴장했을 때 등에 식은땀이 나거나 가수 싸이처럼 겨드랑이에 땀이 흘러 당황스러운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온몸에 땀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땀은 체온을 유지시키는 역할도 있지만 진화론적으로 보면 온몸을 미끄럽게 만들어 상대에게 잡혔을 때 쉽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뱀의 비늘이 미끄러운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그럼 발표의 상황은 생존과 상관이 없는데도 왜 자율신경계의 반응이 일어날까? 신기하게도 실제로 위험하지 않은 무대 위에서 발표 불안을 느끼는 사람과 강도를 만난 사람의 뇌와 신체에서는 매우 유사한 일이 벌어진다.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평가나 결과를 매우 예측하기 어렵다.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불안감은 증가하고, 위협에 노출되는 것과 비슷한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타인의 평가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하고 걱정하는 사람일수록 이러한 떨림을 더 경험한다.

마찬가지로 다 끝난 후 무대로 내려오며 '휴, 살았다'하며 안도감을 느끼고 긴장이 풀리는 이유는 안전하다는 확신을 통해 부교감 신경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이는 오래 전부터 인류 생존을 위해 설계된 자연스러운 반응일 뿐이다. 오히려 떨지 않으려 인위적으로 노력할수록 스트레스로 작용해 교감 신경을 더욱 활활 타게 하는 장작으로 이용될 뿐이다. 이처럼 누구나 긴장되는 상황에서 떨리는 신체적 반응이 생긴다.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호흡이 일시적으로 가빠질 수 있다. 나만 겪는 이상한 반응이라 생각하면 더욱 불안해진다. 하지만 누구나 겪는 자연스럽고 일시적인 반응이라는 걸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곧 우리를 구원해줄 부교감 신경이 활성화되어서 우리 몸은 안정을 찾을 테니까 말이다.

자, 여러분은 이제 떨리는 순간 뇌와 신체에서 일어나는 반응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제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진땀이 난다고 당황하지 말고,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자연스럽고 일시적인 반응임을 상기하자. 이런 신체적 증상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중요할 뿐이다. 생각해보면 첫 키스의 순간의 떨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발표의 떨림은 불쾌하고 첫 키스의 설렘은 짜릿하다고 우리가 해석할 뿐이다. 그래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무대에 오르기 전의 떨림을 멋진 수행을 위한 자동차의 시동이라고 생각해보자. 아주 비싸고 멋진 스포츠카는 시동을 걸면 엔진 소리가 크고 진동도 세다. 여러분의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 떨리는 손발이 뻥 뚫린 고속도로를 곧 달릴 스포츠카의 가속을 위한 시동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윤동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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