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조 "사회적 합의 이행하라".. 4천여명 상경투쟁 '갈등 격화'

신다은 2021. 6. 1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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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 저임금..위기의 택배노동자]택배사, "분류작업 책임지겠다" 1월 사회적 합의 깨면서 파행
정부 여당, 15일 오후 사회적 합의 기구 회의 열고 중재안 제시
전문가 "정부가 법 제도 개선 등으로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1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전국택배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이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상경 집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 사회적 합의 기구를 통해 택배기사들의 과로사를 일으킨 주범으로 꼽히는 택배 분류작업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한 택배사들이 합의 이행을 미루거나 합의를 부정하는 행보를 보이면서 택배 파업을 둘러싼 갈등이 점점 격화하고 있다.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과 택배사, 정부 여당은 15일 사회적 합의 기구 회의를 열어 합의 이행 방안에 대한 재논의에 들어갔다.

지난 9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간 택배노조 조합원 4천여명은 이날 오후 2시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 모여 과로사 대책 마련과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1박2일 동안의 상경 노숙 투쟁에 들어갔다. 앞서 택배노조 민주우체국본부 조합원 120여명도 “공공기관인 우정사업본부가 분류작업을 개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등 사회적 합의의 최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전날 오전부터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포스트타워 1층 로비에서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갈등이 격화하는 이유는 택배 분류작업 책임에 대한 합의 이행이 파행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1월 택배사와 택배노조, 정부 여당이 참여한 ‘택배 과로사 방지 사회적 기구’는 택배사업자가 택배 분류작업을 자동화하되 그전까진 분류에 필요한 인력을 투입하거나 분류작업을 하는 택배기사에게 적정한 대가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분류작업을 하지 않고도 배송업무가 너무 많아 주 60시간을 초과해서 일하는 택배기사에게는 ‘총수입이 감소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업무를 조정’한다고도 합의했다.

하지만 이 합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일부 택배사들이 설비 마련 등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합의 이행 시기를 늦춰달라고 정부에 요청하는가 하면, 2차 합의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택배기사들의 수입 보전 방안 역시 일부 택배사들의 반대로 삭제됐다. 게다가 우체국 택배를 위탁운영하는 우정사업본부의 경우 ‘택배기사가 부득이하게 택배 분류작업을 맡을 땐 택배사가 수수료를 지급한다’는 합의도 이행하지 않았다고 노조는 주장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4일 자료를 내어 소포위탁배달원(택배기사)이 분류작업을 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완료하기까지는 분류 노동에 대해 적정한 수수료를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택배기사들에게는 지난해 노조와 합의한 소포(택배) 위탁 수수료 내역에 ‘분류 비용’이 명목상 포함됐다는 이유로 ‘이미 수수료를 지급해 왔다’는 입장을 밝혔다. 택배노조의 설문조사를 보면, 전국 72개 우체국 소속 택배기사들이 분류작업을 하고 있고, 이 가운데 62개 우체국 소속 기사들은 수수료를 지급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노조는 “여지껏 분류 비용을 지급한다고 고지한 적도 없었으면서 이제 와서 ‘다 포함되어 있다’고 말하는 건 택배기사에게 전가된 노동에 대가를 지급하지 않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분류비용이 포함된 위탁배달 수수료 체계 개편 회의를 여섯 차례 진행하면서 수수료 단가에 대해 협의하고 택배노조 집행부 의견을 반영해 단체협약을 체결했는데도 고지한 적이 없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택배요금이 인상될 경우 이를 어떻게 배분할지를 두고도 갈등이 인다. 애초 사회적 합의 기구에서 논의된 택배요금 인상은 ‘택배기사 처우 개선과 자동화 설비 투자 등 택배 산업 구조 개선을 위해 비용 부담이 수반되기 때문’이었고, ‘작업시간 제한과 물량 조정으로 감소할 수 있는 택배기사의 수입 등을 보전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택배사들은 택배요금 인상분을 분류작업 비용 충당에 쓰기에도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갈등이 격화하자 택배노조와 택배사, 정부 여당은 이날 오후 사회적 대화 기구 회의를 열고 합의 이행 방안을 다시 논의했다. 회의에서는 정부 여당이 분류작업은 택배사가 책임진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이 책임의 이행 시기도 애초 택배사가 요구했던 ‘1년 유예’를 받아들이지 않고 올해 안으로 두는 등의 중재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택배기사의 수입 보전 방안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입장 차가 있어 16일 회의를 다시 열고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택배노조 관계자는 “여당이 사회적 합의 이행 시기, 우체국의 분류작업 명확화, 수수료에 대한 중재안을 갖고 나왔고, 이 중재안을 가지고 추가 논의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포스트타워 1층 로비에서 전국택배노동조합 소속 우체국택배 노동자들이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사회적 합의 기구를 통해 서둘러 갈등을 봉합하려 하지 말고 정부가 좀 더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사회적 합의로는 계속 논의할 수 없고, 법과 제도가 따라가야 하는데 (사회적 합의 이후) 지난 5개월 동안 그 부분이 부족했다”며 “최근 개정된 생활물류법마저 택배사의 분류작업 책임을 명확히 하지 않아 논란이 계속될 여지가 있다. 결국 현실에선 택배기사가 책임을 떠안을 수밖에 없어 법률로 책임을 명확히 하고, 택배기사와 같은 특수고용직 노동자에 대한 노동법적 보호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도 “사회적 대화 기구는 단순히 노사의 쟁점을 합의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당사자들이 합의를 실제로 이행하는지까지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고도의 전략적 행위”라며 “택배 파업의 경우 사쪽이 당장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데 정부가 인센티브를 어떻게 줄지 등 입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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