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상속-내 새끼를 부탁해!

2021. 6. 1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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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계약한 종신 보험에 따르면 내가 사망할 시 1억 원이 지정 상속자에게 주어진다. 그런데 지금껏 사람 자식이 없다 보니 개 딸 수리가 유력한 상속자다. 가끔 걱정을 하기는 했다. 내가 별안간 세상을 뜨고 수리만 남으면 어쩌지 하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1인 가구라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한번쯤 해 봤을 테다. 그런데 개한테도 상속이 가능할까?

수리를 만나기 전에는 유산이니 상속이니 관심도 없었다. 그저 언니한테 “내가 자식이 없으면 사후 보험금 1억 원을 주지. 단, 평소 하는 거 봐서”라며 시답잖은 농담이나 던지는 정도. 그러다 과년하고 과년해 후사가 불가능에 가까워지고 보니 1억 원이 공중 부양하게 생겼고, 때때로 누구를 상속자로 지정할지 상상도 했다. 하지만 수리가 오고는 고민도 상상도 끝이 났다.

수리가 받을(?) 1억 원은, 사실 새 발의 피다. 명품 브랜드 샤넬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2019년 85세로 사망하면서 전 재산을 반려묘 ‘슈페트’에게 상속했다. 금액은 무려 2억 달러, 한화로 2247억 원이다. 뿐만 아니다.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소유주이자 부동산 재벌이던 레오나 헴슬리는 반려견 ‘트러블’에게 21억 원을 상속했고, 미국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도 반려견 다섯 마리에 356억 원의 유산을 주기로 약속했다.

세계 갑부견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독일의 ‘군터 4세’는 카롤레타 리벤슈타인 백작부인으로부터 상속받은 돈 4200억 원을 거느린 자산가다. 우리나라에도 사례가 있다. 영화 배우 엄앵란 씨다. 그는 2013년에 전 재산을 반려견에게 상속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오직 강아지만이 나의 외로움을 달래 줬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렇다. 반려동물에게 유산을 상속하는 일은 가능하다. 특히 반려동물 선진국으로 꼽는 독일에서는 협회나 재단을 통해 반려동물을 상속 대상으로 지정하면 유산 상속이 가능하고, 미국은 거의 모든 주에서 상속 신탁을 허용하고 있어 반려동물 전문 변호사가 활발히 활동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민법에서 ‘동물은 물건으로써 지위를 가지며 권리 능력을 가지지 못한다’라고 규정되어 있어 역시 반려동물에게 직접 상속은 불가능하지만, 방법은 있다.

그 하나는 반려동물을 돌봐 주는 조건으로 가족이나 제3자에게 유산을 남기는 방법이다. 이때는 유언장을 작성해 둘 필요가 있다. 유언장은 반드시 법적 효력이 인정될 수 있는 조ㅌ건을 갖추어야 하고, 관리 방법과 유산 사용 방법 같은 구체적인 조건을 기록한 다음 동의를 받아야 한다. 다만 상속인이 얼마나 약속을 충실히 지킬지에 관해서는 담보할 수 없다는 위험이 따른다.

다른 하나는 ‘펫 신탁’이다. 생전에는 재산을, 사후에는 유산을 은행 등 금융 회사에 맡기고 수익자로 반려동물을 관리해 줄 사람이나 단체를 지정해 둔다. 반려인이 죽으면 은행은 지정한 상속인에게 반려동물 양육비를 지급하며, 신탁 감독인은 돈이 잘 관리되고 있는지, 상속인이 반려동물을 잘 부양하고 있는지 주기적으로 점검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 KB국민은행이 최초로 펫 신탁 상품을 출시했고, 하나은행과 부산은행에서도 유사한 상품을 내놓았다.

이 두 가지 방법 외에도 한 법률 전문가는 법인을 만드는 방법을 제안했다. 법인은 재산권 주체가 되므로 반려동물을 위한 법인을 만들어서 법인 재산으로 한 다음 그것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반려동물도 가족’이라는 말은 이제 당연하다 못해 식상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개 팔자 상팔자’ 운운하는 소리는 더 이상 듣지도 하지도 말자. 우리가 고민해야 할 일은 어떻게 하면 내가 없더라도 반려동물이 생존에 필요한 돌봄을 받을 수 있는지다. 해서 나는 어떤 선택을 했냐면, 사후 보험금 1억 원의 상속자를 언니로

[글 이경혜(프리랜서, 댕댕이 수리 맘)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84호 (21.06.2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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