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지식재산 거버넌스: 뉴턴, 잡스 그리고 오컴의 면도날

강병준 2021. 6. 1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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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일까. 여권 대선주자로 꼽히는 전·현직 총리가 같은 화두를 던졌다. 차기 정부에서 '지식재산처'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혁신경제와 4차 산업혁명을 겨냥해 각 부처에 분산된 다양한 지식재산권(IPR)의 통합적 관리와 전략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국무총리는 지난 2011년 지식재산기본법에 의해 출범한 국가지식재산위원회의 정부 위원장이다. 위원회 초기 4년 동안 전략기획단장직을 맡은 필자로서 당연히 눈길이 갔고, 몇 가지 상념이 스쳐 갔다. 다가올 정부의 부처 간 논쟁이 쉽지 않을 것이란 예감도 들었다.

왜일까. IPR는 기술적 사상을 구현(具現)한 특허나 상표 등 산업재산권, 문화예술 감성과 상상력을 표현(表現)한 콘텐츠 저작권, 컴퓨터의 알고리듬을 프로그래밍 언어로 작성한 소프트웨어(SW) 등 어떤 형식이든 창의적 아이디어에 법적 요건이 갖춰지면 발생하는 모든 권리다. 물론 종자권 및 인간 게놈(Genome) 같은 바이오생명 분야의 발전이나 최근 주목받고 있는 빅데이터 같은 신지식재산, 자율주행차·인공지능(AI) 같은 융·복합 지식재산도 빠뜨릴 수 없다.

우리 지식재산기본법은 지식재산을 창출·보호·활용이라는 프레임에서 조명하고 있다. 근저에는 두 철학적 흐름이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내가 남들보다 더 멀리 볼 수 있게 된 것은 앞서간 거인의 어깨 위에 딛고 올라서서 보았기 때문”이라는 근대물리학의 태두 아이작 뉴턴과 “지식재산에 대한 보호가 없어지면 창의적인 기업은 모두 사라지거나 아예 시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라는 애플 창시자 스티브 잡스의 생각에서 이 두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즉 지식재산을 교육과 확산을 통해 새로운 문화·지식을 낳는 도구로 볼 것이냐 발명가·창작자 및 지식재산 중심 혁신기업에 대한 보상과 보호 수단으로 볼 것이냐는 두 관점의 충돌이다.

그러면 지식재산처 설립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지식재산의 큰 축인 저작권은 문화체육관광부, 또 다른 한 축인 산업재산권은 특허청이 각각 맡고 있다. 상위 국가전략 수립과 정책 조정을 수행하는 대통령 소속 지재위의 실무 조직인 지식재산전략기획단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에 있다. 조직 통합이 논의된다면 그 과정에서 벌어질 치열한 기싸움, 논리 다툼이 불 보는 듯 하다. 질문을 던지고 싶다. 정부 조직은 시대·상황적 필요에 따라 신설되고 폐지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자. 이러한 전제 아래에서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지식재산처는 이러한 요구의 대답이 될 수 있는가.

논쟁의 본질은 부처 간 힘겨루기나 고위직 공무원 숫자의 이해다툼이어서는 안 된다. 무엇이 21세기 우리 국가전략의 근간이 돼야 하는가, 전략을 구현하는 올바른 거버넌스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가 관건이다. 미·영·중·일 등 경쟁국들은 통합적 지식재산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제조업 등 전통산업의 먹이사슬 최상위에 지식재산이 군림하고, 기술패권주의와 신보호무역주의의 무기로도 떠오르고 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창작자의 권리와 실효적 생계 보장의 필요성, 콘텐츠와 과학기술 간 융합의 중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지식재산처는 우리에게 하나의 유용한 시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조직이 전부가 아니다. 조직이 어떤 정책 철학에 기초해서 일을 하도록 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정책 거버넌스의 요체는 결국 '올바른 그릇'에 '올바른 내용'을 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현 시점에서 우리나라 지식재산 거버넌스의 지향점을 다음과 같이 일곱 가지로 요약하고 싶다. △저작권, 산업재산권, 신지식재산 등을 포괄하는 통합적 조직 △인문과 예술, 과학과 기술, 시장과 경영, 정책과 행정에 대한 철학적 토대 △경제·산업 등 진흥·보호와 문화·교육 등 전수·확산 기능의 동등한 공존 △글로벌 스탠더드 부합성과 국내 시장에 대한 맞춤형 정책의 동시적 접근 △ 실체적 진실을 찾는 분쟁해결제도 및 지식재산·기술에 대한 가치평가·금융시스템의 전면 쇄신 △대기업의 시장 플랫폼과 중소기업의 빠른 혁신의 상생적 연계 △시장 '참여자'가 아니라 '질서 부여자'로서의 조직 미션 등이다.

지식재산 전략수립 초기 과정에 참여한 필자에게는 지식재산에 대한 지식·열정·경험을 갖춘 공무원이 많음을 잘 알고 있다. 이들이 국가 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지혜롭게 묶는 것은 여야를 넘어 정치권이 함께해야 할 몫이다. 비대한 몸집과 예산으로 무장한 부처가 아니라 21세기 발전 전략의 첨병(spearhead)이 될 명민한 조직을 군살 없이 설계하는 일은 어렵고 복잡한 일이다. 복잡할수록 쉽게 보자. 14세기 영국 프란체스코회 수사이자 논리학자 윌리엄 오컴이 설파한 '오컴의 면도날'로 복잡한 가정과 막연한 기우는 걷어내고 당면한 목적을 명쾌하게 보자. 시대는 지금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고기석 한국지식재산서비스협회 회장 president@kaip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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