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몸 갖고 싶은 욕망, 아직 버리지 못했지만..

한겨레 2021. 6. 15.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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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김쿵쾅][내 이름은 김쿵쾅]
<여신은 칭찬일까?> 속 한 문장, 머리를 세게 때리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3월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사건이 알려졌습니다. 면접 당사자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회적 약자가 변화를 일으키려고 하면 ‘예민한 사람’ 취급하는 게 기득권 입장에서는 가장 좋은 해결방법이잖아요. ‘예민하다’는 말을 너무 신경쓰지 말고 오히려 칭찬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예민한’ 그가 <한겨레> 온라인 칼럼으로 독자를 찾아갑니다. 20대 여성인 자신 그리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과 독서 경험을 엮어 낸 칼럼 ‘내 이름은 김쿵쾅’ 입니다.
※ ‘쿵쾅’은 단단하고 큰 물건이 서로 부딪칠 때 크게 나는 소리를 뜻합니다. 일부에선 성차별에 분노하고 성평등을 말하는 페미니스트를 가리켜 ‘쿵쾅이’라고 부릅니다. 페미니스트를 입막음 하려는 이들이 ‘쿵쾅’의 의미를 변형·독점하려는 시도를 ‘김쿵쾅’이라는 필명을 통해 유쾌하게 맞받아주려 합니다.

저는 다이어트 강박이 있습니다. 동아제약을 상대로 그렇게 싸우던 대장부가 다이어트 강박이라니,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사실, 저는 적정 체중인데도 평생 스스로 ‘뚱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했고, 입는 청바지 사이즈를 라지에서 스몰로 줄였습니다. 그 뒤로도 꽤 오랜 시간 다이어트 강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제가 하루에 섭취하는 칼로리는 약 900칼로리. 많이 먹으면 1200칼로리 정도 됩니다. 빵과 떡볶이는 끊은 지 오래고, 라면을 먹는 것도 한 달에 한 번 정도입니다.

‘자기만족’이라는 말로 포장하고 싶습니다만, 제가 이토록 다이어트를 했던 이유는 ‘예쁘다’라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인스타그램에 레깅스에 크롭티를 입은 사진이라도 올리는 날이면 “여신의 뜻을 모르겠다면 고개를 들어 김쿵쾅을 보라”라던가 “김쿵쾅 지금 나 꼬시네?” 같은 친구들의 장난스러운, 그리고 괜스레 뿌듯한 댓글이 줄을 잇거든요. 네, 제가 다이어트를 했던 이유, 지금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여신’이 되고 싶다는 그 욕망 하나였습니다. 그렇게 ‘여신’이 되기 위해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퇴근 후 저녁, 서점에서 최지선 작가의 <여신은 칭찬일까?>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여신은 칭찬일까?>라는 책에서 작가는 한국의 여성 아이돌(여돌)을 둘러싼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그들을 분석합니다. 제가 이 책을 이해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여돌은 일종의 ‘인형’입니다. 예쁜 얼굴에 톡 하고 건드리면 부러질 것만 같은 가녀린 팔과 다리를 가진, 자신의 생각은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도덕적·윤리적으로 완전무결한, 자신을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춤과 노래라는 ‘축복’을 내려주는 그런 ‘인형’말이죠. 또, ‘여신’이라 추앙받지만, 나이가 스물다섯이 넘어가거나 남자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발각되는 순간 ‘인간’으로 지위가 떨어져 금방 잊혀지는 그런 존재이기도 합니다. 마치 네팔의 ‘쿠마리’처럼 말입니다.

네팔에는 ‘처녀신’이라는 뜻을 담은 ‘쿠마리’라 불리는 ‘살아있는 여신’이 있습니다. 3살 전후의 여자 어린이 가운데 32가지 미(美)의 조건을 만족해야만 쿠마리가 될 수 있습니다. 32가지 미의 기준에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촉촉하고 길고 뾰족한 혓바닥, 사슴 같은 허벅지, 부드러운 다리 살, 한 번도 피를 흘린 적이 없는 몸, 넓고 둥근 이마에 소 같은 눈썹…. 쿠마리로 선발된 뒤에도 매일 아침 정해진 대로 몸을 치장해야 하죠. ‘신’으로 신분이 높아진 만큼 대우도 많이 달라집니다. 이렇게 받들어지는 만큼 지켜야 할 규칙도 많습니다. 가족 이외의 사람과는 말을 할 수 없고, 외출도 금지되어 있으며, 신성한 발을 땅에 대지 않아야 하기에 절대 스스로 걸을 수 없습니다. 쿠마리가 온종일 하는 일은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마에 축복의 상징인 티카를 찍어주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몇 년을 쿠마리로 살다 첫 정혈(생리)을 하는 순간, 인간으로 타락한 것으로 간주하여 쿠마리의 자격이 박탈되고 살던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한국의 여돌과 쿠마리가 ‘여신’으로 숭배받고 찬양받는 이유, 그리고 제가 그토록 마른 몸에 집착하며 하루 1000칼로리도 먹지 않고 운동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외모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여신은 칭찬일까?>라는 책을 읽으면서, “여신은 인간이 아니다”라는 이 한 문장이 제 머리를 강하게 때렸습니다. 점점 깊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여신이 되면 행복할까?’하고 말이죠. 아니었습니다. 그룹 해체 뒤 여돌의 삶, 각종 이슈가 있고 난 뒤 여돌의 삶, 실제 ‘여신’의 삶을 살았던 쿠마리가 인간으로 ‘타락’한 뒤의 삶을 보니, 아니었습니다. 여돌은 거식증에 시달렸고, 쿠마리는 자기 발로 걸어본 적이 없어 근육이 퇴화해 걷는 법부터 배워야 했습니다. 이 둘 모두 ‘인간’들과의 의사소통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여신’들의 여신 이후의 삶을 보니, 제가 여신이 되어 누릴 수 있는 행복도 정말 한순간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행복마저도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정의한 행복이라는 것이 슬프게만 다가왔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여신’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당장 오늘 저녁만 해도 150칼로리 짜리 셰이크 하나만 먹었거든요. 하지만, 이번 글을 기점으로 조금씩 바꿔나가 보려 합니다. 얼마나 걸릴지 또 얼마나 힘들지는 모르겠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하니까요. 이번 글은 아무래도 칼럼을 가장한 반성문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공개적인 반성문을 썼으니 책임감 때문에라도 더 열심히 변해야겠습니다. 내가 ‘진짜로’ 행복한 날이 오는 그날까지!

김쿵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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