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만 놓고 싸우면 中에 진다" 中매체 기고자는 펜타곤 관리

이철민 선임기자 2021. 6. 15.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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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7일 중국 관영 영자매체인 ‘글로벌 타임스(環球時報)에는 “미국이 타이완을 놓고 싸우면 중국에 지는 이유”라는 기고문이 실렸다. 기고문은 타이완 여당인 민진당을 “분리주의 변절자들”이라고 부르며, 이들과 미국 의회의 ‘부패한’ 타이완 이익집단이 “미국이란 개의 꼬리를 흔들어 몸통을 좌지우지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글은 또 “중국은 수세기 동안 사회 전체를 유지하기 위해선 수백만, 수십만 명의 희생도 치른 나라이고 타이완은 미국에겐 결코 실존적 위협이 되지 않는 먼 지역”이라고 주장했다. 괜히 타이완을 핵심이익인 양 취급하다가 미국의 쇠락만 부추길 전쟁에 말려들지 말라는 경고였다.

"미국이 핵심 이익도 아닌 타이완을 지키기 위해 중국과 싸우면, 미국의 쇠락만 부추기며 질 수밖에 없다"는 글을 중국 정부의 선전매체인 '글로벌 타임스'에 기고한 미 국방부 베테랑 분석가 프란츠 게일./Government Accountability Project

중국 공산당의 선전 매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고자는 현재 미 국방부(펜타곤)에서 18년간 근무하고 있는 프란츠 게일(Gayl)이란 미 연방공무원(64)이었다. 해병대원으로도 22년간 복무하고 미 해병대 자문관 신분도 유지하고 있었다. 기고자의 신분은 기고문에 달려 소개됐다. ‘글로벌 타임스'는 트럼프 행정부가 2020년 2월 ‘중국 정부 기관’으로 규정한 매체다.

한 달 뒤인 5월27일, 게일은 다시 “중국인들을 타자화(他者化‧othering)하면, 타이완 군사충돌이 날 수 있다”는 글을 썼다. 게일은 “미국은 2차 대전 때 일본인을 미국인과는 다른 부류이자 비(非)인간화하는 ‘타자화’를 했기 때문에,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릴 수 있었다”며 “반대로, 독일 드레스덴과 함부르크 폭격 때에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연합국 측에서 많은 감정적 논란과 망설임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 미국 사회의 중국계‧아시아계에 대한 인종적 공격도 이들을 미국인‧유럽인들과는 다른 부류로 보는 교묘한 ‘타자화’의 일환이며, 그래서 한국‧베트남‧타이완‧중국에서 미 군부가 재래식 전쟁의 우위 회복을 위해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말이 쉽게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게일은 “타이완을 놓고 미‧중간에 비극적인 전쟁이 일어나면, 그 부담은 자신들이 합법적이고 희생할 가치가 있는 것에 목숨을 걸고 있다고 믿을 미국의 애국적인 젊은이들이 지게 된다”고 비판했다.

결국 미 정부는 두 번씩이나 ‘글로벌 타임스’에 이런 글을 쓴 게일에 대해 방첩(防諜)수사를 시작했고, 지난 1일 그의 기밀 접근권을 박탈했다. 미 보수 언론 매체와 논객들은 그를 “간첩” “배신자”라고 부른다. 간첩 협의가 드러나지 않아도, 그는 강제 은퇴가 예상된다.

게일도 자신의 글이 워싱턴에서 논란거리가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미 공무원이 국방부 내부에 앉아서 공산당 뉴스사이트에 글을 쓴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그는 “결코 후회는 없다. 지금 말하지 않으면, 우리는 몽유병 환자처럼 중국과의 전쟁에 걸어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4월의 첫 기고문은 애초 워싱턴포스트에 보냈지만, 거부됐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실어줄 것이 뻔한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 타임스’였다.

게일은 글로벌 타임스에 “내 신분이 연방 공무원이라서 이 글은 게재되면 많이 읽힐 것이요. 미국의 잘못된 정책에 맞서기 위해, 권위주의적인 공산당 매체에 글을 내는 것이니 나는 곤경에 처하겠지만, 임박한 전쟁은 우리 모두가 후회할 비극이 될 것이요”라고 썼다. 이메일을 보낸 지 12일 뒤 글이 게재됐다. 게일은 기고료 150 달러는 거절했다.

중국 정부는 당연히 환영일색이다. 중국 정부 대변인은 “앞으로 외국 언론인들 중에서 더 많은 ‘에드가 스노우(Edgar Snow)’가 나타나길 바란다”며 반겼다. 에드가 스노는 ‘중국의 붉은 별’을 쓰며 마오쩌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친중공(親中共)적인 미 언론인으로, ‘중국의 입’이란 소리도 들었다.

그에게 방첩수사와 기밀 접근권 박탈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07년 5월 해병대원 시절에도 ‘와이어드’ 잡지가 “미 군부가 수많은 미군의 목숨을 살릴 장갑전투차량(MRAP)의 인도를 미루고 있다”는 기사를 낼 때, 자료를 제공했다. 당시 방첩수사 결과는 무혐의였다.

게일은 워싱턴포스트에 “방첩수사로 가족을 더 힘들게 할 생각이 없다”며 국방부에서 곧 은퇴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워싱턴 DC에서 그에게 기꺼이 일자리를 줄 직장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는 워싱턴포스트에 “다른 일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만 했다.

미네소타대 학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게일은 해병대에 입대해 이라크 등지에서 복무했고, 예비역 소령으로 국방부에 합류했다. 미 해군대학원(NPS)에서 우주시스템작전 석사, 미 국방대학원에서 자원전략 석사를 받았으며, 국방부에선 주로 고(高)에너지레이저 기술 개발, 해군특수전개발 그룹 등에서 관여해왔다. 국방 관련 특허를 4건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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