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이준석을 누구라고 부르든 / 이세영

이세영 2021. 6. 1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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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첫 최고위원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공동 취재 사진

이세영ㅣ 논설위원

성명학은 이름에 길흉화복이 깃든다는 주술적 신념에 뿌리를 둔다. 이름 짓기를 업으로 삼는 이들은 천운이 나빠도 좋은 이름을 붙이면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언어 자체에 존재를 움직이는 마술적 힘이 있다는 것이다. 천한 가축이나 지푸라기 인형 따위에 정적이나 원수 이름을 붙여 학대하는 것, 태풍 같은 공포스러운 자연현상에 친숙한 사람이나 동물 이름을 붙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름을 지어 붙이는 행위의 심층에는 명명된 존재의 현재와 미래를 관장하려는 집요한 권력의지, 낯선 외부 위력을 언어의 힘으로 제어해보겠다는 주술적 소망이 작동한다.

정치권에 ‘이준석 바람’이 거세다. 한동안 ‘미풍’인지 ‘돌풍’인지를 두고 쟁론하던 분석가들이 그가 국민의힘 대표에 당선된 뒤엔 ‘열대성 저기압’급으로 바람 규모를 격상시키는 분위기다. 이런 흐름은 ‘이준석 현상’이란 표현이 별다른 이견 없이 유통되는 현실에서도 드러난다. 눈길을 끄는 건 리버럴·진보 성향 분석가들이 정치인 이준석을 겨냥해 내놓는 이러저러한 진단들이다. 경선 결과가 나오기 전만 해도 ‘저 당이 어떤 당인데 이준석을 대표로 뽑겠느냐’고 냉소하던 상당수가 ‘이준석발 보수혁신론’의 강력한 비판자로 등장했다.

누군가는 그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아류라 단언한다. 낙오된 소외계층을 동원할 요량으로 여성과 약자에 대한 분노·혐오를 조장하는 ‘우파 포퓰리스트’ 정치를 펼친다는 이유다. 그가 철 지난 ‘대처리즘’의 교리를 주문처럼 되뇌는 ‘정글 시장주의자’라는 견해도 있다. 이런 진단은 이준석이 2년 전 대담집에서 밝힌 “모두가 자유로운 세상은 정글이며, 정글의 법칙은 약육강식”이라는 ‘미국식 경쟁주의 예찬’에 근거해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을 열정적으로 지지하는 이들은 대체로 ‘트럼피스트’와 ‘정글 시장주의자’라는 이준석 평가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이준석이 여러 경로로 표방해온 ‘능력주의’는 이 두가지 작명법을 관통하는 이데올로기적 열쇳말로 통용된다.

그러나 간과해선 안 될 사실이 있다. 트럼프주의로 상징되는 우파 포퓰리즘과 미국식 능력주의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힘든 상호 적대 이데올로기라는 점이다. 트럼프는 능력주의 시대의 엘리트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블루칼라 억만장자’를 자처했고, 능력주의가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신분제 이데올로기의 변형에 불과하다는 점을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했다. 그는 결국 능력주의 엘리트에 대한 백인 중하류층의 불만과 분노에 편승해 대통령직까지 거머쥐었다. 오히려 역대 미국 행정부 가운데 능력주의에 가장 충실했다고 평가받는 것은 오바마 정부다. 그의 1기 내각은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아이비리그 출신들이 장악했고, 오바마 자신이 유색인 이민자 가계 출신임에도 컬럼비아대학과 하버드대 로스쿨의 엘리트 교육에서 성공 발판을 마련한 ‘능력지배 사회의 아이콘’이었다.

유념할 지점은 또 있다. 정치인의 정체성은 사회경제적 배경이나 소속 정당, 종교, 선호 이념, 출신 지역 등 다양한 원천에 뿌리를 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능력주의는 이준석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다양한 성분들 가운데 일부이면서, 정치적 변화의 폭과 가능성을 제약하는 잠재적 한계선 정도로 간주하는 게 무리가 없다. 중요한 건 유권자들 상당수가 이준석이란 인물에게 투사한 ‘집합적 열망’이다. 현재로선 그 열망이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갈구하는 ‘정권교체’뿐 아니라, 반기득권, 공정, 실용, 세대교체 등 당대 현실이 결핍한 가치들의 복합체에 가까워 보인다.

이준석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를 무엇이라 부를지는 당대표로서 그의 판단과 행위를 지켜본 뒤 결정해도 늦지 않다. 몇가지 유사 성분이 보인다는 이유로 이준석을 ‘트럼프주의자’나 ‘대처주의자’라 명명하는 것은 ‘아날로지’이지 ‘분석’이 아니다. 열대성 저기압이 만들어지면, 주변의 기단 분포, 구름 형세, 해수 온도 등을 누적된 데이터베이스와 종합해 진로와 발달 경로를 최대한 정확하게 산출하는 게 중요하다. ‘이준석 바람’ 앞에서 필요한 것 역시 현상을 만들어낸 열망과 민심 지형을 정밀하게 읽어내는 고도의 집중된 노동이다. 작명은 운명을 바꾸지 못한다. 주술이 과학을 대신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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