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방역도 '정치 아닌 과학' 이어야 한다

기자 2021. 6. 1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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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오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과실연 상임대표

작은 재난도 잘못 대응 땐 참사

‘대응력 C > 위험 H’ 공식 중요

C 키우려면 경제적 부담 증가

효율성 위해 과학적 근거 필수

만원 지하철과 모임 제한 충돌

과학적 설명과 소통 중시해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속에서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홍수와 태풍, 그리고 폭염을 보면 자연이 야속하지 않을 수 없다. 그뿐인가…. 지난주 광주광역시에서는 철거 중이던 건물이 붕괴돼 버스를 덮치는 참사가 있었고, 하루 평균 10명 가까운 교통사고 사망자가 대한민국에서 발생한다. 어느 학자의 표현대로 그야말로 우리는 재난이 상수(常數)인 시대에 살고 있다.

일상에서 위험·재해·재난을 구분해서 사용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결국 재해(disaster)는 위험(hazard·H)을 가하는 힘과 이에 맞서는 역량(capacity·C)의 상대적 관계에 의해서 발생한다. 아무리 작은 위험이라도 대처 역량이 없으면 큰 재해로 다가올 수 있고, 매우 큰 위험도 대처에 만전을 기하면 재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홍수와 제방의 높이, 바이러스와 인체 면역력, 세계적 외환위기와 국내 외화 보유 능력 등이 H와 C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재해관리의 기본은 H보다 C를 크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 기본 원칙이 쉽지 않다. H와 C가 하나의 값이 아니라, 모두 무작위(random) 변수여서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어도 H의 ‘평균’보다 C의 ‘평균’이 커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비가 얼마나 올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제방(C)의 높이는 내리는 비(H)의 평균값보다는 커야 한다. 평균을 이렇게 위치시켜도 H가 C보다 커지는 사건의 가능성은 늘 있는데, 이 부분이 재해 발생의 확률이 된다. H의 평균에서 C의 평균을 멀리 떨어뜨려야 안전성이 높아지지만, 예산이 증가하기 때문에 C의 평균을 마냥 크게 만들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H, 즉 위험은 많은 경우 자연 현상에서 시작된다. 홍수가 그렇고 바이러스가 그렇다. 그래서 C에 비해 H의 불확실성은 매우 커서 넓게 퍼져 있는 분포를 그리는 게 일반적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H의 분포가 시공간적으로 변화무쌍하게 바뀔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예측하기가 매우 어려워서 고도의 과학기술이 요구된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은 물론 인공위성과 레이더 기술을 총동원해 폭우와 홍수를 예측해야 하고, 바이러스의 감염 경로, 재생산율, 치명률 등을 수학적 시뮬레이션과 임상실험으로 분석해서 추정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 역량(力量)을 의미하는 C는 인간이 만든다. 그래서 불확실성이 작고 효과에 대한 예측이 가능해야 한다. 특히, C는 H의 불확실성 크기와 시공간적 변화 정도를 온전히 투영해야 할 것이다. H의 불확실성이 크고 예측불허일수록 재해관리 정책은 경제성보다는 안전성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 더욱이, H의 불확실성이 크고 변화무쌍할수록 정치적인 판단의 여지를 과감하게 줄이고 과학기술에 바탕을 둔 분석과 증거에 기반을 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겪어 보지 못한 위험’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위험’, 발생 확률이 매우 작아도 결과가 ‘치명적인 위험’을 매우 두려워한다. 매일 겪는 교통사고보다 비행기 탑승을 더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제어할 수 없고 만에 하나 추락할 경우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연평균 20여 명의 인명을 앗아가는 풍수해보다 사망자가 없는 지진과 원전 피해에 더욱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기에 재해관리에서 자칫 간과할 수 있는 과학 소통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정책의 효용성이 과학적 이유와 함께 명쾌히 제시된다면 정책의 실현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나, 그렇지 못한 정책은 비과학적 음모만 양산해 사회 갈등을 부추긴다.

‘겪어 보지 못한 위험’ 코로나19의 실체도 과학의 도움으로 상당 부분 밝혀지고 있고, 또 시행착오를 통해 ‘제어되는 위험’으로 바뀌는 중이다. ‘치명적 위험’으로 예상됐던 코로나19의 ‘치명률’도 사스나 메르스보다 현저히 낮아져 1.5% 아래를 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과학적 근거가 미약한 ‘5인 이상 사적 모임 제한’ 속에서 매일 만원인 지하철에 몸을 실어 왔다. 이미 속속 발표되고 있는 7월부터의 새로운 방역 대책이 부디 과학적 이유로 설명되고 과학 소통으로 설득되길 기대한다. 우리 국민도 이제 그 정도 수준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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