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쓰레기 줍는 이야기

2021. 6. 15.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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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오늘도 달리는 거 잊지 않았죠?”

느긋하게 앉아 쉬고 있으면 어김없이 던지는 아이의 한마디에 벌떡 일어나 저녁을 준비한다. 빨리 저녁을 먹고 쓰레기를 주우러 나가자는 일종의 시그널이다. 저녁 식사를 차려주면 세월아 네월아 느긋하게 먹던 아이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후다닥 먹고 설거지까지 끝내고선 신발장 앞에 서 있다. 그래, 나가자!

조깅을 시작한 건 한 달이 조금 안 됐다. 어느 날 거울 앞에 섰다가 ‘확찐자’가 있어 깜짝 놀라 살을 빼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온갖 핑계를 대며 나가지 않을 방법을 찾고 있는 게 아닌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의미 있게 달릴 방법을 검색하던 중 환경을 지키며 건강을 챙기는 ‘플로깅’을 알게 됐다.

SNS 해시태그 #플로깅 #줍기 등을 검색하면, 자발적 환경보호 캠페인에 참여한 개인의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플로깅(plogging)은 ‘이삭을 줍는다’는 뜻의 스웨덴어 plocka upp과 영어 단어 jogging의 합성어로 2016년 스웨덴에서 처음 시작돼 북유럽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누구나 일상에서 조깅을 하며 건강과 환경을 동시에 챙길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데,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SNS 해시태그를 통해 전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각 지자체와 기관, 기업들이 앞다퉈 플로깅 캠페인을 펼치고, 개개인이 모여 만든 러닝 크루에서 ‘플로깅 런’을 선보이며 영역을 넓히고 있다.

쓰레기를 줍기 위해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이 스쿼트 운동 자세와 비슷하다.


쓰레기를 담을 봉투만 있으면 플로깅 준비 끝이다. 손을 보호하기 위해 장갑을 착용한다면 환경을 위해 재사용이 가능한 면 장갑이 좋다. 조깅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게 무슨 운동이 될까 싶었다. 가볍게 달리면서 쓰레기를 줍기 위해 몇 번 앉았다 일어났을 뿐인데 땀이 뻘뻘 흘러 깜짝 놀랐다. 쓰레기를 줍기 위해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이 스쿼트 운동 자세와 비슷해 단순히 달리기만 했을 때보다 칼로리 소비가 더 크다고 한다.

뛰다가 허리를 숙이면 몸에 무리를 주기 때문에 무릎을 굽혀 줍는 것이 플로깅의 올바른 동작이다. 정말 단순한 동작이지만 전신을 사용하는 운동이니만큼 스트레칭을 하고 달리는 게 좋다. 쓰레기를 조금 더 꼼꼼히 줍고 싶다면, 일행과 나란히 서서 달리기 보다 앞뒤로 간격을 두고 뛰는 게 더욱 효율적이다.

만약 뛰는 게 힘들다면 빠르게 걷거나 가볍게 산책하며, 나에게 맞는 운동 방법으로 참여하면 된다. 무리할 필요도 없다. 힘들면 잠시 쉬면서 페이스를 조절한다. 장소 역시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나 골목은 물론, 더 나아가 공원, 산, 바다 어디든 달리며 쓰레기를 주우면 된다.

환경을 위해 쓰레기를 줍는 비닐봉지는 한 번 이상 사용한 걸 재활용하고 있다.


아이들이 플로깅을 함께 실천하며 활력이 붙었다. 열정과 의욕이 넘치는 시기라 자연스레 경쟁 구도가 형성되어 1시간 조깅을 하고 나면 검정 봉지 하나가 가득 찬다. 그 안에는 플라스틱 뚜껑, 담뱃갑, 과자 봉지 등 다양한 종류의 쓰레기가 담겨 있는데, 생각지도 못한 기상천외한 쓰레기에 깜짝 놀랄 때도 있다. 이렇게 모은 쓰레기는 집으로 가져와 분리해 버린다.

오늘도 열심히 운동하며 쓰레기를 주웠다는 뿌듯함보다 여전히 공원에 이렇게 많은 쓰레기가 버려진다는 사실에 씁쓸한 기분이 든다. 특히 ‘어른들만’ 버릴 수 있는 쓰레기를 주울 때면 “내가 만든 쓰레기는 가지고 가야지!”라며, 으름장을 놓는 아이의 말에 쥐구멍으로 숨고 싶어진다. 간혹 먹다 남은 과일 껍데기는 괜찮다고 생각해 버리는 이들이 있는데, 곰팡이가 피고 고약한 악취를 풍기니 꼭 다시 가지고 와야 한다.

아이들이 먼저 쓰레기를 주우며 달리자고 재촉한다.


누군가는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쓰레기를 찾아 줍는다. 생각해 보면 애당초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지 않으면 될 일인데, 가장 쉬운 방법을 두고 실천하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 

지구를 위해, 환경을 위해 ‘내가 만든 쓰레기는 그대로 가지고 온다’는 시민의식을 발휘할 때이다. ‘누군가 하겠지’, ‘나와 상관없어’가 아닌, ‘나’부터라는 생각으로 우리가 놓치고 있던 환경보호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되새겨 보는 건 어떨까? 들고 나간 봉지가 텅 비는 그날이 오길 바라며 나는 오늘도 아이들과 집을 나선다.

정책기자단|조연희shiyou11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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