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켓소년단', 없으니 비로소 채워지는 것들
아이즈 ize 글 최영균(칼럼니스트)
지난 14일 방송에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한 SBS 월화드라마 ‘라켓소년단’(극본 정보훈, 연출 조영광)은 색다르다.
지상파 방송 드라마의 일반적인 공식에서 멀찌감치 벗어난 모습으로 우려와 기대가 교차되는 상황에서 방송을 시작했는데 시청자들의 호평과 평균 5%를 넘는 시청률(닐슨 코리아)로 성공적인 결과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라켓소년단’은 땅끝마을 농촌 열여섯살 소년 소녀들의 배드민턴 소년체전 도전기이자 성장 드라마다.
일반적인 지상파 드라마에 있는 것들이 ‘라켓소년단’에는 많이 없다. 우선 스타가 없다. 주연을 맡은 탕준상(윤해강 역)은 최근 주목 받는 신예이지만 스타와는 아직 거리가 멀다. 빅 히트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아역 김강훈(이용태 역)이 참여해 그나마 눈에 익지만 통상적인 지상파 드라마의 스타 주인공 범주에 들어가는 배우는 아니다.
‘라켓소년단’에 일반 지상파 드라마에 없는 것들이 많은 이유는 대부분 ‘라켓소년단’의 근본 설정 때문이다. 주인공들이 청소년 시기이고 이들이 하는 운동이 배드민턴이라는 비인기 종목이라는 두 근본 설정이 그렇다.
지상파에서 주인공이 청소년인 드라마도 희소하고 스포츠가 주요 테마가 되는 드라마도 드물지만 비인기 종목은 더더구나 그러하다. 이런 설정으로 인해 ‘라켓소년단’에는 한국 사회의 주류 정서가 없다. 청소년, 배드민턴도 비주류인데 배경도 대도시, 수도권이 아닌 해남 땅끝마을 농촌이다.
경쟁이 필수적인 스포츠 드라마이지만 주류 정서가 없다 보니 ‘1등지상주의’ 같은 것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윤해강은 서울에서 야구를 하다가 아버지의 빚보증 문제로 해남서중에서 배드민턴을 하게 되지만 처음에는 와이파이를 수월하게 쓰기 위해, 그리고 점차 관계가 깊어진 해남서중 친구들을 위해 자신의 천부적인 배드민턴 실력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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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해남서중 배드민턴부 멤버들도 배드민턴이, 배드민턴부 생활이 즐거워서 이를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하지 정상을 정복해야겠다는 의지 같은 것은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라켓소년단’은 주류 정서 가득한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거나 인간 관계를 배반하면서까지 목적을 이루는 비정한 상황으로부터 청정하다.
‘라켓소년단’은 주인공 편중도 없다. 이웃의 오매할머니(차미경)나 도시에서 이주해온 부부(정민성 박효주) 등 주변 등장인물들의 에피소드도 상당한 분량과 깊이로 다뤄진다. 모두가 주인공이라 하면 과장이겠지만 적어도 의미 없는 인물은 없도록 조연들의 캐릭터에도 적지 않은 관심과 무게가 실린다.
연기 빈틈도 없다. 만화같은 코믹한 요소들로 인해 배우들의 과장스런 연기가 있기는 하지만 몰입을 방해하는 발연기는 없다. 특히 주인공들이 스무살 채 안된 어린 배우들로 구성됐지만 안정되고 영민한 연기는 시청자들을 이들과 함께 울고 웃게 만든다.
이처럼 일반적인 지상파 드라마에 있는 것들이 ‘라켓소년단’에는 없는 빈자리는 사람이 사람을 따뜻한 마음으로 대할 때 생기는 힐링으로 채워진다. 초인적인 노력과 냉정함으로 정상을 지키는 세윤(이재인)에게 모두가 승리를 확신하는 응원을 보낼 때 해강은 “울어도 돼” 또는 “져도 돼”라는 말로 사실은 무거운 짐에 짓눌려 있는 세윤을 달래준다.
이런 에피소들은 열심히 살지만 난관은 반복돼도 눈물 없이 버티는 모든 평범한 사람들에게 위안을 제공한다. 힐링은 ‘라켓소년단’의 주류 정서 없는 분위기, 배우들의 공감되는 연기 등으로 인해 깊어지고 반전으로 극대화된다.
‘라켓소년단’의 정보훈 작가는 ‘슬기로운 감빵생활’ 작가 출신인데 ‘슬기로운...’ 시리즈나 ‘응답하라...’ 시리즈의 신원호 PD 작품 속 시그니처 같은 반전의 감동과 힐링은 ‘라켓소년단’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자신의 일 때문에 가족을 소흘히 한 엄마에게 해강은 뾰족한 태도로 대하지만 엄마는 가장 큰 희생을 아이들을 위해 한 존재임을 뒤늦게 알게 된다. 자신과 배드민턴부에 삐딱하게 괴롭히던 모범생 친구가 사실은 같이 어울리고 싶어서 그런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해강은 이 친구가 배드민턴부에서 함께 할 수 있도록 몰래 돕는다.
이 반전은 의미 없어 보이거나 혹은 누군가에 반하는 듯한 등장인물의 행동이 ‘알고 보면’ ‘사실은’ 누군가를 아끼고 존중해 속 깊이 챙겨 한 행동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이 반전은 주변 소중한 이들의 몰랐던 관심과 사랑을 알게 됐을 때의 감동을 시청자들에게 떠올리게 만들고 힐링하도록 돕는다.
‘라켓소년단’은 19금 드라마의 증가 등 갈수록 자극성이 높아가는 드라마 월드에서 아이들의 진정한 성장과 맞물린 청정함과 따뜻함을 때로는 웃으면서, 때로는 공감하며 만날 수 있는 귀한 작품이다. 이런 드라마가 좋은 반응을 얻는다는 것은 드라마에서라도 위안과 힐링이 필요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라켓소년단’은 없는 것이 많아서 많은 것을 채워주는 드라마다.
최영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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