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변화의 바람 거세진다

장재선 기자 2021. 6. 15. 10:1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로마 교황청이 관할하는 바티칸 시국.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직자성 장관에 한국인 대주교를 파격적으로 임명한 것은 교황청 ‘탈유럽화’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홈페이지
지난 2018년 10월 교황청에서 개막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 참여한 유흥식(오른쪽) 당시 주교가 프란치스코 교황과 나란히 걷고 있다. 연합뉴스

■ 교황청, 장관에 韓 유흥식 대주교 파격 임명… 개혁 가속도

아시아인 장관 임명 네번째

기존 체제 탈유럽화 가속화

전세계 사제·신학교 관리 맡아

올해 김대건 탄생 200주년

높아진 한국 교회 위상 확인

교황 방북 중재자 역할할 듯

세계 가톨릭계가 술렁이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청 성직자성(聖職者省·Congregation for the Clergy) 장관으로 천주교 대전교구장 유흥식(69) 주교를 임명했기 때문이다. 유럽 출신 성직자들이 장악해 온 로마 교황청(The Vatican) 핵심 보직에 가톨릭계 변방인 아시아의 지역 교구장을 서임한 것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동안 여러 차례 파격적인 인사를 했으나, 이번이 가장 예상 밖이었다는 평가다.

500년 역사를 지닌 성직자성은 교황청 행정기구인 9개 성(省) 중 주요 부처로 꼽힌다. 이름에서 보듯 전 세계 사제와 부제의 직무·생활에 관한 업무를 관장한다.역대 장관들은 대체로 이탈리아 추기경들이 맡았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에 한국의 주교를 대주교로 승품시키면서까지 서임했다.

이에 대한 가톨릭계의 해석이 분분한데,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리고 있는 큰 그림, 즉 유럽 중심의 가톨릭교회를 ‘탈중앙화’하는 작업의 하나라는 것이 그 첫 번째다. 다음으로는 올해 ‘김대건 성인 탄생 200주년 희년(禧年)’을 맞은 한국 가톨릭 교회에 대한 배려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론, 세계 평화를 위해 남북 중재자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 교황이 방북을 추진하며 그 적임자로 유 대주교를 꼽았다는 관측이다.

남미 출신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013년 즉위한 후 바티칸의 기존 체제를 바꾸려는 개혁 성향을 뚜렷이 보여왔다. 특히 추기경 인선에서 출신 국가를 다양하게 하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의 재위 기간 처음으로 추기경을 배출한 국가가 18개국이나 된다.

교황은 지난 2019년에 교황청 인류복음화성(Congregation for the Evangelization of People) 장관에 필리핀 출신의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을 임명했다. 그리고 이번에 성직자성 장관에 유 대주교를 서임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이전에 아시아인이 교황청 장관에 임명된 것은 두 차례다. 1990년 필리핀 출신의 호세 토마스 산체스 추기경이 성직자성, 2006년 인도의 이반 디아스 추기경이 인류복음화성을 맡았던 것뿐이다.

이와 관련, 교황청 홍보매체 ‘Vatican News’는 “타글레 추기경의 인류복음화성 장관 임명 이후 성직자성 장관에 한국 주교 임명이 이뤄졌으며, 이는 아시아에 대한 교황의 관심을 보여준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재위 기간에 바티칸의 탈유럽이 가속화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 대목이다.

유 대주교는 “지난 4월 바티칸에서 교황을 만났을 때 장관직을 제안하며 자랑스러운 신앙 선조들의 후예답게 주어진 소명을 잘 수행할 수 있을 거라고 격려해 줬다”고 전했다. 이때 교황은 한국천주교회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을 지내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014년 방한 때 김대건 신부의 생가가 있는 충남 당진시 솔뫼성지를 찾은 바 있다. 이때 깊은 감명을 받은 그는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의 순교 역사에 대해 발언해 왔다. 아픈 역사를 딛고 오늘날 아시아의 중심 국가로, 또 세계 가톨릭을 지탱하는 공동체로 발돋움한 것에 대해 높은 평가를 했다.

솔뫼성지를 관장하는 대전교구장인 유 대주교를 이번에 바티칸 장관에 임명한 것은 김대건 탄생 200주년을 맞은 한국 가톨릭 교회를 축하하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역으로는, 그만큼 한국 교회의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에 이를 반영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한국은 전통적인 가톨릭 문화권이 아님에도 이례적으로 성장을 함으로써 교황청에 내는 납부금 규모가 세계 10위 권 내에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유 대주교는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통해 향후 기회가 주어진다면 교황의 방북을 주선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는 교황과 사전에 교감한 내용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가 “교황님께서도 북한에 가고 싶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기 때문이다.

유 대주교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내며 북한을 네 차례나 방문했다. 교황이 남·북, 미·북 간 중재 역할을 위해 북을 방문할 경우 그것을 추진할 최고 적임자임이 분명하다.

교계 밖에서는 그가 이념적으로 좌파에 가까운 게 아니냐는 시각이 있으나, 교계 내부에서는 중도파로 분류된다. 대전교구 홍보국장인 강대원 신부는 “핵 위험으로부터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기 위한 방안을 만들기 위해 방북을 추진하자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념, 정치 논리를 벗어나 평화 중재자 역할을 하고 싶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 문화닷컴 | 네이버 뉴스 채널 구독 | 모바일 웹 | 슬기로운 문화생활 ]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