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현장] '빛나는 순간' 고두심X지현우의 파격 로맨스로 포장된 인간적 위로(종합)
영화 '빛나는 순간'은 '파격적인 로맨스'라는 말로만 설명되기에는 생각을 곱씹게 만드는, 깊은 여운이 있다. 청정 지역 제주에서 일평생 해녀로 살아오며 아픈 역사를 겪은 여자, 그리고 그를 취재하기 위해 주위를 맴돌다 그의 삶에 스며든 남자의 이야기는 남녀 간의 사랑을 넘어 사람 대 사람이 나누는 위로로 다가온다.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빛나는 순간'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배우 고두심, 지현우와 소준문 감독이 참석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빛나는 순간'은 제주 해녀 진옥(고두심)과 그를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찍는 PD 경훈(지현우)의 특별한 사랑을 다룬 이야기. 경훈은 자신에게 냉담한 진옥의 마음을 열기 위해 끝없이 노력한다. 좀처럼 곁은 내주지 않던 진옥은 바다에 빠진 경훈의 목숨을 구해주고, 경훈이 자신과 같은 상처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마음을 열게 된다. 진옥은 경훈을 통해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을 마주하는 빛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영화는 30살 이상 나이차가 나는 두 남녀의 사랑이라는 파격적 소재에 먼저 눈길이 간다. 소준문 감독은 사랑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제주도라는 공간 자체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됐다"며 "해녀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조사를 했는데 해녀들의 삶이 굉장히 존경스럽고 경이로운 모습이었다. 제주에서의 삶을 여성의 몸으로 일궈내는게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검은 현무암 돌덩이 같은 모습에 들꽃 같은 모습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해녀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취재했는데 섬세하고 여리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있었다"며 그런 모습을 담고 싶었다고 전했다.
소 감독은 사랑의 소재를 영화의 중심이 되는 메시지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나이차 나는 사랑, 파격적인 지점을 숫자로 생각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상처 입은 세대로 생각했다"며 "두 세대가 서로를 치유하고 위로하며 완성되는 사랑이다"라고 설명했다.
소 감독이 말하는 '빛나는 순간'은 고두심이 없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영화다. 그는 "프로듀서와 함께 고두심 선생님을 모시기 위해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작으면 작다고 할 수 있는 영화에 대배우가 출연해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나에게는 유일한 분이었다"며 "대사도 제주어로 해야 하고, 제주의 것들을 꾸밈없이 가져가고 싶었다. 솔직히 처음 선생님을 뵀을 때 긴장을 많이 해서 말도 한 마디 못했는데, 얼굴을 찬찬히 보니 소녀적이고 내가 영화에서 만들고 싶은 것을 완벽하게 갖고 계셔서 캐스팅이 안 되면 안 된다고 밀어붙였다"고 밝혔다.
제주 해녀의 삶을 생동감 있게 그려낸 고두심은 실제 제주 출신이다. 그는 아름답지만 한편으로 아픈 역사를 가진 제주도에서 살아가는 해녀 진옥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그는 "젊은 친구와 멜로까지는 생각하지도 않았고, 멜로는 많이 해보지 않아 못 할 거 같더라. 그런데 감독님이 '고두심 하면 제주도고 고두심 얼굴이 제주의 풍광'이라고 말해줬다"며 "감독님이 그렇게 말해주는데 거절할 사람은 흔치 않을 거다"라고 재치 있게 말했다.
고두심은 "내 고향에서 찍었고 누구보다도 더 잘 표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이 영화에 임해봤다"며 "고향에서 올 로케이션 촬영을 하게 돼 행운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시기를 겪는 과정에 고향에 가서 푸짐하게 고향 이야기도 쓰고 어린 시절부터 먹던 음식도 많이 섭취할 수 있어 행복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제주도는 삶과 바다가 경계 없이 이뤄지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척박해 힘든 고장"이라며 "그곳에서 생명 같은 그 줄을 놓으면 살 수 없는, 40~50년을 버텨 사는 해녀를 연기하며 다시 그분들을 세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돌멩이나 제주를 지키는 수호신 같은 정신과 혼 등으로 표현되는 이들의 생, 숙명적인 끈을 끝까지 놓지 않고 펼쳐서 오늘날까지 살아온 것들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소 감독은 지현우의 용기 있는 선택에도 박수를 보냈다. 그는 "이 역할 캐스팅이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지현우는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하겠다고 해줬다"며 "지현우가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제주도로 가서 준비도 했다"고 만족해했다.
지현우는 "처음에 대본을 읽고 혼자 마음속으로 '잘 썼다. 그런데 관객들이 이 마음과 감성을 이해해 줄까?'라는 물음표가 있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연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던 시기라 연기에 대한 물음표가 있는 지점을 고두심 선생님과 함께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연기하면서 의지하고, 의외로 친구처럼 편하게 촬영할 수 있어서 지난해 두 달 동안이 행복했던 시간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고두심에게는 지현우와 특별한 감정을 나누는 연기가 49년 연기 인생 동안 가장 파격적인 도전이었다. 그는 "나는 대한민국에서 배우 생활을 하면서 멜로물에 목말라 하는 배우였다. 그런데 이런 멜로가 있는, 그것도 아주 파격적이고 나이를 초월한 역할이어서 상당히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며 "'나이 많은 배우와의 멜로에 누가 걸려들어서 할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지현우와 하게 됐다. 지현우가 내면으로 들어갈수록 남성적인 강인함을 보여주고, 혼자 노는 것도 굉장히 잘하는 친구라서 거기에 빠져들었다"고 칭찬했다.
지현우는 앞서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한 바 있다. 20대 초반 '올드미스 다이어리'에서도 PD 역할을 맡아 예지원과 로맨스를 펼치며 국민 연하남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하지만 '빛나는 순간'에서 고두심과의 로맨스는 결이 다르다. 지현우는 고두심과의 호흡에 대해 "선생님이 촬영하면서 모든 영화 스태프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먼저 손 내밀어주시고 다가가는 모습을 보고 본받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기본적으로 소녀 같은 모습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해녀의 이야기를 다룬 '빛나는 순간'은 바다뿐만이 아닌, 숲으로 시선을 돌린 것이 특징이다. 소준문 감독은 '해녀 영화의 배경은 바다'라는 공식을 깨고, 바다에서 숲으로, 숲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아픔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제주에 집중했다. 또 한 여인을 너무나 사랑했지만 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던 한 스님이 꽃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꽃, 상사화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진옥과 경훈의 매개체가 되는 음악으로 아이유의 '밤편지'가 쓰이는 등 감성을 건드리는 지점들이 많다.
배우들과 소 감독은 마지막까지 영화의 메시지를 강조했다. 소 감독은 "비단 이 영화를 제주도의 이야기로 한정 짓기보다는, 좀 더 많은 분들이 제주도의 감성을 느끼면서 이 영화가 말하고 있는 지점들을 느꼈으면 한다"며 "이 영화의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대사처럼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게 위로의 말이 아닌가 싶다. 이 영화를 통해 그런 힘을 얻었으면 좋겠고, 본인들의 빛나는 순간을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지현우 또한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보다 감동적으로 바라봐 주시면 영화를 보고 나서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의미를 되새겼다.
한편 고두심과 지현우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빛나는 순간'은 오는 30일 개봉한다.
/추승현 기자 chus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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