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대선 열흘 가까이 지나도록 승자 발표 없어
'급진 정책 예고' 카스티요·'선거 불복' 후지모리에 유권자 양극화 심화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지난 6일 치러진 페루의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 결과가 열흘이 가까워지도록 나오지 않고 있다.
14일(현지시간) 페루 중앙선거관리위원회(ONPE)에 따르면 오후 3시경(한국시간 15일 오전 5시) 기준 99.953% 개표가 이뤄진 결과 페드로 카스티요(51) 후보가 50.137% 득표해 아슬아슬한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게이코 후지모리(45) 후보는 49.863%를 받았다.
두 후보의 표차가 5만 표도 채 되지 않는 가운데, 후지모리 후보는 뚜렷한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사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후지모리 측은 지난 11일 선거재판소(JNE)에 800여개 투표소에서 나온 20만 표를 취소하고 30만 장의 투표용지 재검토를 요청, 재판부의 결정이 나오기까지는 열흘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시골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카스티요 후보는 교원 장기노조 파업을 이끌며 이름을 알린 정치 신예로, 지난 4월 1차 투표에서 1위로 결선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켰다. 급진 좌파 막시스트 정당인 페루자유(Peru Libre) 소속으로, 광산업 등 주요산업 국유화와 개헌, 지역균형발전을 공약해 수도권을 제외한 17개 낙후 지역에서 표를 모았다.
카스티요의 당선이 확실시되면서 페루 정재계 엘리트들이 동요하고 있다. 보수 성향 후지모리 후보가 3선째 대선에 출마하도록 줄곧 반대해온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정치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조차 "이번에는 후지모리가 차악이다. 사람이 아닌 시스템을 뽑는 선거"라며 후지모리를 지지했지만, 더 많은 대중은 변화를 택했다.
AFP 통신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 카스티요를 뽑은 한 유권자는 "후지모리는 너무 많은 장애물을 놓았다. 의회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했을 때 모든 것을 막았고, 이는 우리 페루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이유"라며 후지모리를 반대한 이유를 밝혔다.
일본계 후지모리는 한국어로 '국민의 힘'으로도 번역되는 민중권력당(Fuerza Popular) 대표로, 유력 정치인이다. 1990년부터 10년간 집권한 아버지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이 인권침해, 부패 등 혐의로 2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사면된 탓에 '부패한 독재자의 딸'로 불린다. 아버지 재임 당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며 높인 인지도를 바탕으로 정계에 진출해 보수 진영을 이끌어왔다.
급진적인 카스티요 후보의 승리를 앞두고 중남미 지역 '핑크타이드'(좌파 물결)이 다시 꿈틀댈 것이란 관측이 나오지만, 최근 페루의 정치·경제가 극심한 혼란은 겪어온 탓에 전망은 엇갈린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승패가 근소차로 결정나는 만큼 유권자들 간 양극화 현상도 심화할 전망이다. 이미 두 후보의 지지자들은 각각의 후보를 지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페루 남부 출신 한 유권자는 "이전 정부에서 소외된 느낌이 들어 카스티요에게 투표했다. 그들(이전 정부 지도자들)은 너무 많은 약속을 했지만 물조차 들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보수 성향이 강한 수도 리마의 한 유권자는 "이번 결선투표에서 어느 후보에게도 투표하지 카스티요의 급격한 변화가 걱정된다"면서 "나라가 또 다른 베네수엘라가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겠다.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가려 한다"고 했다.
지지자들에게 승리 선언을 한 카스티요 후보는 최근 요동치는 시장을 달래기 위해 "우리 정부는 민주주의와 현행 헌법을 존중하고, 금융과 경제 안정성을 도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정부가 이런 기조를 유지할지, 급진 좌파인 당의 뿌리로 돌아갈지는 불분명하다고 AFP는 관측했다.
카스티요 후보는 유세 기간 광물·석유·수력·가스·통신 등 주요 산업 국유화를 목표로 한 국가 주도 경제 개혁을 공약하고, "우리 페루의 부는 페루에 있어야 한다. 1993년 채택한 시장사회경제로 불리는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은 국익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면서 "이를 전면 개혁해 '시장과 함께 가는 국민 경제'를 만들겠다"고 강조해왔다.
sab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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