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귀은의멜랑콜리아] 자서전과 정치인

황온중 2021. 6. 14.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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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은 과거의 업적·성취 담아
무엇인가를 시작하려는 사람이
자서전을 쓴다는 것은 아이러니
능력 알리고 싶다면 행동이 최선

최근 한 정치인의 회고록을 둘러싸고 공방이 있었지만 금세 막을 내렸다. 한국사회 정치 여론 문화가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 정치인의 회고록은 고차원적인 독법이 필요한 텍스트가 아니었고, 유의미한 문제 제기를 불러일으키는 담론도 아니었다. 성숙한 여론은 그런 회고록을 성토하지 않는다. 논쟁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가치 있는 논쟁만이 민주주의다.

이 글 또한 그 회고록에 관한 내용이 아니다. 회고록이나 자서전의 장르적 특징에 관한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의 출간이 잇따르고 있으니 한번쯤 인문학적 차원에서 자서전이란 무엇인가를 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대필 자서전’은 논외로 한다. 대필 자서전을 출간한 사람에 대해 정치인으로서의 자격을 운운할 필요도 없다. 인간으로서도 무능하고 비윤리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한귀은 경상대 교수 작가
모든 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이다. 그 세계를 지배하는 주체는 ‘나’라는 스토리텔러이다. 특히 자전적 스토리에서 ‘나’는 권력자이다. 그 권력적 화자는 세계를 자기 식대로 ‘해석’한다. 텍스트 속 세계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아니라 해석된 세계, 편집되고 허구화된 세계이다. 시모어 채트먼의 서사 소통 체계를 참조하면 알 수 있다. 이야기 속 화자는 실제 저자가 아니라 다소 허구화된 ‘내포 저자’이며, 그 내포 저자는 실제 독자가 아니라 ‘내포 독자’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실제 독자는 ‘내포 독자’의 자리로 옮겨가 그 이야기를 향유한다. 내포 저자는 신비화되고, 매우 자주 실제 저자와 혼동되다가 결국 같은 존재인 듯 착각된다. 자서전 속 주인공의 신화화는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독자가 일상을 잊고 책 속에 몰입하면서 내포 독자로서 그 이야기에 빠져 있는 사이, 주인공에 대한 환상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칼럼을 쓸 때조차 그렇다. 자연인 한아무개와 칼럼니스트로서 컴퓨터 앞에 앉은 한아무개 사이에는 갭이 있다. 자서전은 이 갭이 최대치가 되는 장르일 것이다. 자서전의 이런 딜레마를 알았는지 앞서 언급했던 그 정치인은 자신의 책은 ‘자서전’이 아니라 ‘회고록이’라고 강조했다. 회고록과 자서전이 그토록 변별되는 장르인지는 잘 모르겠다. 회고록은 자서전의 한 종류이다. 회고록은 ‘사건과 상황’ 중심으로, 자서전은 개인의 ‘일대기’ 중심으로 쓰는 장르라고 사전적 의미의 구분이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회고록이 더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건과 상황에 대해 아전인수 격의 해석이 농후하다면, 그것을 두고 좋은 회고록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자서전이든 회고록이든, 그것을 출간한다는 것만으로 저자의 자기 확신을 증명한다. 저자는 책에 모든 것이 담겨 있고,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실이라 주장한다. “회의가 없는 자서전이야말로 영락없이 한 거인의 동상에 불과할 뿐”, “한 인간의 생애에서 이처럼이나 말끔하게 후회나 의구가 없을 수 있단 말인가”. 이청준의 소설 ‘자서전들 쓰십시다’에 나오는 말이다. 자서전에서 우리는 종종 확신에 찬, 회의도, 의구도 없는 주인공을 만난다. 부끄러움은 읽는 이의 몫이다.

모든 사실은 그것을 사실대로 쓸 때조차 거짓이 될 가능성이 생긴다. 언어화는 허구화를 의미한다. 프레드릭 제임슨이 이런 언어의 한계를 ‘언어의 감옥’이라 말한 바 있다. 사건과 사실 중 일부를 선택하고, 그 선택한 것을 재구성하고, 몇 가지는 삭제하고, 생각을 실제처럼 표현하고, 더하여 권력적 화자의 해석을 붙인다면, 그 화자의 권위 때문에 해석은 완벽한 진실처럼 스토리 위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책 표지에 저자의 모습이 드라마틱하게 드리워져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어떤 순간을 포착한 듯한 저자의 사진은 그 표지 자체로 풍부한 아우라를 자아낼 것이다. 이미지의 시대, 독자가 이미지에 압도되지 않기란 쉽지 않다. 권력자의 자전적 서사는 자기 전시와 자기 미화를 거쳐 자기 신화화로 이어진다. 텍스트의 스타일이 좋다면 이 과정은 더욱 효율적으로 일어난다.

대중문화의 퍼스트 레이디라고 불렸던 수전 손택의 말대로, 중요한 것은 스타일이다. 우리는 어떤 텍스트의 내용 자체에 끌린다기보다는 내용과 형식의 혼융인 스타일에 끌린다. 진실의 내용을 텍스트에서 추출하기는 어렵다. 내용은 이미 스타일로 화학 변화를 일으킨 다음이기 때문이다. 필력이 우수한 저자가 쓴 아름다운 문체의 텍스트는 매혹적이고, 독자는 내용의 진위를 따지기도 전에 텍스트에 매료되어 버린다.

그러나 자서전과 회고록은 ‘끝’을 증명한다. 그것은 과거의 업적과 성취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선거 후보자가,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사람이 자서전을 쓴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만약 자신의 업적과 능력을 알리고 싶다면 자서전이라는 민망한 장르를 오히려 피해야 한다. 현재형의 행동이 최선이다. 행동하는 자는 자서전을 쓸 여유가 없다. 자서전에 기대 대중에게 이미지를 각인시킬 이유도 없다. 지금 말하고 실천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둘로 나뉜다. 자서전이 있는 정치인과 없는 정치인. 어느 쪽에 더 믿음이 가는가.

한귀은 경상대 교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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