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족한 취향과 나만의 리듬대로.."회사 밖에서 길을 만들었죠" [인터뷰]

심윤지 기자 2021. 6. 14.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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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겸 프로듀서 디디한

[경향신문]

서울을 중심으로 아시아, 유럽 등지에서 활동 중인 DJ 디디한(왼쪽)은 최근 김완선(오른쪽)이 피처링한 새 싱글 <What You Love>를 발표했다. 코로나19로 대부분 공연 일정이 취소된 후에는 유튜브에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믹스셋(작은 사진)을 올리고 있다. 디디한 제공
데뷔 후 소속사 없이 활동하다
최근 프랑스 로셰뮤직에 합류
“첫 싱글 때 레이블에 200통 메일
무응답이었지만 상처 안 받았죠”

“안녕하세요. 저는 DJ 겸 프로듀서 디디한이라고 합니다.”

정중한 자기소개로 시작한 보도자료가 눈에 띄었다. 서울을 중심으로 아시아·유럽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 중인 DJ 디디한(30·본명 한단비)이 지난 4일 새 싱글 <What You Love>를 발매했다는 내용이었다. 한국 소속사나 홍보대행사가 없던 그는 언론사 문화부 기자들 e메일 주소를 하나하나 찾아 직접 쓴 보도자료를 보냈다. 원하는 길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걸어가는 과단성. 이는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그가 한국 클럽신을 대표하는 DJ가 될 수 있었던 동력이다.

데뷔 후 줄곧 소속사 없이 활동하던 디디한은 최근 프랑스 유명 레이블 로셰뮤직(Roche Musique)에 합류했다. 로셰뮤직은 FKJ, 다리우스 같은 유명 뮤지션이 소속된 ‘인디음악의 명가’로 불린다.

“코로나19 시기인 만큼 비대면 라이브 공연을 해달라는 제안이 먼저 왔어요. 협업을 하는 김에 ‘음악 만든 거 있는데 들어볼래? 너희 레이블이랑 발매하면 좋을 거 같아’라고 가벼운 마음으로 제안을 했더니 그쪽에서 좋다고 하더라고요. 2019년 첫 싱글을 냈을 때도 거의 모든 레이블에 200통 넘게 e메일을 보냈는데 답장은 하나도 안 왔어요. 저는 그런 걸로는 상처 안 받아요.”

지난 7일 서울 한남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의 말투는 차분하지만 단단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에도 그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공연을 했고, 발리에서 음악을 만들었다. 정식 미니앨범(EP)이 발매되는 오는 7월엔 프랑스 파리에 있는 회사로 떠난다. 국경이 없는 삶, 몇년 전까지만 해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삶의 방식이었다.

회사 다닐 때 생각하며 쓴 곡에
얹어낸 디바 김완선의 목소리
“ ‘이 리듬이 아니야’ 이 가사가
울림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는 원래 무대 액세서리를 제작하는 디자이너였다. 하지만 대중과 타협하지 못하는 뾰족한 취향, 판매량이라는 숫자로 계량화되는 창작 과정 때문에 고민이 깊었다. 그러다 우연히 듣게 된 니컬러스 자르의 믹스셋은 음악을 하고 싶다는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한 편의 영화 같았어요.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거예요. 나도 이런 거 하고 싶다 생각했죠.”

평생 미술을 해온 그가 DJ를 직업으로 삼게 된 건, 타협 없이 간직해온 그 뾰족한 취향 덕이다. “대학에서 졸업 패션쇼를 할 때부터 제가 음악 좋아하는 걸 알고 ‘음악 디렉팅을 해달라’는 주변의 권유를 많이 받았어요. 입사한 회사에서도 첫 달 학원비를 대줄 테니 DJ를 배워보라고 했죠. 친구들이 연 파티에서 음악을 틀고, 그 파티에 온 사람의 추천으로 다른 클럽에서 음악을 틀고…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DJ가 직업이 되어 있었죠.”

하우스, 테크노, 펑크, 힙합, R&B까지. 그의 음악 취향은 어느 한 장르에 갇히지 않는다. 미리 선곡 리스트를 준비하기보다 그날의 분위기와 사람들 반응을 보며 즉흥적으로 트는 편을 선호한다. 그는 DJ라는 직업을 ‘선곡해주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클럽에서 음악 트는 DJ만 DJ가 아니다”라며 “카페 아르바이트생도 자신의 취향에 따라 음악을 튼다면 DJ”라고 했다.

2019년부터는 프로듀서로도 변신했다. 평소 좋아하는 여행지였던 발리에서 영감을 얻은 새 싱글 ‘What You Love’는 발레릭 재즈, 네오디스코, 클래식하우스 같은 여러 장르를 자신만의 느낌으로 풀어낸 댄스곡이다. 여름을 연상케 하는 몽글몽글한 멜로디 위에 1990년대 디바 김완선의 목소리가 얹어졌다.

“<2020 김완선>의 ‘yellow’라는 트랙을 우연히 들었는데 너무 세련되고 좋은 거예요. 듣자마자 제 곡에 잘 어울리겠다 싶었죠. 우연히 만날 기회가 생겨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먼저 명함을 드렸어요. 유명한 분이라 피처링을 제안한 건 아니었어요. 오히려 ‘왜 이렇게 유명하셔서 작업하기가 힘든 거야’라고 한탄했죠(웃음).”

그는 이 곡에서 처음으로 작사에 도전했다. 가장 좋아하는 가사는 “이 리듬이 아니야”. 회사에 다녔을 시간을 생각하며 썼다고 한다.

“저는 완선 언니가 있는 곳이 ‘유토피아’라고 생각했어요. 그분 같은 커리어면 창작을 쉴 수도 있는데 계속해서 꿈을 꾸고 계시는 게 멋있어요. 누구나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고 자기 리듬에 맞지 않게 살게 될 때가 있잖아요. 그들에게 언니 목소리로 전해지는 이 가사가 울림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디자이너에서 DJ로, 서울에서 파리로. 디디한은 자신만의 리듬에 맞춰 비정형의 길을 닦아가고 있다. 그는 월급쟁이 디자이너와 국경 없이 활동하는 DJ 중 어느 삶이 좋냐는 질문에 “사실 지금도 월급 받고 일하고 싶다”며 파하하 웃었다.

“저는 회사 다닐 때도 금요일에 캐리어 끌고 퇴근해서 월요일에 그대로 출근하곤 했어요. 퇴근하면 온전히 제 삶이었죠. 프리랜서로 사는 지금은 일이 많으면 많아 힘들고 없으면 없는 대로 힘들어요. 막상 그 삶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못할 것 같지만요(웃음).”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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