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들리는 대로 느끼세요" 전방위 예술가 백현진 개인전
미술·음악·연기 넘나드는 작가
다양한 장르 60개 작품 전시
[경향신문]
하얀 벽면의 현대미술 작품을 보고 난감함을 느끼는 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심지어 전시해설조차 없다면? 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얼룩덜룩한 추상 화면들을 마주한다. 천장 구석에도 작은 캔버스들이 붙어 있다. 제목은 ‘자살 방지용 그림: 타일 네 조각’. 자살방지타일이라니, 문양 같은 형상이 유행 지난 타일스럽긴 하다. 자살방지용이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기운을 내라는 것인가. 덩그러니 놓인 화분에는 시든 화초 위 유리 조각이 살포시 놓여 있다. 제목은 ‘씨발’.
작가는 전시를 앞두고 갤러리 측에 다음과 같은 짧은 문장을 보냈다고 한다. “관람객이 각자 보고 들리는 대로 관람하시기를 희망한다.”
PKM갤러리에서 열리는 백현진 개인전 <말보다는>은 회화, 조각, 설치, 음악, 비디오, 공연, 대본, 퍼포먼스, 연기로 구성된 총 60개의 작품을 전시한다. 최근 드라마 <모범택시>에서 갑질 회장으로 미친 연기를 선보인 백현진은 배우 이전에 유명한 현대미술 작가다.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보에 올랐을 정도. 인디밴드 어어부 프로젝트와 방백에서도 활동한다. 미술, 음악, 연기를 넘나드는 전방위 예술가다.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백현진은 3년간 준비한 이번 전시에서 ‘텍스트’를 없앴다. “제 경우 작품을 보는 데 있어 텍스트들이 재미가 없고, 방해가 되는 것 같기도 했어요. 작품이나 곡이 ‘어떤 겁니다’ 설명하는 게 저한테는 맞지 않는 거 같아요.” 삐딱한 제스처일까. 아니면 장르를 넘나드는 활동처럼 작품 역시 무어라 규정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일까. “한 명 한 명이 느끼는 게 맞다고 봅니다. 제 작업이 전혀 쓸모없는 무엇이라고 하면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작품 제목은 꽤 구체적이다. 검은 바탕에 흰 색면이 칠해진 ‘밝은 어두움’이라든지, ‘드나듦’ ‘굴러가지 않는 날’ ‘농담과 통곡의 벽지’ 등등. 그렇다고 제목이 화면 속 무엇을 지시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제목은 별명 같은 건데,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저는 뭘 그리겠다고 하는 건 아니고, 불쑥 시작됐다가 어떻게 끝이 납니다. 연애도 그렇고 사람 사는 것도 마찬가지잖아요.”
‘생분해 가능한 것’이라는 작품들은 제목 그대로다. 생분해 재료로 그렸다. “역병의 시절을 지나면서 뭘 이렇게 만드는 게 괜찮을까. 작업의 속성을 바꿔나가자고 생각했어요. 쿨한 컬렉터가 그림을 비싸게 사서 ‘웃기는 작가네’ 하고 자연으로 보내 사라지면 진짜 멋지겠죠.”
최근 솔비, 하정우 등 ‘연예인 화가’들이 늘고 있다. 백현진은 그들과 무엇이 다르냐는 질문에 그가 답했다. “그건 제 비즈니스가 아니에요. 관심이 없어요. 어떤 분이든 그림 그리는 걸 환영합니다. 저는 아티스트, 배우 이런 거 중요하지 않고요. 그냥 제 볼일을 보는 겁니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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