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대선, 좌파 카스티요 이겼지만 아직 이긴 게 아니다

이윤정 기자 2021. 6. 14.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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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페루 대통령 선거에서 1위를 기록한 자유페루당의 페드로 카스티요 후보(위 사진)와 “개표 무효”를 주장하고 있는 득표율 2위의 민중권력당 게이코 후지모리 후보. 리마 | AFP·AP연합뉴스
후지모리와 4만9000여표 차
선거 사기 의혹 제기에 혼란
전·현 남미 대통령들 ‘축하’
의회 130석 중 40여석만 좌파
공약들, 우파 반발에 막힐 듯
최악 ‘탄핵 시나리오’까지

두 후보 간 표차는 불과 4만9000여표. 득표율 차는 0.3%포인트.

좌우 양극단 포퓰리스트 후보들의 초박빙 대결로 치러진 페루 대선 승자 발표가 일주일이 지난 13일(현지시간)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재 검토 중인 표는 1만6000표에 불과해 앞서고 있는 좌파 자유페루당 후보 페드로 카스티요의 승리가 유력한 상황이다. 패배자 운명에 놓인 우파 민중권력당 후보 게이코 후지모리는 선거사기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페루 선거당국은 물론 국제 선거감시단도 선거부정을 발견하지 못한 상태다.

다만 페루 역사상 최초 원주민 좌파 대통령 ‘카스티요 시대’가 열려도 극심하게 갈린 여론 속에 사회적 혼란과 실정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날 페루 현지 안디나통신은 개표가 100% 진행된 상황에서 특별 선거 배심원단이 오류가 있는 표들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검토 중인 표가 1만6000표 정도에 불과해 승부를 뒤집긴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미 지난 12일 카스티요는 승리를 확신하며 수도 리마에 있는 자유페루당 당사에서 지지자들에게 “페루가 깨어났다. 국민 모두를 위한 페루로 회복시키자”고 연설을 했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비롯해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 등 전·현직 남미 대통령들도 축하인사를 건네고 있다.

후지모리는 일부 투표소에서 부정이 의심된다며 이미 집계된 20만표의 무효화를 요구하고 있다. 명확한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12일 지지자들을 이끌고 리마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페루 선거관리 당국은 물론 아메리카대륙 35개국이 가입한 미주기구(OAS) 선거감시단도 “심각한 부정을 감지하지 못했다”는 예비보고서를 발표했다.

승자 발표가 미뤄지는 사이 페루는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남미전문 계간지 아메리카스쿼털리는 “카스티요가 대통령에 올라도 분열된 여론 속에 실정을 펼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우선 의회 내 좌파 장악력이 약하다. 지난해 선거에서 자유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를 강조하는 당들이 약진하면서 좌파 정당은 전체 130석 중 40여석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카스티요는 광산업 등 국가 주요산업 이익의 70%를 국가운영에 쓰고, 국내총생산(GDP)의 20%를 교육과 의료에 지출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중도우파 의원들의 큰 반발에 부딪칠 것으로 보인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초등교사’ 출신 대통령 카스티요가 의회 절차를 무시하고 “데스고비에르노(실정·악정)”에 빠져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페루가톨릭대학 정치학자인 아르투로 말도나도 교수는 “카스티요가 의회에 등을 돌리고 중요한 사안은 모두 국민투표에 부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이후 시나리오는 탄핵이다. 지난해 의회는 비리 의혹이 제기된 마르틴 비스카라 전 대통령에 대해 검찰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탄핵을 결정했고 페루 정국은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부자 나라에 가난한 사람은 없다”면서 개혁을 예고한 카스티요가 페루에 만연한 부패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도 관심을 모은다. 당장 경쟁자 후지모리가 부패 혐의를 받고 있다. 대선에서 패배하면 면책특권을 얻지 못해 감옥에 가야 한다. 검찰은 32년형 구형을 예고했다. 국제투명성기구 페루 지부장인 사무엘 로타는 “후지모리 재판이 카스티요의 반부패 전략의 첫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라면서 “부패와의 싸움은 그의 대통령직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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