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마인', 재벌가 '핏줄' 클리셰 부수는 여성들의 낯선 연대

김지혜 기자 2021. 6. 1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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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tvN 드라마 <마인>의 세 주인공 서희수, 이혜진, 정서현(왼쪽부터)은 부계 혈통주의로 점철된 재벌 효원가의 폭력으로부터 자신만의 ‘내 것’을 지켜나가는 여성 연대를 보여준다. tvN 캡처


“형수님은 절대 안 된다는 거 잘 아시잖아요.” “효원가 직계 혈통이 아니라서요”

tvN 토일드라마 <마인>은 혈통과 상속에 대한 이야기다. 배경은 차기 회장을 물색 중인 재벌가 ‘효원’. 드라마는 적자와 서자 중 ‘상속자’는 누구인지, 생모와 양모 중 ‘진짜 엄마’는 누구인지 집요하게 묻는다. 흥미로운 질문은 아니다. 홍길동이 사는 조선시대도 아닌데 적·서자가 갈등하고 ‘축첩’이 공공연하게 대물림되는 황당한 상황에 헛웃음부터 터진다.

그저 그런 ‘재벌가 클리셰’로 엮어낸 드라마 같았다. 그런데 새롭다. 21세기에 여전히 “직계 혈통” 운운하는 클리셰 앞에 <마인>이 띄우는 뜻밖의 질문 때문이다. 부계 혈통 상속만이 소유의 유일한 ‘룰’이 되는 이 이상한 세계에서, ‘진짜 나의 것(Mine)’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애초 그 ‘룰’을 만든 가부장적 편견부터 돌아봐야 하는 것 아닐까. <마인>은 질문의 답을 찾듯, ‘스스로 소유’하는 여성들의 연대로 직접 재현한 클리셰를 뒤집어버린다. 전복의 쾌감 덕분인지 <마인>은 지난 13일 방송된 12회에서 자체 최고 시청률인 9.5%(닐슨코리아 제공)를 기록했다.

아들 하준을 두고 생모와 양모의 갈등 구조를 형성하던 희수와 혜진은 결국 효원이라는 공동의 적으로부터 하준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연대한다.tvN 캡처


“그게 이쪽 세계 남자들 전통이에요. 어디 세컨드만 있게요? 퍼스트는 그냥 뭐 비즈니스, 세컨드가 실제 부인, 서드가 진짜 애인이에요.”

효원가 가사 종업원들이 말하듯, ‘축첩’은 재벌가 남자들의 ‘전통’처럼 여겨진다. 결혼하고도 연애를 멈출 줄 모르는 “회장님 대물림” 때문에, 효원가 여자들은 “자기 자식 아닌 애들을 다 키워주고 있”다. 이상해도 별 수 없다. 이곳은 아버지와 아들을 중심으로 “카스트가 철저하게 존재”하는 “어나더 월드”다. 종업원의 시선을 빌려 이 괴상한 세계를 비꼬던 <마인>의 블랙 코미디는, 효원 한 회장(정동환)의 아내 양순혜(박원숙)의 분노를 비출 때 정점에 달한다. 한 회장이 병석에 눕자, 평생 한 회장의 애인인 김미자를 질투했던 순혜의 마음은 지옥이 된다. 친아들 진호(박혁권)를 차기 회장에 앉히고 싶은데, 김미자의 아들인 지용(이현욱)이 워낙 출중해 보인다.

혼외자인 지용 역시 입지가 불안한 건 마찬가지다. 그에게 ‘혈통’은 평생을 열망해 온, 효원과 자신을 이어줄 ‘자격증’ 같은 것이다. 아들 하준(정현준)을 길러준 아내 희수(이보영)나, 아들의 친모인 혜진(옥자연)이나 그에게는 혈통을 보존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사실 이 집안 사람들 다수가 그렇게 사고한다. 진호는 제 아들 수혁(차학연)이 회장 자리를 고사했다는 데 분노하며 집에서 내쫓는다. 지용에게 “피 한 방울 안 섞인 잡놈”이 “효원의 황제”가 됐다며 윽박지르지만, 진호는 정작 ‘피 섞인’ 아들에겐 아무런 관심도 없다. “진짜 아빠라는 사람이 아들이 뭘 원하는지 왜 모르고 살았냐”는 아내의 힐난 앞에서도 느끼는 게 없다. 그에게 “진짜 아빠”는 상속의 통로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지용에게 효원을 물려주려던 한 회장의 결단은 진호에겐 영원한 ‘이해 불가’의 영역에 남는다.

서현의 ‘내 것’은 옛 연인 수지 최(김정화)다. 그는 오랜 번민 끝에 자신의 사랑을 인정하고 표현하는 데 성공한다. tvN 캡처


“나 내꺼 다시 찾아야겠어. 내 아이, 내 남자, 내 잃어버린 시간 다.” 극 초반, 희수에게 ‘생모’로서의 자신을 내세우는 혜진은 혈통과 상속에 절절매는 남자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낳은 아들 하준을 통해 효원가에 입성하려는 흔한 ‘악녀’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준을 향한 희수의 깊은 모성애가 드러날수록, 드라마는 혜진을 둘러싼 ‘악녀’ 프레임이 ‘착시’일 뿐이었음을 분명히 한다. 혜진이 원한 것은 상속의 자격증 따위가 아니라, 그저 아들과의 삶이었다. 아버지에게 더 많이 물려받기 위해 효원가 ‘직계 혈통’들이 악다구니를 쓰는 동안, 부계 혈통주의에서 주변화된 여성들은 누구에게도 물려받지 않은 자신만의 ‘내 것’을 위한 분투를 시작한다.

“그 아이의 우주를 내가 만들었고 손발톱을 깎았고 교감했어요. 그것도 아주 강렬하게.” 희수의 ‘내 것’은 낳지 않은 아들 하준이다. 하준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드러내는 그의 대사는 순혜부터 지용까지 효원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핏줄의 문제’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든다. 동성 연인과의 사랑을 과거에 묻고, 효원가를 호령하는 유능한 맏며느리로 살아가려던 서현(김서형) 역시 그야말로 ‘미쳐 돌아가는’ 효원가의 복판에서 변화하기 시작한다. 서현의 ‘내 것’은 옛 연인 수지 최(김정화)다. 그는 오랜 번민 끝에 자신의 사랑을 인정하고 표현하는 데 성공한다. 희수와 서현이 사랑하는 ‘내 것’은, 효원가의 근본을 떠받친 혈통과 상속의 문제와 무관하다. 오히려 이들이 ‘내 것’을 지키기 위해 뛰어넘어야 하는 지독한 폐습일 뿐이다.

희수의 ‘내 것’은 낳지 않은 아들 하준이다. 하준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드러내는 그의 대사는 순혜부터 지용까지 효원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핏줄의 문제’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든다. tvN 캡처


“동서가 부수고 싶은 건 뭔데”(서현), “형님은요”(희수), “세상의 편견.”(서현)

드라마 속 아들들이 ‘아버지 사랑’에 집착하며 마땅한 몫을 놓칠세라 열등감에 신음할 때, 서현과 희수 그리고 혜진은 ‘세상의 편견’에 불과한 혈통주의와 가부장제의 허상을 본다. 이들은 가부장적 폐습으로 망가진 효원을 바로잡고 혈통주의 굴레에서 하준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연대한다. 상속 다툼으로 점철된 ‘재벌가 클리셰’로 시작해, 그 클리셰를 부수고 ‘스스로 소유’하는 여성들 이야기로 나아가는 드라마라니. 그 전복이 아주 매끄럽지는 않지만 꽤 흥미롭다. 부계 상속이 기본인 ‘재벌가 클리셰’의 시효가 이제는 정말 다했다고, 사랑스러운 ‘상속자들’을 뒷받친 혈통주의의 폭력을 직시할 때가 됐다고 말하는 드라마가 드디어 나왔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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