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들 작업 따라하기 10여년 만에 '작가' 이름 얻었어요"

강성만 2021. 6. 14.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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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첫번째 도예 전시회 연 길일행씨
가족이 함께 설립한 장호원의 인크루미술관에서 난생 첫 전시회를 하고 있는 길일행씨가 도예로 빚은 종이배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강성만 기자

“신기해.” 어머니 길일행(60)씨 작품을 어떻게 봤냐고 묻자 다운증후군 장애가 있는 아들 이안욱(32) 관장이 종이에 쓴 글이다. 길씨는 지난 5일부터 오는 20일까지 아들이 관장인 경기 이천시 장호원읍 장호원 인크루미술관에서 <낮에 놀다 두고 온> 제목으로 난생처음 전시회를 하고 있다. 종이배 모양의 도예품 20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그와 남편 이창기(62) 시인은 2년 전 여름 도예작가인 아들을 위해 정부 지원금과 사재를 보태 이 미술관을 열었다. 이 관장은 2015년 이후 모두 4차례 도예 개인전을 열었다. 첫 전시회 때는 이제하 작가 등의 호평이 쏟아지며 적잖은 작품이 팔리기도 했다. 가족 중 가장 늦게 예술가 호칭을 얻은 길씨를 지난 7일 미술관에서 만났다.

다운증후군 아들과 30여 년 동행중
2010년 여주대 도예과 함께 ‘입학’
2015년 아들 이안욱 작가로 ‘데뷔’
2년 전 장호원 인크루미술관도 설립

올초 동생 잃고 ‘삶과 죽음’ 성찰
“남편·아들 지지 덕분 ‘전시’ 결심”

왼쪽부터 길일행씨와 남편 이창기 시인, 아들 이안욱 작가. 강성만 선임기자

어머니는 아들과 동행하며 도예를 만났다. 2010년 아들과 함께 여주대 도예과에 입학한 것이다. 아들이 대학을 중퇴하고 2011년 한국세라믹기술원 이천분원 계약직 직원이 된 뒤로는 6년 동안 아들과 함께 출퇴근했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도 4년 동안 학교 생활을 같이했다. 3학년 초부터 11월까지는 복도에서 아들의 모습을 지켜봤고 4~5학년 때는 교실에서 아예 아들과 짝을 했고 6학년 때는 학교 도서관에서 대기했다. 아들의 미래를 생각해 힘겹게 일반 학교에 등록했으나 장애아를 돌볼 보조교사가 없어 그가 대신 나선 것이다.

어머니는 아들이 중학교(일반학교 특수학급)와 고교(도예고)를 다닐 때에야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해봤다. 자기만의 시간이 생긴 것이다. “방과후 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쳤는데 아이들이 좋아했어요. ‘아버지’ 제목으로 시 쓰기를 가르치면서 가수 지오디의 노랫말 같은 유행가 가사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끄집어내 질문을 던졌죠. 아이들한테 칭찬도 많이 했죠. 그 시간에는 안욱이에 대한 걱정도 잠시 잊을 수 있었어요.”

그와 남편은 서울예술전문대(현 서울예술대) 문창과 선후배 사이다. 2002년과 2004년에는 장애아 엄마로 살아가는 체험 에세이 <엄마는 4학년>과 <아이들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펴내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사실 그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도예 창작에 큰 흥미가 없었다. “내 작업을 하면 안욱이한테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어요. 장애 아이들은 배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요. 늘 아이 옆에서 집중해야 합니다. 지난 10여 년 아들 옆에서 초벌 접시에 그림을 그리거나 그릇을 만들어 바자회에 내놓기도 했지만 심심풀이로 생각했죠.”

하지만 지난 1월 ‘동생의 죽음’과 마주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단다. “동생을 보내고 삶의 의욕을 많이 잃었어요. 그때 제가 상품으로만 생각하고 만든 종이배로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시회를 해보라는 남편 권유도 있었고요.”

길일행씨의 전시작품 ‘꿈’. 사진 안홍범 작가
길일행씨 전시 작품 ‘옛 이야기’. 사진 안홍범 작가

전시작 ‘옛이야기’를 보니 종이배들이 쇠꼬챙이 위에 매달려 있다. 다른 작품 ‘하늘의 궁전’이나 ‘북두칠성’은 종이배가 별이 되었다. “강물 위에 잠깐 떠 있는 종이배가 삶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려서 종이배를 띄우고 놀 때 늘 멀리 가기를 바라지만 얼마 못 가 기울어지거나 뒤집히잖아요. 종이배를 쇠 위에 꽂은 것도 사람들이 저마다 위태롭게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였어요. 하늘을 오르는 종이배로는 그까짓 인간의 상처는 별게 아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

전시는 가족의 협업이기도 하다. 아들은 배에 무늬를 붙이는 전사 작업도 돕고 직접 배에 그림도 그렸다. 남편은 용접기를 장만해 꼬챙이 위에 배를 올려주었다. “전시를 위해 6개월 동안 종이배 250개를 새로 만들었어요. 그 사이 안욱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저녁 먹고 식탁 위에서 전사 작업을 도왔어요. 밤 12시까지 며칠 동안 그렇게 했죠. 제가 만든 화려한 색감의 배를 보고는 예쁘다고 종이에 쓰더군요.”

길씨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누군가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단다. “오롯이 내 전시회를 위해 아들과 남편이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어요.” 37년 전 등단해 <착한 애인은 없다네> 등 4권의 시집을 낸 남편은 아내에게 전시회를 권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가족 셋이 언제나 같은 공간에서 살아야 합니다. 아들이 작품을 만들면 아내가 늘 가마에 불을 땝니다. 누군가를 따라 하기만 하면 재미가 없어요. 아내도 주체적으로 창작을 하면 가족이 같은 공간에서 사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죠.”

길일행씨의 아들 이안욱 작가가 만든 ‘종이배’. 사진 안홍범 작가

길씨는 “할 수 있다면 다음엔 안욱이와 공동 전시를 하고 싶다”고 했다. “안욱이가 도예에 흥미를 느끼고 몰두하는 모습을 보는 게 저한테는 가장 큰 즐거움이죠. 안욱이는 타고난 예술가입니다. 저보다 뛰어나요. 흉내 내지 않고 자기만의 스타일로 그려요. 그게 예술이죠. 2년 동안 하루 하나씩 타일 그림을 그리는 꾸준함도 있고요.”

안욱은 어떤 아들이냐고 묻자 그는 “친구 같은 아들”이라고 했다. “늘 함께 시간을 보내죠. 저처럼 음악을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해요. 아이돌 음악 좋아하는 것만 빼고요. 성품도 차분해 저와 기질이 맞아요. 제가 남편을 부르는 모습도 곧잘 따라 해 웃음을 주죠.”

부부가 1997년에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장호원 농촌 마을에 이주한 것도 “안욱이가 일반 학교를 다니며 자연 속에서 뛰노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2017년부터 2년간 아들한테 변화와 자극을 주려고 제주에서 살기도 했다.

아들이 초등학생 때 장애인 복지정책의 실상을 알리는 책도 써냈던 길씨는 지금 어떤 생각일까? “고교를 마치고 하는 직업교육이 아이들한테 실질적인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제도는 있지만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아요.” 부부는 함께 이렇게 말했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도 가르치면 자기 일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많다는 사례로 안욱이를 사회에 제시하고 싶어요. 부모 대신 나라에서 돌봐준다면 누구나 안욱이처럼 될 수 있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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