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민의 글로벌 경제 톡톡 6] 미국의 철강 이기주의 극복할 한·미 동맹 시급

최용민 WTCS 대표 2021. 6. 1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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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민 WTCS 대표 광운대 경영학 박사, 한국무역협회 전 FTA 통상연구실장·전 베이징 지부장·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원장

철강은 흔히 산업의 쌀로 지칭된다. 최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여 반도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만 산업의 기초 체력은 철강에서 출발한다. 우리나라 수출을 선도하는 자동차, 조선, 기계 등에 철강 소재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다면 그 경쟁력이 사상누각에 불과하고 인류의 미래에 대한 개척을 상징하는 인공위성도 철이 없으면 꿈이 아니라 상상에만 머물 것이다. 현재도 중요도가 반도체에 뒤지지 않는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각고의 노력 끝에 철강류 글로벌 시장에서 선두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2020년 현재 세계 생산 6위, 소비 5위, 수출 3위로 남부럽지 않은 성적표를 자랑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1인당 철강 소비는 1130㎏으로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제조 강국인 독일(500㎏), 일본(493㎏) 등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결국 우리 산업 구조가 철강 집약적이고 철강의 경쟁력에 따라 전체 산업의 대외 경쟁력이 좌우됨을 의미한다.

한 철강 공장에서 철강 코일을 생산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산업의 쌀’ 철강

최근 선진국을 중심으로 경기회복이 본격화되자 철근과 H형강 등에 대한 국내 공급 부족이 심각한 수준에 달해 철강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지난 3월에 t당 70만원이던 철근 가격이 최근에는 100만원에 육박하여 40%나 뛰어올랐다.

더 큰 문제는 가격을 불문하고 제때 조달을 못 해 건설 공기를 맞추기 힘들고 일부 공장은 멈춰서 반도체 수급 불안이 철강 조달난으로 옮겨가는 것 아니냐는 비관론까지 나돌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5월부터 중국이 내수 시장을 위해 20여 개 철강 품목에 대해 수입 관세를 철폐하고 수출세를 인상(5%포인트)함과 동시에 증치세(增値稅) 환급을 폐지했다. 증치세는 우리의 부가가치세에 해당하는 것으로 환급을 폐지하면 수출에 따른 혜택이 줄어들어 중국의 글로벌 공급이 줄어든다.

최근 철광석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5월 들어 싱가포르 선물시장의 철광석 가격은 t당 226달러(약 25만원)를 기록하는 등 급등 추세다. 원료 가격 상승에다 경기회복과 중국의 수출 축소가 겹치면서 현재의 철강재 조달난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고민보다 철강 업계를 더 힘들게 하는 고질적인 문제는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다. 철강이 반덤핑, 상계관세, 세이프가드 등 무역구제조치의 주요 타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강은 작은 무역 전쟁의 주인공이자 희생양으로 그 역사가 점철되고 있다. 올해 4월 현재 우리나라는 26개국으로부터 212건(조사 중 포함)의 수입 규제를 받고 있는데 이 중 철강금속 분야가 절반에 육박하는 103건이다. 특히 미국이 철강에서만 34건의 규제조치를 취해 거의 ‘남발’하는 수준이다. 국내 철강 업계의 불만은 단순히 건수의 많음에 있지 않다. 2018년에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 232조 조치(안보를 이유로 수입을 규제)를 취해 국내 업계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미국은 한국산 철강 제품에 대해 25% 관세 부과를 면제하는 대신 수량 제한인 쿼터제(2015~2017년 3년 평균 수출 물량의 70% 수준)를 시행 중이고, 알루미늄에 대해 10%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최근처럼 경기회복으로 철강 수요가 늘어날 때는 쿼터제가 더 심각한 족쇄가 되고 있다.

더불어 중국과 같은 비시장경제 국가에나 적용하는 자의적인(?) 조치를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하여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당초 중국에 고율의 반덤핑·상계관세를 이끌어내기 위해 도입한 AFA(Adverse Facts Available·불리한 이용 가능한 자료) 및 PMS(Particular Market Situation·특별시장상황) 조항이 한국에 대해서도 빈번히 적용되고 있다. 우리의 성실한 자료 제공과 해명에도 불구하고 PMS는 유정용 강관, 송유관, 압연강판, 열연강판 등에, AFA는 단조강 부품, PET 시트 등에 각각 적용되어 관세율 고공행진에 일조하고 있다.

미국의 철강 분야 무역보호주의

미국이 유독 철강류에 대해 이해하기 힘든 수준으로 무역장벽을 높이는 것은 미국 정부의 과잉보호와 해당 업계 탐욕의 산물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미국의 철강 업계는 의회와 정부에 대해 강력하게 로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상하 양원에는 철강위원회가 있어서 보조금 및 구제금융 지급, 환경규제 면제, 미국산 제품 우선 구매법 적용 등에서 혜택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4월 말 현재 미국이 발동한 총 599건(누계)의 반덤핑 및 상계관세 중 철강 관련이 절반에 가까운 292건에 달하고 있다. 또한 2017년에 미국 내 철강 수입품 중 61%가 무역구제조치 대상이었는데 232조 조치를 추가하여 보호막을 더욱 두껍게 했다.

232조 조치가 원천적으로 문제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동 조치가 시행되기 전에 미국의 철강 생산량은 연 8000만t에 달하고 생산 능력도 1억2000t을 유지하고 있어 붕괴 상황을 염두에 둔 232조와는 거리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자국 내 시장점유율도 70%를 기록 중이어서 탄탄한 재무구조를 자랑하고 있었다. 더구나 2017년 중국으로부터의 철강 수입량은 2011년 대비 30%나 줄어든 상황이었다.

미국 철강 업계의 투자계획 철회도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사고 있다. 미국의 최대 철강업체인 US스틸은 피츠버그공장에 13억달러(약 1조4000억원)를 투자키로 약속하면서 232조에 따른 관세 인상 조치의 긍정 효과를 부각했다. 그러나 올 4월에 이 회사는 투자계획을 철회하면서 허가 지연과 공장 설비의 저탄소 기술 미비를 손꼽았다. 일각에서는 이윤 극대화를 위해 아칸소주 미니밀(고철을 활용한 철강 재생) 지분 100%를 인수하면서 신기술 투자와 고용 확대 카드를 접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진정한 한미 동맹은 산업 협력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하루빨리 미국의 규제에서 우리 철강산업을 벗어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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