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쑤~ 코로나 잡으러 '범 내려왔다'

정혁준 2021. 6. 14. 17:5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단발머리 여성은 공연 내내 머리를 까딱까딱, 어깨를 흔들흔들거렸다.

공연은 느린 곡으로 시작해 속도를 높이며 '산에서 범이 내려오듯' 흥과 '힙'을 몰고 왔다.

인천에서 아들과 함께 공연을 보러 온 류미경(47)씨는 "코로나 탓에 1년 넘게 기다리다 이제야 보게 됐다"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관객 중 한명이 "지긋지긋한 코로나를 범이 내려와 잡아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날치·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수궁가' 공연 리뷰
밴드 이날치와 현대무용단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서울 역삼동 엘지아트센터에서 ‘이날치×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수궁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엘지아트센터 제공

단발머리 여성은 공연 내내 머리를 까딱까딱, 어깨를 흔들흔들거렸다. 어떤 이는 손뼉을 짝짝 쳤고, 다른 이는 발을 탁탁 굴렀다. 흥을 주체하지 못한 관객들은 휘적휘적 리듬을 탔다.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엘지(LG)아트센터에서 열린 ‘이날치×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수궁가’ 공연에서다.

이날치는 베이스 연주자 장영규가 소리꾼 4명 등과 결성한 7인조 밴드로, 지난해 판소리와 대중음악을 결합한 1집 <수궁가>를 선보이며 주목받았다. 김보람 예술감독이 이끄는 현대무용단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는 <수궁가>의 타이틀곡 ‘범 내려온다’ 영상에서 독특한 춤을 선보이며 대중에게 각인됐다. 두 팀이 함께 <수궁가> 전 곡을 공연한 건 꼭 1년 만이다. 애초 11~12일 2회로 예정됐으나, 표를 못 구한 이들의 요구로 12일 낮 공연 1회가 더 추가됐다.

공연은 느린 곡으로 시작해 속도를 높이며 ‘산에서 범이 내려오듯’ 흥과 ‘힙’을 몰고 왔다. 첫 곡은 도사가 용왕을 진맥해 약을 처방하는 대목의 ‘약성가’였다. 묵직한 베이스가 쑥뜸처럼 그윽하게 깔리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도망가려는 토끼와 그를 잡으려는 수궁 포졸 사이의 팽팽한 기싸움을 노래한 ‘좌우나졸’에서는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랩이 터져나왔다. 판소리에서 비교적 느린 중중모리장단으로 불리는 ‘여보나리’는 흥 넘치는 댄스곡으로 바뀌었다.

4명의 소리꾼은 때론 독창으로, 때론 듀엣으로, 때론 중창으로 현대 악기의 리듬과 반주를 경쾌하게 넘나들었다. 판소리가 랩이 되고, 자진모리장단은 댄스 비트가 되어 흥을 돋웠다. 베이스와 드럼이 판소리 고수의 추임새를 대신했다.

소리는 춤으로 이어졌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는 리듬을 하나하나 쪼개 현대무용 춤사위로 살렸다. 한국무용과 셔플, 힙합, 스트리트댄스가 하나로 어우러졌다. 밴드와 댄서가 분리되는 여느 공연과 달리 춤이 노래를 이끌고, 노래가 춤으로 이어지며 하나가 됐다. 양복바지에 고무신을 신고, 갓과 선글라스를 쓴 의상 역시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앰비규어스’(ambiguous·애매모호한)라는 이름처럼 춤과 노래,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모호하게’ 사라지게 만들었다.

밴드 이날치와 현대무용단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서울 역삼동 엘지아트센터에서 ‘이날치×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수궁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엘지아트센터 제공

공연이 끝나도 관객은 떠날 줄 몰랐다. 곧 앙코르 무대가 시작됐다. 한국관광공사 홍보 영상으로도 유명한 ‘범 내려온다’였다. 댄서들은 빨간 슈트와 투구, 색동옷과 다양한 모자, 선글라스 차림으로 중독성 있는 선율에 맞춰 춤사위를 펼쳤다.

설치미술 작가 최정화가 맡은 무대미술도 신선했다. 딸기, 호박, 레몬 모양의 큰 풍선들은 점차 빨라지는 리듬과 함께 서서히 부풀며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인천에서 아들과 함께 공연을 보러 온 류미경(47)씨는 “코로나 탓에 1년 넘게 기다리다 이제야 보게 됐다”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 이정현(12)군은 “유튜브에서 ‘범 내려온다’를 보고 학교 풍물 동아리에 가입해 장구와 꽹과리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외국인 관객도 눈에 많이 띄었다. 프랑스에서 왔다는 펠릭스 램버트(35)는 “음악과 춤이 조화를 잘 이뤘고, 파워풀한 음악이 마음에 들었다”며 “파리 오페라극장에 자주 가는데, 거기서 공연하는 작품에 견줘 손색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관객 중 한명이 “지긋지긋한 코로나를 범이 내려와 잡아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주위 사람들이 고개를 끄떡였다. 이날 공연을 본 관객의 바람일 게다.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얼쑤~ 좋구나~

이들의 멋진 무대를 놓쳤다면, 영상으로라도 아쉬움을 달래면 어떨까. 수많은 유튜브 영상 속으로 범들이 끊임없이 내려오고 있으니 말이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