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인기 레스토랑 '테판'의 식재료 열전

박성준 2021. 6. 14.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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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 명문호텔 그랜드하얏트서울이 2016년 내린 결정은 ‘파격’이었다. ‘최고의 맛과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상징적 공간이었던 프렌치 레스토랑 ‘파리스 그릴’을 개장 22년 만에 문 닫았다. 대신 낯선 철판 요리점 ‘테판’을 선보였다. 일식요리점으로 테판야키 식당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사라진 게 90년대여서 장안 미식가들이 고개를 갸웃거린 선택이었다. 5년 지난 지금 파격은 정답이 됐다. 일식이 아닌 한식과 유러피안을 융합한 인터내셔널 키친으로 ‘테판‘은 무지개처럼 다양한 맛집이 넘쳐나는 경리단길과 이태원을 내려다보며 새로운 명성을 쌓아가는 최고의 레스토랑이 됐다. 이희준 총괄셰프는 그 중심에 서 있다. 코로나 시대에도 인기가 식기는커녕 예약하기가 더 어려워진 테판을 개장 때부터 이끌고 있다.

“뷔페 ‘테라스’에서 9년, ‘파리스 그릴’에서 9년을 일했는데 갑자기 ‘테판’에서 일을 하게 된 거죠. 그래서 그랜드 하얏트 홍콩 테판으로 날아가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배워야 했습니다. 요즘요? 띄어앉기를 해야 하지만 평일에도 계속 만석이에요.”

이 총괄셰프를 만나러 ‘테판’을 찾아간 날 역시 해 질 무렵부터 들어온 손님들은 어느새 30여 좌석을 가득 채웠다. 저녁 코스 첫 순서인 ‘알마스 오세트라 캐비어’부터 이 총괄셰프가 내내 자부하는 건 특별한 식재료만이 일으킬 수 있는 향미(香味)다. 관자와 훈제 베이컨 등에 어우러진 캐비어는 모양부터 다르다. 흔히 봤던 캐비어보다 크고 연한 색에 윤기가 흐른다. 15년 이상 자란 철갑상어에서 얻은 굵은 씨알에서 나오는 맛은 고소하고 무엇보다 신선하다. 국산 양식 캐비어이기에 가능한 맛이다.
이희준 그랜드 하얏트 서울 ‘테판’ 레스토랑 총괄 셰프가 철판요리의 볼거리인 불을 피워 보이고 있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 제공
철판에서 만들어지는 식도락은 완도산 전복 요리로 이어진다. 요리사의 부지런한 손은 눈앞에서 멸치 육수로 국물을 내고 역시 완도에서 자란 감칠맛 나는 곰피미역을 얹은 전복 요리를 만든다. “요즘은 식재료 싸움이에요. 완도에서 자란 미역과 6년 이상 양식된 최상급 전복을 매일 공급받습니다. 요리에 쓰이는 허브류는 직접 저희가 키워달라고 농장에 주문해서 갖다 쓰는 재료입니다.”

살아있는 전복을 눈앞에서 바로 굽고 여수에서 잡은 멸치를 훈제해서 낸 육수에 담아 내준다. 일본식 가쓰오부시 육수를 대신해서 이 총괄셰프가 만들어낸 국물이다. 자극적인 맛을 피한 국물이 속을 달래준다.

전복 요리 다음부턴 뜨거운 철판 본연의 기능을 살린 구이가 나온다. 첫 번째 순서는 제주산 흑돼지. 이 총괄셰프가 강조한 특별 주문 허브가 더해진 봄 샐러드에 파스닙 퓨레와 함께 선보인다. 감자를 으깨어 만드는 퓨레는 가장 흔한 요리이지만 그만큼 만든이 공력이 드러난다. 프렌치 셰프로 16년 일한 이 총괄셰프의 자존심이다. 요리를 배우던 시절 퓨레 만드느라 힘들었던 얘기를 하며 지금도 그때나 마찬가지로 힘들여 만들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식과 유러피안을 융합한 철판인터내셔널 레스토랑 ‘테판’ 전경. 그랜드 하얏트 서울 제공
이쯤에서 실감하는 건 요리를 만드는 이와 즐기는 이가 소통할 수밖에 없는 ‘테판’ 구조다. 두어 시간 남짓 손님과 셰프가 마주 보게 된다. 일행과 주로 대화를 한다 해도 새 요리가 나올 때마다 간단한 설명이라도 듣고 궁금한 점이 생기면 물어보게 된다. 초밥집 다찌 테이블도 비슷하나, 셰프 얼굴 볼 일 없는 다른 레스토랑과 크게 다르다.
요리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큰 볼거리이기도 하다. 게다가 ‘테판’에선 철판요리점만의 볼거리인 ‘불쇼’도 펼쳐진다. 대신 고급 레스토랑에 의레 있기 마련인 별실은 없다. 손님 모두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서비스를 받는다. 다만 최근 확장한 별도 홀은 메인 홀보다 단출한 만큼보다 친밀한 분위기고 때로는 특별한 저녁 식사를 위한 전용 공간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이 총괄셰프는 “요리 만들어지는 걸 보는 재미가 있다. 설명은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이전보다 간략해진 편”이라고 설명한다. 
고온에도 녹지 않는 요리용 특수 필름으로 만들어지는 ‘메로 파피요트’. 그랜드 하얏트 서울 제공
무르익은 ‘테판’ 만찬의 다음 코스는 ‘메로 파피요트’. 다른 곳에선 보기 힘든 ‘테판’만의 개성이 담긴 요리다. 원래 ‘파피요트’는 해산물 등을 각종 채소, 파스타, 레몬, 올리브, 허브와 함께 종이에 싸서 오븐에 굽는 프랑스 찜 요리다. ‘테판’에선 메로를 최고 300도 고온에도 녹지 않는 요리용 특수 필름에 싸서 철판 위에서 조리해 내놓는다. 메로 역시 인도양에서 잡히는 시중 상품과 달리 세계 수확량의 10% 정도에 불과한 남극 깊은 바다에서 잡은 특별한 식재료다. 조리가 끝난 요리를 받아 밀봉된 특수필름을 여는 순간 메로와 함께 담긴 아스파라거스, 버섯, 허브, 그리고 트러플 국물이 만들어낸 고소한 향기가 확 피어난다. 메로가 본래 기름진 재료인데 테판 메로는 느끼한 맛은 별로 없고 굉장히 담백한 맛이며 국물이 일품이다.

메로 파피요트 다음은 주인공 격인 ‘한우 안심구이 1+’. 뜨거운 철판 위에서 최상등급 소고기가 최적의 상태로 구어진다. ‘테판’은 철판(鉄板)의 일본식 발음인데 철판구이(테판야끼)의 근원은 결국 우리나라 부대찌개처럼 일본 미군 주둔지 근처에서 생겨난 음식으로 전해진다. 그러다 1964년 미국 뉴욕에서 처음 문 연 ‘베니하나’가 전국적인 요리 체인점으로 인기를 끌면서 세계적 요리가 됐다.

‘테판’의 널찍한 철판은 전기로 가열된다. 요리에 따라 130도, 180도, 210도 세가지 온도로 가열되는데 일본에서 고르고 골라 들여왔다. 그 두께가 일반 프라이팬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뼘 정도나 되는데 요즘 캠핑용으로 인기인 무쇠 냄비처럼 관리가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다. 초기에는 길을 들이기 위해 기름을 부어놓고 퇴근했다고 한다. 요리 전후로 매번 청소하고 길들이면서 지금은 처음보다 두께가 5㎜ 정도 얇아졌다. 그렇게 공들인 철판에서 구워지는 안심은 강원도 횡성과 경상북도 예천지역에서 사육하고 있는 프리미엄 등급 한우. 직접 재배하고 수확한 곡물을 섞은 친환경 사료를 먹이면서 스트레스를 최소화했고, 항생제나 항균제, 성장촉진제를 사용하지 않는 목장 상품이다. ‘테판’이 문 열었을 때부터 오로지 이 곳에만 공급되는 소고기다. ‘테판’의 한우 안심, 등심 소비량은 매주 250㎏, 국내 단일 식당 기준 최대 규모라고 이 총괄셰프는 설명한다. 유채나물, 마늘 매시, 순무가 곁들여지고 녹차 소금, 훈제 소금, 와사비가 간을 맞춰준다. 디너의 마무리는 한우 볶음밥. 그리고 디저트로 역시 ‘테판’에서 공들여 만든 데킬라 파인애플 플럼베가 나온다.
한뼘 두께 철판에서 숙련된 솜씨로 구워지는 ‘테판’의 시그니쳐 메뉴 ‘한우 안심구이1+’. 그랜드 하얏트 서울 제공
특별한 식재료에 대한 이 총괄셰프의 고집은 원가 부담이 적지 않은지 궁금해질 정도다. 이 총괄셰프는 “점심메뉴가 ‘가성비좋다’고 인기인데 ‘왜 값을 안 올리냐’는 이야기도 듣는다. 비용 압박이 있긴 한데 대게를 쓸 때도 있다. 때로는 손해를 보더라도 좋은 레스토랑이라면 그럴 때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단한 메뉴 개발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요리를 올리려면 식자재 조달부터 메뉴 개편까지 여러 작업이 만만치않은데 테판은 최근 스무 번째 시즌 메뉴로 식단을 개편했다. “국내에선 유일무이한, 제철 식재료로 최고의 요리를 만드는 게 ‘테판’의 일관된 컨셉입니다. 셰프는 레스토랑 방문 고객에게 감동과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야 합니다. 음식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완벽하게 전달됐을 때 고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요.”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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