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무지개 깃발을 흔든 '죄'

최윤필 2021. 6. 1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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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형법이 동성애를 명시적으로 불법화하지 않은 것은 이미 성적 문란행위가 범죄이고, 동성애는 문란의 극치라는 문화적-종교적 전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분위기에 한껏 고무된 당시 27세 레즈비언 컴퓨터 프로그래머 사라 헤가지(Sarah Jegazi, 1989~2020)도 자신의 무지개 깃발을 치켜들고 흔들었다.

이집트 방송들이 그 장면을 공개하며 '어떻게 순결한 이집트 땅에서 동성애자의 깃발이 펄럭일 수 있느냐'는 투로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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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4 사라 헤가지
이집트 레즈비언 사라 헤가지는 2017년 팝 콘서트장에서 무지개깃발을 흔든 혐의로 석달간 고문 당하며 구금됐고, 망명 3년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mr Magdi 트위터 사진

이집트 군부독재와 인권 탄압의 실상을 다른 기사에서 살펴본 바 있다. 현 대통령 압델 파타흐 시시(Abdel Fattah el-Sisi, 1954~)도 2014년 쿠데타로 집권해 연임한 군인 정치인으로, 그 역시 종교적 권위주의의 기반 위에서 정적과 개혁파 탄압의 고삐를 죄어왔다. 알려진 바 현재 수감된 정치범은 수만 명에 이른다.

이집트 형법이 동성애를 명시적으로 불법화하지 않은 것은 이미 성적 문란행위가 범죄이고, 동성애는 문란의 극치라는 문화적-종교적 전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2017년 9월 카이로 섬머페스티벌 도중 레바논의 한 인기 팝그룹이 공연 도중 무지개 깃발을 흔들었다. 그 분위기에 한껏 고무된 당시 27세 레즈비언 컴퓨터 프로그래머 사라 헤가지(Sarah Jegazi, 1989~2020)도 자신의 무지개 깃발을 치켜들고 흔들었다. 그 장면을 한 친구가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 게 화근이 됐다.

이집트 방송들이 그 장면을 공개하며 '어떻게 순결한 이집트 땅에서 동성애자의 깃발이 펄럭일 수 있느냐'는 투로 성토했다. 헤가지는 경찰이 아닌 국가보안위원회 비밀경찰에 의해 체포돼, 약 석 달간 구금된 채 전기충격 등 고문을 당했다. 훗날 헤가지는 '그들은 내 신앙과 처녀성 등을 추궁했다'고 밝혔다. 콘서트 직후 '성적 문란' 혐의로 연행된 이는 최소 75명이었지만, 헤가지는 SNS를 통해 국제사회에 알려졌고, 국제여론 덕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외신에 따르면 연행된 이들 중 10여 명은 1~6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외면 당하고, 직장에서도 쫓겨난 그는 신변 불안을 견디지 못해 캐나다로 망명했고, 고문 외상후스트레스장애와 향수병, 우울증을 견디며 칼럼 등으로 자신이 겪은 일과 이집트 인권현실을 고발했다.

2020년 6월 14일 그는 "너무 약한" 자신에 대한 용서를 구하며 자신에게 잔인했던 세상을 그도 용서한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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