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복식 전문 '크레이치코바'..혼자서도 잘해요
복식까지 석권..21년 만의 대기록
[경향신문]
바르보라 크레이치코바(26·33위·체코)는 상대 공격이 베이스라인을 벗어난 것을 확인한 뒤에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생애 첫 메이저대회 단식 타이틀을 품은 순간이었다. “프랑스오픈 우승자는 크레이치코바”라는 장내 아나운서의 발표를 듣고 나서야 관중 앞에서 두 팔을 벌리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하늘을 향해 키스를 보냈다. 고인이 된 자신의 스승이자 롤모델, 그리고 친구였던 야나 노보트나를 향한 경의의 표시였다.
대회 시드를 받지 못한 크레이치코바는 12일 프랑스 파리의 스타드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프랑스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서 아나스타시야 파블류첸코바(32위·러시아)를 2-1(6-1 2-6 6-4)로 누르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크레이치코바는 우승의 순간, 가장 먼저 자신의 스승을 떠올렸다. 노보트나는 한때 세계랭킹 최고 2위까지 올랐던 선수로 1998년 윔블던에서 우승했다. 특별히 복식에서 더 강했는데, 메이저대회에서 15차례나 우승(혼합 복식 3회 포함)했다. 노보트나는 2005년 국제테니스연맹(ITF) 테니스 명예의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크레이치코바는 이미 복식 선수로는 세계랭킹 1위에도 올랐다. 2018년 프랑스오픈과 윔블던(여자 복식)에서 메이저 타이틀도 얻었다. 그러나 메이저대회 단식에서는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하다 이번에 출전 5번 만에 정상에 올랐다.
크레이치코바는 13일 지난 두 차례 메이저대회 우승을 함께 했던 카테리나 시니아코바(체코)와 한 조로 출전한 여자 복식 결승에서도 이가 시비옹테크(폴란드)-베서니 매틱샌즈(미국) 조를 2-0(6-4 6-2)으로 꺾고 우승했다. 프랑스오픈 여자 단·복식을 한 해에 석권한 것은 2000년 마리 피에르스(프랑스) 이후 21년 만의 대기록이다. 대회 전까지 단식 세계랭킹 33위, 복식은 7위였던 크레이치코바는 단식 우승으로 세계랭킹 15위, 복식에서는 세계 1위에 복귀한다.
프로 누적 상금이 358만5129달러(약 40억원)였던 크레이치코바는 단식 우승으로 그 절반에 가까운 140만유로(약 19억원)를 상금으로 벌었다. 복식까지 더하면 152만2147유로(약 20억5000만원)에 이른다. 크레이치코바는 “(프랑스오픈 우승으로) 많은 것이 바뀌겠지만, 나는 여전히 작은 도시에서 테니스 벽을 앞에 두고 훈련했던 작은 소녀일 뿐”이라며 도전 각오를 새롭게 했다.
이정호 기자 alp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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