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중계] '후백제 왕도 전주 바로 알리기' 학술세미나에서는

2021. 6. 13.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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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기자(=전주)(starwater2@daum.net)]
ⓒ전주시
후백제학회와 후백제시민연대가 공동 주관한 '후백제 왕도 전주 바로 알리기 학술세미나 및 시민토론회'.

천년고도 전주정신을 바르게 세우기 위한 첫 시도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견훤대왕이 폭발적으로 국력을 기르던 후삼국 통일을 목전에 두고 갑자기 실각하면서 역사무대에서 후백제의 존재가 사라짐으로써 후백제의 진면모를 찾기 어렵게 됐다.

그러나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몫이다"이라 강조하는 군산대학교 곽장근 교수는 수많은 유적과 유물이 기록 이상으로 후백제의 진실을 비춰내고 있다.

[프레시안]은 이번 학술세미나와 발표자들의 내용을 압축해서 지상중계한다.

후백제가 없었다면 조선왕조도 없었다!...송화섭(후백제학회 회장, 중앙대학교)


왜 이 시점에서 후백제인가에 대하여 답하고자 한다. 전주정신은 곧 후백제정신이다. 전주가 역사의 중심에 선 것은 후백제 때이다. 따라서 전주정신은 후백제에서 찾아야 한다.
견훤은 전주에 도읍을 정하기 이전, 광주선언을 통해 자신은 전주자사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견훤은 900년에 광주에서 전주로 올라와 국호를 후백제라고 정하고 왕국을 건설했다.
이는 전주정도(全州定都)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한 도시가 왕도였고, 왕조의 본향이었던 곳은 전주가 유일하다.
후백제가 없었다면 조선왕조도 없었다! 후백제는 백제의 해양성, 개방성, 도전성, 창조성을 계승하였다.
이는 곧 전주정신의 핵심이다.

궁성 추정지 연구사업 안 되면 후백제 역사 찾을 수 없어...전상학(전주문화유산연구원)


전주 중노송동 인봉리 일원은 후백제 궁성지로 추정되는 곳으로 왕궁을 두른 궁성 혹은 왕성으로 추정되는 성벽의 흔적이 확인됐다.
이 지역의 재건축 및 재개발이 가시권에 들어와 현 시점에서 연구사업이 추진되지 않으면 후백제 역사를 찾을 수 없게 되는 실정이다. 2017년 노송공원과 무료주차장 일부를 시굴한 결과 깊이 350지점에서 불에 그을린 2점의 석재를 확인했는데, 이는 궁성 건물 또는 성벽 부재로 추정된다.
2019년 후백제 궁성 추정지 남성벽과 서성벽 교차지점인 정보문화산업진흥원 주차장 시굴 결과, 해자가 확인되고 기와조각 등이 출토했다.
2020년 후백제 궁성 추정지 북동벽 지점을 시굴한 결과 목책이나 망루 등의 존재가능성을 높여주는 주공과 소주공 형태를 확인했다.

후백제는 동철서염과 고대문화의 화룡점정이다...곽장근(군산대학교)


견훤왕은 평상시 인봉리 왕궁에서 머물다가 유사시 전주 남고산성 동고산성으로 이동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후백제를 생각할 때마다 융성한 자 반드시 멸망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떠올린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후백제 멸망의 비통함을 토로했다. 후백제가 망하면서 삼국의 책을 다 모아놓은 전주 서고가 불타버리면서 없어진 것을 우리 역사상 두 번의 큰 비극 중 하나로 꼽았다.
승자가 역사를 기록하기 때문에 후백제 역사를 전해주는 문헌이 많지 않다.
그래서 고고학으로 밝혀낸 전북 가야와 후백제는 한 몸이다. 후백제는 동철서염(東鐵西鹽)과 고대문화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인봉리 일대 왕궁 가능성 매우 높아...유철(전주문화유산연구원장)


최근에 인봉리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가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일부 이루어진 바 있어 왕궁 가능성은 매우 높다. 따라서 후백제 왕궁지를 찾는 사업을 추진하고 그 일환으로 중요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가 진행돼야 한다.
후백제 문화유산이 학술적으로 인정받으면서 동시에 대중적으로도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주 일원에 산재돼있는 후백제 문화유산이 국가나 도 지정문화재로 지정돼야 한다.
그동안 축적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보존가치가 규명된 유적은 먼저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하고 이후 국가지정문화재 지정을 추진해야 한다.
또한 유적 복원과 답사 프로그램, 체험 프로그램 개발, 그리고 역사문화관광벨트 조성이 필요하다.

인봉리 후백제 왕성 복원과 도시재생...김경미(전주대학교)

전주는 한옥마을을 통해 전주만의 특별한 품격과 성공적인 도시브랜드를 구축했다.
이제 한옥마을 인접자원으로 제2의 한옥마을의 성공을 다져야 할 때이다.
후백제 왕궁의 중심공간인 노송동 일원은 오랜 세월을 거쳐 생활형 도시주택이 형성된 공간이다.
1930-60년대 한옥부터 1970-80년대 도시주택의 변천과정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대규모 마을이다.
이러한 강점으로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관심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외성을 기준으로 권역을 설정하고 발굴과 보존이 우선돼야 한다. 노송동 마을의 기억을 유지하며, 빈집과 개선이 어려운 주택 순서대로 여유 공간으로 전환해 나가자.
후백제 문화재와 함께 하는 역사마을이라는 자긍심은 경제적 재생이 성공할 때 가능하다.
이는 후백제역사문화권 지정이라는 한 방향의 실행전략에 기반할 때 더욱 실현 가능한 목표가 될 수 있다.

[김성수 기자(=전주)(starwater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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