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당국이야? 상생 당국이야? 공정위 직원들의 어리둥절

정석우 기자 2021. 6. 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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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브리핑]

요즘 공정거래위원회 직원들 사이에서 “공정위가 뭐하는 곳인지 헷갈린다”는 말이 나온다고 합니다. 공정위는 가격 담합과 계열사 부당 지원 등을 감시해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를 유지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경쟁 당국'이라고 하죠.

그런데 최근 들어 상생(相生)이라는 단어가 부쩍 강조되면서 대기업 구내식당 개방 등에 팔을 걷어붙이면서 직원들이 “우리가 ‘상생 당국'으로 간판이 바뀐 모양”이라는 말이 돌고 있답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4월 서울 강서구 LG사이언스파크에 삼성전자, 현대차 등 8개 대기업 사장들을 불러놓고 ‘단체급식 일감개방 선포식’를 열었습니다. 공정거래법에 단체급식 관련 규정이 없으니 옆구리를 찔러서 이런 행사를 열었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러곤 “대기업들이 스스로 일감 개방을 전격 결정했다”고 공정위에서 보도자료가 나왔습니다.

경쟁 입찰을 통해 중소기업의 단체 급식 참가 기회를 늘리는 것 자체는 좋은 일 같습니다. 하지만 공정위 안팎의 분위기는 좀 다릅니다. 공정위 한 직원은 “경쟁력 없는 중소기업이 사업을 따내고, 경우에 따라서는 해외 기업에 일감을 뺏기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전직 공정위 간부도 “경쟁 당국 업무는 가격, 품질로 경쟁해야 하는 시장경제 원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막아 궁극적으로 소비자 후생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게 목적인데, 요즘 들어서는 상생이라는 단어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공정위는 이명박 정부 시절에 물가를 낮추겠다면서 정유업계와 식품‧유통업체 등에 대한 조사에 나서면서 ‘물가 당국’을 자임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김동수 위원장은 “공정위가 물가 안정을 책임지는 부처가 아니라는 것은 근시안적 논리다. 이런 철학과 같이 가지 못하는 직원들은 (공정위에서) 나갈 각오를 하라”고 했었죠. 물론 공정위는 물가 대책 기관이 아닙니다.

이번에는 ‘상생 당국’ 문제로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모양입니다. 공정과 경쟁을 지키는 공정위의 본래 모습을 찾기 바랍니다. 물론 상생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본캐(본래 캐릭터)’보다 ‘부캐(부차적인 캐릭터)’를 너무 챙기면 곤란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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