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스트리트] 팔만대장경 봉인 해제

파이낸셜뉴스 2021. 6. 1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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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은 국보 제32호이고, 고려대장경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다.

팔만대장경은 1251년 완성된 국보 중의 국보이다.

1396년에 축조된 국보 1호 숭례문이 2008년 소실돼 우리 곁을 떠났을 때를 생각하면 팔만대장경의 현존은 기적이라고 할 만하다.

일본은 호시탐탐 팔만대장경을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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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은 국보 제32호이고, 고려대장경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다. 팔만대장경은 1251년 완성된 국보 중의 국보이다. 국보의 번호는 가치서열이 아니라 관리편의에 따라 매겨졌다. 지방에 있고, 특정 종교유산이라는 이유에 의해 후순위로 밀렸을 뿐이다. 1396년에 축조된 국보 1호 숭례문이 2008년 소실돼 우리 곁을 떠났을 때를 생각하면 팔만대장경의 현존은 기적이라고 할 만하다.

일본은 호시탐탐 팔만대장경을 노렸다.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와 달리 '억불숭유'의 조선을 상대로 대장경을 넘겨받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5년(1423) 기록에 보면 세종은 대장경을 무용지물로 보고 일본에 넘기려고 했다. 그러나 한번 주면 다른 것도 계속 요구할지 모른다고 염려한 신하들의 반대로 주지 않았다.

세종은 대장경을 서울 근처 양주 회암사나 구리 개경사로 옮기는 방안을 논의하도록 지시했다. 신하들은 수송이 어렵고, 돈이 많이 든다며 또 반대했다. 이때 옮겼더라면 지금 우리는 팔만대장경이 있었다는 사실만 교과서에서 배웠을지도 모른다. 회암사와 개경사는 진작 사라졌기 때문이다.

해인사는 수백칸이 소실되는 7번의 크고 작은 화재를 겪었다. 이때마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한 장경판전의 과학적 설계와 배치 덕분에 살아남았다. 일제강점기엔 승려들이 죽기로 일본 반출을 막았다. 한국전쟁 때 공군 10전투비행단장 김영환 대령은 빨치산 소탕을 위해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거부, 군법회의에 회부됐다.

팔만대장경이 최초로 일반 공개된다. 해인사는 오는 19일부터 매주 토·일요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 해인사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예약한 10~20명에게 대장경을 개방하기로 했다. 몽골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만들어진 지 770년, 해인사로 옮겨온 지 600년 만의 봉인 해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일상을 잃은 사람들에게 대장경이 힘을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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