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서가] 시대 앞서간 언론인 장기봉

박영서 2021. 6. 13. 19:3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언론인 고(故) 장기봉(張基鳳) 신아일보 창업주의 생애와 사상을 조명한 책이다.

책은 1장 '불태운 청운의 꿈', 2장 '건국의 초석을 쌓고', 3장 '신문기자에서 신문경영인으로', 4장 '한국 최초 다색도 상업신문 신아일보 창간', 5장 '언론통폐합과 신아일보 강제폐간', 6장 '언론사에 길이 빛날 신아일보 정신' , 7장 '심금울린 오강 유고(遺稿)', 8장 '가까이에서 본 장기봉' 등으로 구성됐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강(梧岡) 장기봉 평전 정운종 편저 / 태봉 펴냄

언론인 고(故) 장기봉(張基鳳) 신아일보 창업주의 생애와 사상을 조명한 책이다. 경상북도 안동 출신의 오강(梧岡) 장기봉은 입지전적 신문인생을 살았던 언론인으로 유명하다. 20대 초반에 상경해 대동신문에 입사한 뒤 25세의 젊은 나이에 공보비서관과 유엔총회 대표를 거쳐 약관 29세의 나이에 최연소 서울신문 사장에 올랐다. 그가 서울신문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서울신문은 만년 적자에서 흑자 기조로 전환했다.

고인은 1965년 종합신문인 신아일보를 창간했다. 8면짜리 석간 신문이었다. 신아일보는 재정적 후원없이 순수하게 신문수입만으로 경영됐다. 신문 이외의 어떤 방계사업도 없었다. 특히 국내 처음으로 다색도인쇄를 도입해 컬러시대를 열은 신문이기도 했다. 한국 최초의 '다색도 상업신문' 신아일보는 전후세대 젊은 층들이 즐겨 찾고 읽는 신문이 됐다. 효율적 관리체계와 철저한 소수정예주의를 채택해 당시 가판시장을 석권했다. 이는 그의 뛰어난 경영능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덕분에 신아일보는 '기적의 신문'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신아일보는 1980년 언론기관 통폐합조치에 따라 경향신문에 흡수·통합되었다. 그해 11월25일 종간호를 내고 종간되는 비운을 맞았다.

책은 1장 '불태운 청운의 꿈', 2장 '건국의 초석을 쌓고', 3장 '신문기자에서 신문경영인으로', 4장 '한국 최초 다색도 상업신문 신아일보 창간', 5장 '언론통폐합과 신아일보 강제폐간', 6장 '언론사에 길이 빛날 신아일보 정신' , 7장 '심금울린 오강 유고(遺稿)', 8장 '가까이에서 본 장기봉' 등으로 구성됐다. 책에는 그가 신아일보를 창간해 16년 동안 발행하다가 문을 닫아야 했던 사연이 자세히 실려있다. 고인은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과정에서 보안사 수사실에서 각본에 따라 신아일보 포기각서를 쓰는 등 수모를 겪었다. 후에 그는 국회 언론청문회에서 이와 관련해 생생한 증언을 했다.

정동 구(舊) 신아일보 별관 건물에는 '장기봉 기념관'이 있다. 기념관에는 그의 행적을 일목요연하게 알아볼 수 있도록 많은 역사적인 자료, 친필 서한, 사진, 신아일보 창간호 등이 전시돼 있다. 이 건물은 붉은 벽돌로 지은 고풍스러운 건축물이다. 신아일보사는 사라졌지만 사옥은 서울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신아일보의 역사를 기념하고 있다.

박영서 논설위원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