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가장 큰 왕관쓰는 발레리나 "많이 춤출 수 있어 행복"

김호정 2021. 6. 13.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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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오페라발레 수석무용수 된 박세은
10일(현지시간) 파리오페라극장에서 줄리엣 역으로 출연한 발레리나 박세은. 공연 후 에투알로 승급했다. [사진 파리오페라발레/박세은 제공]

“무대에서 어떻게 했나 생각하느라 그동안은 실감이 안 났어요. 이제야 ‘내가 정말 에투알이 됐구나’하고 행복해요.”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POB)의 에투알(Etoile, 수석무용수)로 승급한 발레리나 박세은(32)은 13일 전화 인터뷰에서 “공연에 100% 몰입해 이제야 승급이 실감 난다”고 했다. 10일(현지시간) 아시아 무용수 최초로 352년 역사의 발레단에서 에투알이 되고도 직전의 무대와 춤을 복기하고 있었던, 천생 무용수다. POB의 단원 등급은 카드릴(군무)에서 시작해 코리페, 쉬제, 프리미에 당쇠르, 에투알로 나뉜다. 에투알은 박세은까지 여성 10명, 남성 6명이다.

박세은은 파리오페라극장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마치고 에투알로 지명됐다. 본인에게는 미리 알리지 않고, 예술감독과 극장장이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발표했다. 줄리엣의 사랑과 죽음에 깊이 들어가 있던 박세은은 “잡생각 없이 몰두해야만 했기 때문에 승급 생각은 전혀 하지 않던 차였다”고 했다. 당일 공연 전부터 큰 꽃다발이 보였고, 자신의 승급에 대한 소문도 들었지만 그럴수록 역할에 빠져들었다. 코로나19로 관객이 있는 무대가 1년 반 만이었고, ‘로미오와 줄리엣’은 첫 출연이었다. 그는 “감정을 완전히 쏟아내서 후회가 전혀 없는 공연 끝에 승급 소식을 들어 기쁨이 더 컸다”고 했다.

10년 전 POB에 오디션을 치르러 왔던 박세은은 “목표가 에투알이었던 것은 아니다”라며 “춤출 기회를 많이 받고, 춤을 많이 추는 일이 진짜 목표였다. 지금도 그렇다”고 했다. “물론 에투알이 되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웅장한 극장에서 나의 우상들과 함께 춤 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했다.” 그는 “파리의 화장실만한 호텔방에서 몸을 풀며 오디션을 보던 10년 전이 지금 많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에투알로 지목된 순간의 박세은. [사진 파리오페라발레/박세은 제공]

2011년 연수생으로 입단해 군무부터 시작한 박세은은 빠르게 승급했다. 이듬해에 정단원, 2013년 1월 코리페, 11월 쉬제로 올라갔다. 2016년 11월에는 프리미에 당쇠르로 승급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박세은은 “이곳 무용수들의 춤을 존중했다”고 했다. “내 춤은 러시아의 바가노바 메소드를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여기에 와서 춤이 바뀌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고민도 많고 어려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춤을 춰야하는지 알 수 있게 됐다.”

열 살에 발레를 시작한 박세은은 최근 “모든 의미는 관객에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했다. “이전에는 그저 춤추는 게 즐거워서 했다. 하지만 팬데믹에 무관객 공연을 해본 후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시 감동을 돌려받는 그 과정 때문에 춤을 춰왔다는 걸 알게 됐다.” 박세은은 “내가 즐거워서가 아니라 감정을 나누는 기쁨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박세은은 일찌감치 주목받았던 실력파다. 2006년 미국 잭슨 콩쿠르 은상에서 시작해 스위스 로잔 콩쿠르 1위, 불가리아 바르나 콩쿠르 금상을 받았고 2018년 6월엔 무용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의 최고 여성무용수상을 받았다.

올 9월 24일엔 박세은이 “심장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행사가 기다리고 있다. 발레단의 아카데미에서 배우는 8세 꼬마부터 에투알 10명까지 200여명이 순서대로 무대로 걸어들어오는 행진으로, 시즌 개막 전의 전통이다. “2011년부터 참여했는데 그때는 맨 처음에 걸어나와 마지막 에투알이 무대에 오를 때까지 다리도 팔도 아프게 기다렸다. 이번엔 가장 큰 왕관을 쓰고 들어오게 된다. 많이 벅차다.” 박세은은 발레단의 정년인 42세까지 에투알로 무대에 오르게 된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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