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단가 3.3㎡당 28만→8만원 후려치고.. 해체계획서도 엉터리

한현묵 2021. 6. 13.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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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철거 붕괴 사고.. 곳곳서 불법 확인
하도급에 하도급.. 무리한 공기 단축
해체계획서 철거 순서 안 지키고
장비 하중계산 빠져 부실투성이
"3층 높이 흙더미서 5층 안 닿아
건물 내부 들어가 천장 철거 시도"
굴착기 기사, 불법 정황 진술도
경찰, 이권개입 여부 수사 확대
사진=연합뉴스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학동 4구역 철거 건물 붕괴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이 불법 다단계 하도급과 해체계획서 미준수 등 불법 사실을 속속 밝혀내고 있다. 경찰은 ‘철거왕’으로 소문난 다원이엔씨 계열사가 이번 재개발 구역에 참여한 것을 확인하고 철거와 관련해 광범위한 이권 개입이 있었는지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다단계 하도급 단가는 28만원→ 8만원 뚝

경찰 조사에서 붕괴된 건물의 철거 공사는 다단계 하도급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붕괴된 건물은 일반건축물로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이 한솔기업과 철거 시공 계약을 했다.

한솔기업은 3.3㎡당 28만원의 시공단가를 제시해 공사를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한솔기업은 지역 10여개 업체를 대상으로 8만원 정도의 공사단가에 하도급 공사를 해줄 것을 타진했지만 대부분 단가가 낮다며 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중장비 임대업을 하는 백솔기업은 한솔기업이 제안한 공사 단가를 수용해 하도급 업체로 선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백솔기업은 재개발구역의 하도급 참여 시점과 비슷한 시기인 지난해 3월 광주 북구청에 비계구조물 해체공사업 면허를 신규 취득했다. 굴착기 등 중장비 임대업에서 철거업체로 사업을 확장한 것이다.

이처럼 공사 단가가 하도급을 거치면서 뚝 떨어진 것이 이번 붕괴 사고의 원인이 됐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터무니없는 공사단가로 공사를 하게 된 백솔기업은 비용절감을 위해 무리하게 공기를 단축하려다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경찰 관계자는 “한솔기업과 백솔기업 간의 건축물 철거와 관련해 맺은 하도급 계약서류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13일 광주 동구청 주차장에 마련된 피해자 합동분향소에서 조문을 위해 찾아온 시민이 분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개발구역의 석면철거 공사도 다단계 하도급으로 이뤄졌다. 재개발조합은 ‘철거왕’ 다원의 계열사인 다원이앤씨와 시공계약을 했다. 다원그룹은 전국 철거 작업을 사실상 독점해 철거왕으로 불렸던 이모 회장이 운영하는 회사다. 이 회장은 회삿돈 등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015년 징역 5년형을 받았다.
도급을 따낸 다원이앤씨는 다시 백솔기업에 하도급을 줬다. 다원이앤씨가 직접 공사를 하지 않고 하도급을 준 것은 건설안전기본법 위반에 해당한다. 지장물 철거는 재개발조합이 한솔기업과 시공계약을 맺었다.
지난 11일 광주 학동 재개발지역 철거건물 붕괴 사고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해체계획서 핵심 빠진 엉터리

굴착기 기사 A씨는 경찰 조사에서 “3층 높이로 쌓은 흙더미 위에 올라가 건물을 철거했는데 굴착기가 5층까지 닿지 않았다”며 “이 때문에 건물 안으로 들어가 천장을 뜯으려 했다”고 진술했다. 해체계획서대로 철거를 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경찰은 A씨의 진술이 건물 붕괴의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즉 지반이 약한 바닥이 굴착기 무게(약 30t)를 이기지 못하고 내려앉았다는 얘기다. 수직·수평 하중을 고려하지 않은 철거 방식과 지지대가 없던 탓에 굴착기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흙더미 또는 벽(기둥 역할)이 갑자기 무너져 내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붕괴된 건물의 해체계획서도 부실투성이로 드러났다. 해체계획서에는 철거장비의 무게를 건물이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판단하는 하중계산이 빠져있다. 국토교통부의 장비 하중 등을 검토해 계획서를 작성하라는 고시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해체계획서에 의한 철거 순서도 지키지 않았다. 안전진단 결과 벽의 강도가 가장 낮은 벽부터 철거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실제는 작업하기 쉬운 벽부터 허물었다.

경찰은 현대산업개발 현장 관계자와 철거업체 관계자, 감리회사 대표 등 모두 7명을 업무상 과실 치사상 등 혐의로 입건해 수사를 하고 있다.
눈물의 발인 13일 오전 광주 북구의 한 장례식장에서 학동 건물 붕괴사고 피해자의 발인이 진행되고 있다. 광주=뉴스1
◆눈물의 영결식

이날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A(75)씨의 발인식은 울음바다가 됐다. A씨는 친구들과 함께 무등산 증심사로 산책을 가기 위해 54번 시내버스를 탔다가 변을 당했다. 검은 상복을 입은 A씨의 손주가 영정을 들고 운구 차량으로 옮기는 3분여 동안 유족들의 통곡이 이어졌다.

비슷한 시간, 광주 북구 한 장례식장에서도 희생자 B(72)씨의 발인식이 엄수됐다. B씨의 운구 차량을 따르던 유족들은 발을 동동 구르다가 끝내 오열했다. B씨는 한 사회복지시설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54번 시내버스를 탔다. 하지만 한 정거장만 남겨놓고 붕괴된 건물 잔해에 시내버스가 깔리면서 가족의 품으로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이날까지 희생자 9명 가운데 7명의 발인을 마쳤다.

광주=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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