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피칼 트루스 - 카에타노 벨로주 [이규탁의 내 인생의 책 ①]

이규탁 | 한국조지메이슨대학교 문화연구교수 2021. 6. 13.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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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음악

[경향신문]


최근 케이팝이 해외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되자 일부에서는 케이팝을 브라질에서 기원하여 전 세계 인기 음악으로 자리한 보사노바와 비교하기도 한다. 영미 음악의 영향력 아래에서 형성되었지만 지역(local)의 다양한 정치경제적·역사적·문화적·사회적 맥락과 결합하며 특유의 ‘문화적 향취(cultural fragrance)’를 갖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렇게 비서구·비영어권에서 나온 음악이 전 세계 수용자들을 사로잡았다는 점에서 분명 케이팝과 보사노바는 일정 부분 공통점이 있다.

보사노바는 브라질 대중음악인 삼바와 미국의 재즈가 결합되어 생겨난, 두 장르의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들과는 확실하게 차별화되는 장르의 음악이다. 그런데 여기에 영미 록음악이 더해져 만들어진 ‘트로피칼리아(Tropicalia)’라고 하는 독특한 음악이 있다. 이 음악은 1960년대 브라질에서 큰 인기를 얻었으며, 음악 장르를 넘어 영화·연극·문학을 아우르는 하나의 커다란 문화 현상이었다.

<트로피칼 트루스>는 당시 해당 음악을 주도했던 예술가 카에타노 벨로주가 직접 쓴 책으로, 해당 음악을 만들게 된 사상적인 바탕과 자신의 체험이 생생하게 녹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음악과 관련 문화가 군부독재 체제를 유지하던 보수주의자들과 애국주의적 민중문화를 추종하던 진보주의자 모두로부터 비판과 핍박을 받았다는 것인데, 냉전과 식민주의의 이분법이 지배하던 1960년대 당시 자국의 지역 음악과 외국 음악을 섞어 만든 정체성 불분명한 소위 ‘퓨전’, 혹은 ‘하이브리드’적인 음악이 정당한 평가를 받기는 힘들었으리라.

하지만 흑과 백 사이에 수많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고 그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점차 대세가 되어가는, 지역 문화와 글로벌 문화의 뒤섞임의 결과인 케이팝과 같은 음악이 세계적으로 큰 호소력을 지니는 현 상황에서 50여 년 전 브라질에서 나타났던 이 선구적인 문화 운동은 또 다른 시사점을 준다. 세계는 우리 것과 다른 나라의 것, 지배자와 피지배자, 좋은 문화와 나쁜 문화의 이분법으로 이해할 수 없으며, 그러한 복잡미묘함과 모호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학교 문화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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