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뒤쪽에 자리 많다고.." 세친구 운명 가른 좌석위치

김지혜 2021. 6. 1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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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명 사상' 광주 붕괴사고 생존자 첫 인터뷰
탑승객 생사 가른 좌석 위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지난 9일 오후 4시20분쯤 광주광역시 학동 전남대병원 앞 버스정류장. 54번 시내버스에 타고 있던 A씨(67·여)와 B씨(73·여)가 버스에 탑승한 70대 남성에게 인사를 했다. 함께 무등산 등산을 가기로 한 C씨(75)였다. C씨는 앉아 있던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한 뒤 자리가 좀 더 한산한 버스 뒷편을 향해 걸어갔다.

이 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C씨가 차량에 오른지 2~3분도 되지 않아 천둥 같은 굉음과 함께 버스가 철거 중이던 건물에 깔렸다. 순간 버스 안은 아수라장이 됐으며 A씨 등은 곧바로 의식을 잃었다. A씨는 “C씨가 버스 뒷편으로 간 뒤 곧바로 기절한 것 같다”며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는데 며칠이 지났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앞서 A씨는 집이 가까운 B씨와 함께 광주 북부경찰서 앞 정류장에서 버스에 탔다. 그때는 자리가 비어있어서 A씨는 버스기사 뒤쪽 세번째 자리에 앉고, B씨는 A씨 건너편에 앉았다. A씨는 “평소엔 이른 점심을 먹고 만났는데 요즘 날씨가 더워져 한낮 더위가 꺾이길 기다렸다가 버스에 올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사고는 좌석 위치에 따라 생사를 갈랐다. 버스 앞쪽에 탑승했던 A씨와 B씨는 다행히 목숨을 건진 반면 뒤쪽에 탔던 C씨는 숨졌다. A씨는 지인들의 부상·부고 소식을 지난 12일에야 접했다고 한다. A씨의 보호자인 딸이 A씨가 충격을 받을까봐 이 사실을 숨겨와서다.

지난 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의 한 철거 작업 중이던 건물이 무너져 내리며 시내버스 등이 매몰됐다. 사진은 사고 현장에서 119 구조대원들이 구조 작업을 펼치는 모습. 연합뉴스

현재 광주 한 병원에 입원 중인 A씨는 12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살아있는 게 천운"이라고 말했다. 숨진 C씨에 대해서는 "좋은 사람이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A씨는 “버스를 타고 가다 C씨가 탄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사고 후)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고, 남동생이 앉아 있었다"고 했다. 이어 "서울에서 직장 다니는 딸이 빨리 올 수 없으니 광주에 사는 삼촌한테 연락한 걸로 안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 A씨 등이 버스를 탈 당시 탑승한 17명 중 9명이 목숨을 잃었다. 철거공사 중이던 건물이 무너지며 버스를 덮치는 바람에 8명이 중상을 입는 등 17명 모두가 숨지거나 크게 다쳤다.

A씨는 이날 사고에 대해 "딸이 나무 때문에 살았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가로수가 충격을 흡수해 버스 앞쪽 자리는 건물이 무너져도 공간이 남았나보다"라고 했다. 사고 당시 부상자는 버스 앞 좌석에 탔던 승객이었던 반면, 뒷좌석 승객은 대부분 목숨을 잃은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앞서 소방당국는 “건물 콘크리트 잔해물이 시내버스를 덮칠 당시 인도에 심어진 아름드리 나무가 완충 작용을 했다”고 지난 10일 밝힌 바 있다.

당시의 급박한 상황은 사고 당시 동영상에도 그대로 담겨 있다. 당시 버스는 평소대로 해당 건물 앞에 설치된 승강장으로 서서히 진입했고, 승강장에 5초 정도 정차한 뒤 출발하려는 순간 건물이 무너졌다. 무너진 건물더미는 버스를 덮쳤고 흙먼지가 인근으로 확산했다. 하지만 이 같은 큰 충격에도 승강장 옆에 서 있던 가로수 한 그루가 충격을 덜어줬다는 게 경찰과 소방당국의 판단이다.

지난 9일 오후 4시22분쯤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지역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 1동이 무너져 시내버스 등을 덮쳤다. 처참하게 찌그러진 시내버스 모습. 뉴스1

A씨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고통을 호소했다. 이번 사고로 허리와 손목 등을 크게 다쳐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힘겹게 입을 떼며 "처음에는 말도 못했어. 이제야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네"라고 했다.

A씨는 "너무 아프지만 이런 아픔과 괴로움마저 살아남은 이와 가족들에게는 감사한 일인 것 같다"고 했다.

아울러 함께 버스틀 탔던 B씨에 대해서는 "(딸이) B씨 아들과 전화통화를 했다더라"라며 "(B씨가)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던데 빨리 보고 싶다. 얼른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A씨는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 사고 당시 숨진 C씨가 생각나서인 듯했다. C씨의 발인은 13일 오전 치러졌다.

광주광역시=김지혜·이가람·최종권 기자 kim.jihye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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