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접종 후 곧 복귀' 주얼리 노동자들..800곳중 4곳만 '백신휴가'

김진 기자 2021. 6. 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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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유급휴가 1호' 주얼리노동자 "정부가 권고 이상 조치했더라면"
사업장 800여개, 종사자 8000여명..4곳만 백신 유급휴가 도입해
서울 종로의 한 귀금속 매장. © News1 자료사진

(서울=뉴스1) 김진 기자 = 올해 만 40세인 김정봉씨는 지난 11일 하루 동안 코로나19 백신 유급휴가를 보냈다. 예비군·민방위 100만명가량을 대상으로 한 얀센 백신을 접종받은 그는 오후 1시부터 24시간 동안 통상적으로 나타나는 발열과 두통, 근육통, 오한 증상에 시달렸다. 이튿날에야 증상이 나아졌다는 김씨는 "평소처럼 일을 했어야 했더라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코로나19 백신 유급휴가가 집중 도입된 여느 대기업·중견기업 직원이 아니다. 그는 경력 23년차의 종로 주얼리 세공노동자로, 30인 미만 영세사업장에 속해 있다. 백신 유급휴가는 최근 노동조합과 사업장 간 단체협약의 결과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종로주얼리분회장을 맡고 있기도 한 그는 얀센 백신 접종신청에 성공하며 주얼리 세공노동자 가운데 '1호 유급휴가자'가 됐다.

김 분회장은 12일 오후 뉴스1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정부의 코로나19 백신 유급휴가제가 권고 이상이었더라면 더 많은 노동자가 쉬는 데 큰 힘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분회장은 "직접 경험을 해보니 유급휴가가 업계 전반으로 확대돼야 할 이유가 더욱 분명해졌다"고 내내 강조했다. 평소 어깨를 움츠리고 팔꿈치에 무게를 실어 책상에 기댄 자세로 작업을 해야하는데, 백신을 접종한 팔에 근육통이 집중돼 작업에 무리가 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세공노동자 대다수가 4대 보험 사각지대에 놓여 일하다 다쳐도 산업재해 보상을 받기 어려운 만큼 안전한 근무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유급휴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얼리 세공노동자들은 접종 이후 사업장으로 돌아가야 할 수 밖에 처지다. 노조에 따르면 백신 유급휴가를 보장한 주얼리 사업장은 직원 전원이 노조에 가입한 30인 미만 사업장 3곳, 50인 미만 사업장 1곳에 불과하다. 전체 사업장 800여개, 종사자 8000여명으로 추산되는 주얼리 업계에서 1%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실제 김 분회장은 접종을 하러 간 11일 오전 9시쯤 종로 인근 병원에서 다른 주얼리 세공 노동자 2~3명을 마주쳤고, 이들이 사업주로 추정되는 사람과의 통화에서 '곧 복귀하겠다'고 답하는 모습을 봤다고 전했다. 그는 "주얼리 노동자들은 선거일과 같이 대통령령으로 정한 대체공휴일조차 쉬지 못했다"며 "노조 등록 사업장이 아니면 연차휴가조차 없다보니 백신 유급휴가를 요구할 권리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작업실에서 근무하는 김정봉 전국금속노조 종로주얼리분회장. (본인 제공) © 뉴스1

주얼리 세공노동자 노조는 내주 초 사용자단체들을 대상으로 백신 유급휴가 전면 도입을 정식 요구하는 공문을 보낼 계획이다. 개인 간 홍보와 선전전도 본격화한다. 주요 근거는 코로나19에 따른 사업주들의 경영악화 부담을 주3·4제를 통해 분담하는 만큼 코로나19 사태에서의 노동자 건강권도 논의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 분회장은 "포괄임금제로 야근수당을 받지 않는 상황인데 주4일제에도 야근은 이어지고 있다"며 "근무시간은 줄지 않았는데 월급만 줄어드는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업계에서는 이런 노조 입장에 난색을 표한다. 영세사업장으로 노동자들의 업무가 세밀하게 분업화돼 단 1명만 빠져도 물량을 채울 수 없다는 논리로, 사용자단체가 정해 통보하는 하계단체휴가 관행이 사례로 등장한다. 그러나 노조 측은 노동자의 휴식권을 단체가 결정하는 만큼 건강권 보장도 선행돼야 한다고 맞선다.

김 분회장은 오랜 시간에 걸쳐 공고해진 주얼리업계의 관행과 더불어 정부 권고의 한계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부의 백신휴가 활성화 방안은 의사 소견서 없이도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했으나 단순 '권고'에 그쳐 사업주의 재량에 따라 도입 여부가 결정된다. 이에 백신 유급휴가가 주로 도입된 대기업·중견기업과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계약직 간 '양극화' 현상이 지적을 받아왔다.

김 분회장은 "노동절에 쉬게 된 데까지 2년이 걸렸는데 가장 유효했던 건 노동청의 행정력을 동원할 수 있었던 점"이라며 "정부가 권고 이상의 조치를 했더라면 하나의 명분으로서 더 나은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soho090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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